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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의 하루 Jul 28. 2022

미니멀리스트

심플라이프를 꿈꾸며

이사를 하면서 분명 이전보다 더 넓은 집으로 옮겼다. 하지만 어딘가에 깊숙히 숨겨야하는 짐들도 같이 많아진 것 같다. 이것들을 어떻게든 눈에 안 보이게 넣어두려고 시도해봤지만 쉽지가 않다. 남은 선택지는 ‘버림’ 밖에 없다. 이사짐을 풀면서 보니 쓰지도 않으면서 보관만 하고 있는 물건들이 많다. 이 물건을 크게 두 가지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었다. ‘언젠가는 한 번 사용하겠지’라는 물건과 ‘그 땐 그랬었지’라면서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물건.


이번에 정리할 물건은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물건들’이다. 오래된 사진, 이전에 쓰던 핸드폰, 소중한 선물이 담겨있던 선물상자 등 이전에도 '언젠가 다시 한 번 보겠지'라는 생각 때문에 버리지 못했던 물건이다. 어차피 다 들고 가지 못할 것들이다. 그리고 계속 가지고 있을수록 더 버리기 어려워질 것임에 틀림없다.


어떤 물건이 ‘그 자체의 쓰임’보다는 나에게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 역할만 남아있다면 그 물건의 가치는 무엇일까? 나에게는 그런 매개체가 꼭 실물일 필요는 없다는 판단으로 흔적은 남기되 물리적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디지털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사진을 찍고 버린다” 라는 다소 과격한 규칙을 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버리기 어려운 것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때부터 받았던 상장들, 내 글이 올라간 잡지, 돈을 아껴서 모았던 책자 등 이미 오랜 세월 가지고 있었던 것들은 사진을 찍고나서도 버리기 어려웠다. 나에게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 이외에도 그 당시 긍정적인 감정을 담고 있다거나, 나 이외의(부모님의) 기쁨의 감정과 추억까지 일부 담겨있는 물건은 가볍게 휙 던져버리기에는 감정이라는 무게가 꽤 나갔다.

공간과 사람은 시간에 따라 변하지만, 내가 보관하고 있는 ‘물건’은 비교적 그 형태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일까? 우리는 특정 사물에 우리가 겪었던 경험이나 추억을 담아버린다. 그러나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은 그 누구도 거스를 수가 없다. 때가 타고 흰색에는 노란색이 스며든다. 시간이 갈수록 물건이 가진 물질적 가치는 하락하고 가지고 있던 추억은 잘게 으스러져 기억 속에 흩뿌려진다.


PC에서 하드디스크를 주로 사용하던 시절, 윈도우에서 '디스크 정리'라는 것을 주기적으로 해야했다. 하드디스크 이곳저곳에 남은 찌꺼기 같은 데이터들을 효율적인 공간 구성으로 정리해주는 작업이었다. 내 추억도 추억의 물건에도 디스크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나는 물건에 기억을 담기보다 '글'에 나의 추억을, 기억을 담아놓기로 했다. 공간도 차지하지 않고, 디지털 사진처럼 용량을 차지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글로 남긴 추억은 시간이 흐름에 변하지도, 으스러지지도, 때가 타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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