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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의 하루 Jun 21. 2022

굿바이, 문배동 신혼집

나의 첫 자취, 첫 신혼집.

주민등록초본에는 살면서 이사하고 거쳐갔던 주소들이 전부 나온다. 이 주소만으로도 초본이 두 페이지가 되지만 대부분 어렸을 때 기억이라 그 주소에 대해서, 그 동네에 대해서 많은 것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옮겨다녔던 곳들에 대해서는 추억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없고, 전부 기억의 단편들만 남아있다. 초등학교 때의 기억들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옅어지고 있어서 내가 가장 생생한 기억들로 가득찬 집은 당연하게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바로 이 문배동 집이다. 


공급면적 13평, 전용면적 11평. 억지로 만들어낸 투룸 덕분에 비좁은 방과 거실을 가진 집이지만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나면서부터 같이 지내온 가족으로부터 독립하여 살아본 첫 번째 집이었다. 몸의 일부를 본가에 두고온 것처럼 자취의 시작은 어설프고 불편했다. 지붕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입주한 우리는 예비신혼부부였고 이후 결혼해서 살게된 첫 번째 신혼집이었다. 처음 보는 큰 금액의 전세계약을 앞두고 얼마나 많이 떨리고 걱정했는지 계약 전날에는 전세 사기사건에 대한 인터넷 글만 수 십 가지 찾아보면서 잠을 설쳤다. 아무 가구도 없이 옷가지만 싸들고 들어왔던 시작부터, 가구와 가전을 고르러 돌아다니고, 결혼 준비를 하나씩 해나가고, 결혼식날 정신없이 짐을 들고 신혼여행을 떠났던 그 집. 신혼 여행에서 새벽에 돌아와 용문시장에서 국밥을 먹고 짐을 풀자마자 깊은 잠에 들었던 문배동 집. 결혼 생활 시작하면서 용산 아이파크몰 마트에서 음식 재료와 필요한 생활물품을 사들고 집까지 손잡고 걸어온 나날들, 저녁먹고 산책을 나가서 저 가까이 남산타워를 보면서 거닐던 열정도와 삼각지, 퇴근 후 나가고 싶은 날에는 차를 가지고 모기에 뜯기면서도 남산에 갔다오거나 해방촌을 넘어 이태원까지 가던 드라이브, 야식이 먹고 싶을 때 자주 찾았던 집 앞 열정도, 주변에 처음 생긴 자취방/신혼집인 덕분에 친구들과 아지트처럼 지내던 나날들. 이 천장 아래서 얼마나 많이 웃고 울고, 이야기와 행복를 나눴고, 사랑을 이야기 했는지 돌이켜보면, 남들에게는 11평 남짓의 삭막한 투룸이 우리에게는 찬란했던 삶의 무대였다.


문배동에 살면서 더 많은 곳을 가보고, 더 많은 곳을 가보지 못한 것을 온전히 코로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지만, 2년 중 1년은 꼼짝없이 코로나와 함께 보내 아쉽긴하다. 이곳을 완전하게 누리지 못한 느낌이다. 


뭐든지 처음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몇 년만 지나도 지금이 참 그립고 아쉬울 것을 이제는 미리 알아버려서 마음이 더 먹먹한 느낌이다. 이미 멈출 수 없는 기차처럼 지나가버리는 시간이 이 계절, 겨울의 찬바람처럼 재빠르게 지나가버린다. 나는 멀뚱히 발을 딛고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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