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듀 Sep 24. 2021

일흔셋 엄마, 스물아홉 딸 울릉도&독도 여행

엄마 데리고 여행하는 늦둥이 딸

벌써 몇 달이 지난 일이지만, 4월경 급성 패혈증으로 엄마를 잃을 뻔했었다. 그때 면회도 안 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 복도에 앉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엄마가 울릉도 가고 싶다 했었는데...'

코로나만 아니라면 해외여행도 흔하디 흔한 요즘이지만, 해외여행이 아직도 낯선 엄마의 워너비 여행지는 여전히 울릉도였다. 아직 공항이 들어서지 않은 울릉도는 왕복 루트만 해도 멀고 험난한 일정이었고, 회사 생활하며 눈치 보느라 긴 휴가 일정을 잡지 못해 마냥 미뤄왔었던 나였다. 그게 그 순간 너무나도 후회가 됐다.

엄마는 다행히 회복했다. 그리고 8월을 마지막으로 나는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 퇴사했으니 휴가 일정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진 나는 오직 날씨만을 고려하고 여행 일정을 계획했다.



2박 3일간의 울릉도&독도 여행이 시작됐다. 마지막 날 태풍의 영향이 있을 수 있다 했으나 '퇴사한 마당에 여차하면 이 핑계로 여유 있게 울릉도에 갇혀있지 뭐.' 싶었다.

첫째 날은 독도를 다녀와 숙소 앞 산책을 하는 것만으로 해가 저물었다. 너무나 짧은 독도 입도를 투덜대면서도 여행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마다 '3대가 덕을 쌓야야 독도에 입도한다'며 은근히 자랑하는 엄마였다.



엄마, 저기 화장실 있다!

나이 든 부모님과의 여행에서 화장실은 필수다.

몇 년 전만 해도 부쩍 화장실을 자주 가는 엄마에게 짜증이 났었다. 그럴 때면 '아까 다녀와놓고 또 가느냐', '미리미리 다녀오지 그랬느냐'며 짜증을 부리곤 했다. 하지만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걸 넘어 화장실만 보면 먼저 나서서 엄마에게 다녀오라고 한다.



너나 찍어~ 난 싫어.

여전히 피부 좋다는 소릴 듣는 엄마도 늘어가는 나잇살과 주름은 어쩔 수 없었다. 겉모습에 나이가 드러날수록 엄만 사진 찍는걸 점점 더 싫어했다. 그런 엄마에게 남는 건 사진뿐이라며 어찌어찌 세워놓고 좀처럼 웃지 않는 엄마에게 좀 웃어보라며 억지로라도 사진을 찍었다. 어쩌면 훗날 나를 위해서 찍는 사진일지 모른다.



 부모님과 여행엔 돈을 좀 쓰자.

메인이었던 둘째 날엔 택시투어로 울릉도 일주를 했다. 투어비로만 18만 원의 거금이 들었지만 자유여행에서 패키지여행의 장점만 누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동의 편리함은 부모님과의 여행에서 필수 조건이지 않은가. 오전 8시 반부터 시작한 투어로 오후 2시쯤 울릉도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었다. 이후 자유코스로 봉래폭포와 행남 해안산책로까지 다녀오고도 제시간에 저녁을 먹고 일찍 잠들 수 있었다. 여행 일정 내내 날씨가 맑았음에도 태풍이 올라오고 있단 소식 때문인지 가는 곳마다 전세 낸 듯 한가하게 누릴 수 있었다.

나 여기 있을게, 너 혼자 다녀와

이번 여행에서 엄마가 가지 못하는 곳이 부쩍 늘었다는 것을 체감했다. 성격이 급하디 급한 엄만 늘 가장 먼저 나서는 쪽이었고, 어디 여행이라도 가면 가장 먼저 도착지점에 도달해있는 사람이었다. 나잇살로 무거워진 몸에 체력도, 근력도 점점 빠져만 가는 일흔셋의 엄마지만 여전히 매일 새벽 5시면 조깅을 나갈 정도로 걷는 걸 좋아하는 엄마다.

하지만 오랜만의 이번 여행에서는 계단을 올라야 하거나 많이 걸어야 하는 코스에서는 가쁜 숨을 몰아쉬기 일쑤였고, '너 먼저 가'라고 하거나 '너 혼자 다녀와'라고 하기 바빴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엄마보다 앞서거나 뒤쳐져 엄마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유독 많다. 트래킹 성지이기도 한 울릉도는 걷고 올라서는 곳마다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곤 했지만, 엄마의 몸은 그 문턱에서 자꾸만 발목을 잡는 듯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곧잘 따라와 주던 엄마였는데 엄마가 일흔을 넘긴 이후로는 한 해 한해 엄마의 몸상태가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엄마, 울릉도랑 독도 어땠어?

엄마에게 물으니, '하도 사람들이 울릉도~ 울릉도~ 하길래 엄청 날줄 알았는데, 생각만큼은 아니더라.'라고 했다. 그래도 다녀온 지 일주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만나는 사람마다 울릉도에 대해 들떠서 이야기하는 엄마를 보고 있노라면 '꽤 좋았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다. 어찌 됐건 엄마에게 '나만 못 가본 울릉도'가 아닌 '가보니 기대보다는 별로였던 울릉도’가 되어 다행이다.

앞으로 엄마랑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더 남았을지 모르겠다. 이번 여행은 엄마를 위한 여행이었지만, 결론적으로는 내 마음 편하자고 다녀온 여행이었다. 이로써 훗날 하게 될 수많은 후회 중에 하나를 또 덜었다.




작가의 이전글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