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곧 에이전시에서 정직원 디자이너로 일했던 내가 올해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했다.
사실 작년 퇴사를 결심할 때만 해도 프리랜서는 계획에 없었다. 프로젝트의 모험은 즐기지만 소속된 직장의 모험은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직원일 때조차 다음 커리어를 고민하며 늘 이직을 준비하는 듯한 피곤함에 시달려왔기에 더더욱 그랬다. 이제 그만 정착하고 싶었다.
에이전시, 중소 인하우스, 대기업. 이렇게 이직의 방향성을 크게 3가지로 설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에이전시는 다시 못 가겠더라.(한번 정도는 더 해볼 생각이 있지만) 야근을 넘어 밤샘 작업에 주말출근까지. 이걸 몇 년 간 반복하다 보니 몸이 망가지는 게 느껴졌고 이러한 업무 양에 비해 너무 귀여운 연봉은 현타만 불러왔다. 이러다간 이 적은 급여마저 나중엔 병원비로 다 들어가겠다 싶었다.
물론 여전히 가고 싶은 에이전시도 있긴 하다. 정말 뛰어난 실력자분들이 모여 엄청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곳은 이러한 고생 몇 년 더 하더라도 가고 싶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곳은 자리가 잘 나지 않는다는 슬픈 현실.
이직의 방향성을 정하기 전, 지금 내가 이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것을 확실하게 정의 내려야 했다.
첫 째,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 에이전시에서 웬만한 비즈니스는 다 경험해봤지만 그럼에도 아직 해보지 못한 두 가지의 비즈니스 분야를 경험해보고 싶다.
둘째, 인하우스 내부의 디테일한 데이터를 통해 좀 더 근거 있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
인하우스는 두 번째와 같은 확실한 장점이 있지만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해보고자 하는 첫 번째 목적은 달성하기가 힘들다. 결국에 에이전시의 장점과 인하우스의 장점 모두를 만족해야 했다. 이 두 가지 모두를 성취할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프리랜서였다.
아무래도 프리랜서 급여가 훨씬 더 높다 보니 텀 없이 계속해서 다음 프로젝트를 이어갈 수만 있다면 앞서 언급한 두 가지 모두를 성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이전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 있었다. 그동안 에이전시의 작고 조그마한 연봉에 지칠 대로 지친 나였기에 이 또한 큰 이유가 되었다.
그렇다면 일거리는 많은가? 사실 나도 이제 시작한 거라 가타부타 확정 지어 말하기엔 조심스럽다.
하지만 확실히 프리랜서가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끊임없이 올라왔고, 현재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있는 프리랜서 경력 5년의 디자이너분께 물어본 결과 일은 정말 많다고 하셨다. 한번 해놓으면 연락이 먼저 오는 경우도 있고 해서 5년 동안 꾸준히 일을 해왔다 하시니 나도 타이밍 맞춰 바로바로 다음 프로젝트를 잘 노려봐야지.
물론 앞서 말했다시피 직장에 있어서는 소속감과 안정감이 있는 것을 더 선호하는 편이기에 프리랜서를 오래 지속할 생각은 아니다. 다만 지금 내 시기에 여러모로 가장 적합한 선택이었고,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비즈니스 분야 두 가지를 경험해보는 것을 목표로 최장 2년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동안에는 돈과 커리어를 쌓는데 최대한 집중할 생각이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봐야지.
다만 프리랜서는 최소 5~6년 차는 되었을 때 도전하는 걸 추천한다. 물론 연차가 너무 안됐을 땐 잘 써주지도 않겠지만 그걸 떠나서 개인 역량을 다지는데도 너무 이른 프리랜서 진입은 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탄탄한 기본기도 없이 진입했다가는 실력 없이 연차만 쌓이는 디자이너가 되기 십상이다.
어찌 됐건 첫 스타트를 끊은 현재, 프로젝트의 아름답고 깔끔한 진행과 마무리를 위해 열심히 달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