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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의 생각노트 Jan 17. 2022

대충 살아도 살아진다

계획 강박에서 떠나 무계획의 자유로움으로

스스로 만족하는 한 해를 보내는 방법

새해가 밝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2022년 0시 02분 00초가 나의 새해였다.


결혼식을 마치고 난 뒤 일본으로 먼저 떠나게 된 남편과 나는 함께 새해를 보내기 위해 하루 종일 줌(Zoom)을 켜놓고 각자 할 일을 하면서 자정이 되기를 기다렸는데 바보같이 새해를 몇 분을 남가지 않고 내가 신년맞이 기도를 해주겠다고 두 눈을 꼭 감고 구구절절 올해와 내년을 위해 기도하는 사이 이미 새해가 지나가 버렸다. 나도 남편도 이런 것에 크게 의미 두는 사람이 아니라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번만큼은 무지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에 어린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0:02:00을 우리의 새해로 하자며 전 세계가 아직 카운트 다운의 열기에 취해 있을 때 다시 우리만의 카운트 다운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줌을 켜놓고 각자 할 일 하는 우리 모습

2분이 지나서일까, 새해라서 특별한 게 없어 보였다. 한국식으로 떡국을 먹거나 일본식으로 소바를 먹지도 못했고, 모니터 앞에서 보낸 조촐한 새해여서가 아니라 우리가 몇 분 전 '작년'이라고 불렀던 순간과 2분이 지나 맞이한 '새해'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어 특별히 인상적이지도 않았다.


그렇게 맞이한 새해여서 일까, 대충 넘어가려는 속셈은 아니지만, 이번 해에는 특별한 계획도 만들지 않았다.


20대였을 당시, 캐나다에서 살았던 나는 계획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대학 졸업 뒤 직장 생활하며 들어온 연극 작품 제안이 원활한 것도 아니고, 작품을 맡기라도 하는 날엔 조명을 디자인하고 설치하느라 밤샘 작업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부업으로 하고 있었던 결혼, 무대, 그리고 배우 프로필 사진 촬영도 항상 꾸준한 게 아니어서 나에게 계획이라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이런 나의 라이프 패턴은 20대 중반에 급작스럽게 방문한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을 통해 변화되어갔다. 2015년도 8월에 입사한 첫 직장은 한국에서 가장 한국스러운 회사로 중학교처럼 복장 규정이 있었고, 정해진 시간에 모두가 같은 빌딩으로 발맞춤을 하며 출퇴근을 했고, 정해진 시간에 점심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회의를 했다. 각 부서는 기획 전략팀은 각 실장들과 매 분기, 반기, 그리고 한해를 위한 플랜을 작성해야 했고, 그 작성된 전략을 밤새 번역하고 이해해서 다음날 통역을 하는 게 나의 몫이었다. 돌아보니 귀찮은 적도 많지만 모두가 하나의 목적을 위해 각자의 역할을 해내는 과정이 나는 생각보다 즐거웠던 것 같다. 이런 규칙적인 조직생활을 하다 보니 나 스스로가 나의 전략 기획실이 되어 반기, 분기, 그리고 매달 별로 액션플랜을 짜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런 내 모습에 오랜만에 나를 만난 친구들은 어색해했지만 이제는 친구들 사이에서 계획충으로 불릴 만큼 계획이 없으면 다소 불안감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런 내가 몇 년 사이 키워온 나의 계획 강박을 버리고 계획을 세우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1) 결혼 뒤 내가 다시 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 혼자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쌓아 온 생활 습관들이 안정감을 찾아가면서 불필요함을 느꼈다

(2)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다시 한번 체감했고,

(3) 큰 프레임만 있다면 그 안에서 일어나는 통제되지 않는 사건들을 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이게 대하는 것이 더 풍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생각보다 마음이 편해질 뿐만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부터의 기대들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2분 늦은 2022년이지만, 아마 분명 남들보다 2분 더 진하게 이번 한 해의 깊은 감동을 느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모두 계획보다는 온몸으로 매일을 느끼는 한 해가 되길.


2022-01-17

서울, 한국


#새해 #다짐 #계획보다는태도 #감사 #머리보다는느낌 #습관 #동기부여 #경쟁보다자기와의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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