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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의 생각노트 Jan 26. 2022

격리 2일차: 격리 앱이 야동 앱이 될뻔했다

코시국에 일본으로 이민 간 캐나다 여자의 격리 일기

격리 2일차 기록

(왼) 현관 앞에서 보이는 방 구조 (오) 일하는 책상 바로 뒤에 놓여진 침대

격리 2일 차다.


지금 머물고 있는 APA Ryogoku Eki Hotel 은 도쿄도의 료고쿠 역에 위치하고 있는 비즈니스호텔이다. 작은 방으로 유명한 호텔이지만 격리 기간 동안에도 계속 일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대학교 기숙사의 미약한 인터넷으로 일하는 것보다 감사하지만 평소 몸이 잘 붓는 체질 때문에 매일 1시간 이내의 러닝과 깨끗한 집밥을 고수했던 나로서는 (아니 어느 누구라도 그렇지 않을까) 6일간의 격리가 그다지 반갑지 않은 건 사실이다.


격리가 하루 이틀 만의 문제가 아니니, 6일 동안 최상의 컨디션으로 버티기 위한 생존 방법을 이곳에 머문 이틀 동안 스스로 터득하고 있었다. 


첫째,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허리 스트레칭을 10분 동안 한다. 

남편의 외할아버지가 건강을 위해 하루에 6시간 정도 운동을 하시는데 그중 하나가 기상을 하자마자 침대 위에서 스트레칭을 겸한 근력 운동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던 게 생각이 났다. 90세가 넘으셨는데도 정정하시고 아기 피부처럼 피부가 윤기 나는 피부를 가지셨는데 필연 부지런히 몸을 항상 움직이시는 게 큰 요소가 아닐까 싶었다. 감명만 받고 멈추기엔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으니 할아버지처럼 40분은 못해도 적어도 10분은 하고 있다.



둘째, 소식과 더불어 하루 종일 따뜻한 물이나 티를 계속 마신다. 

맹물을 마시는 것보다 호텔 객실 내에 비치된 녹차 가루, 커피,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티백 (쌍계명차의 보리차, 우엉차 나 오설록의 티백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와 이온음료를 대신할 링티를 번갈아가며 점심, 저녁 대신 마셨다 (푸드파이터의 불명예를 이겨내고자 하루에 한 끼로 음식양은 줄였다). 따뜻하게 내려 마시니 맹물보다 맛도 좋고 몸도 따뜻해지니 일석이조인듯하다. 참고로 친구가 결혼 축하 겸 선물해준 머그잔이 있어서 따뜻한 물도 편하게 내려 마실수가 있었다. 


셋째, 지루할 틈 없이 하고 있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마시는 물은 밖에 내어 놓지 않고 나만의 방법으로 독특하게 전시하여 스스로 살아있음을 눈으로 확인한다 (내 방에서 내가 행위 예술하겠다는데 뭐 어쩌겠냐는 마인드). 


넷째, 검역직원들이 돌아다니지 않는 시간을 틈타 공기 순환을 위해 물병을 현관문 사이에 끼여놓는다. 

도쿄 호텔들은 투숙객들이 호텔방에서 자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창문을 열지 못하게 되어 있거나 극소로 열리기 되어있어서 아침 햇살이 비치는 아침이면 먼지가 바닥에서 공중으로 아름답게 비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검역직원들도 저렇게 문을 살짝 열어 놓더라도 특별한 제지를 하지 않았다. 단지 조금 추울 뿐.


마지막으로, 매일 반신욕을 한다. 

몇 년 전 친구랑 일본 여행을 왔을 때도 하루 종일 밖에서 놀다 숙소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반신욕 했던 기억이 났기에 한국에서 떠나올 때 신혼여행 선물로 받은 배스 솔트와 배스 밤을 챙겨 온 게 신의 한 수였다. 작은 욕탕이지만 컴퓨터를 살포시 걸쳐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방 공기가 차가워질 때쯤 욕실에 따뜻한 물을 받아 반신욕을 한다.


어제는 저녁에 일을 다 마치고 반신욕을 했는데 오늘은 낮에 유난히 몸이 추워 미팅이 한두 시간 전에 몸을 데우기 위해 오후 4시쯤 반신욕을 했다. 한 시간이 지난 5시쯤 평화롭게 반신욕을 마무리하고 옷을 꺼내 입으려던 순간 일본 검역 감시 애플리케이션 MY SOS 앱이 울리기 시작했다. 


보통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총 두 번 격리 감시를 진행하는데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지 않고 알람이 울리면 불시에 받아 격리자의 위치를 알려야 한다. 두 번의 감시가 다 영상통화가 아니어서 저녁엔 문자겠거니 하며 의심 없이 옷을 다 입지도 못한 채 앱을 켰는데 영상 통화가 연결되는 바람에 당황스러운 기색을 면치 못했다. 


보통 비디오 화면은 증명사진을 찍는 것처럼 얼굴과 어깨라인 틀에 본인 얼굴을 맞춰 본인이 머무르고 있는 장소 배경을 약 30-40초 동안 비춰야 한다. 그런데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은어 깨도 보여줄 수 없으니 빨갛게 달아오른 나의 눈, 코, 입, 그리고 화장실 천장뿐이었다. 나름 최선을 다해 얼굴을 틀에 맞춰보려 했지만 분명 그랬으면 노출증 걸린 사람처럼 나의 상의가 보였을 테니 떨리는 손으로 몇 초 남지 않은 시간이 얼른 지나가기만을 바랬다. 이런 나의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이름 모를 검역원은 오늘 내 영상을 스크린으로 확인하며 주변을 살폈어야 했다. 자세히 보지 않았으면 주변 사람들이 정체 모를 배경과 확대된 한 여자의 얼굴을 보고 있는 그 검역원을 이상한 영상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오해할 수 있기에.. (흑흑)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며 주섬주섬 마지막 옷과 양말을 신고 있는데 또 검역직원이 문을 두드렸다. 


- '똑똑'

- 하이!

- 우버 데스 

- 하이!


우버가 아니라 사실 남편이 전날 주문해준 SD 카드였다. 격리 벤토에 질린 사람들이 우버 이츠를 통해 (우리나라 쿠팡 이츠나 배달의 민족처럼 일본은 우버 이츠를 많이 애용한다고 한다) 다른 음식을 주문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비해 배달 비용도 비싸고, 음식값도 많이 비싸 한두 번 사 먹을까 말까 하는 금액이지만 격리만 끝나면 당장이라도 사 먹고 싶은 음식 리스트를 벌써 많들어 놓았다.


푸드파이터로 오해받기 쉽게 친절하게 메세지 까지 보내주신 남편님

하마터면 격리자를 감시하기 위해 개발된 격리 감시 애플리케이션이 야동 앱이 될 뻔했다는 나의 이야기에 남편과 나는 또다시 크게 웃었다. 이렇게 나의 격리 2일이 지났다. 나의 이 웃픈 에피소드는 끝이 보일 랑가 모르겠다..


To be continued...


2022-01-26

Tokyo,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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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보다 사진으로 함께 경험하고 싶다면

https://www.instagram.com/yjsdanie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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