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알고 있기 아까운 세계 맛집들 - 도쿄, 일본
남편은 음식을 좋아한다.
아니 조금 더 구체적이게 표현하자면 그는 돼지고기를 사랑한다.
돼지고기를 생각하자니 우리의 첫 데이트가 생각났다.
태어나기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뺏속까지 한국인인 남편은 일본에서도 한국음식을 해먹을 정도로 한국음식을 사랑한다. 코로나 전에는 가족들을 방문하기 위해 일 년에 한 번씩 한국을 방문해 그간의 한식 갈망을 해소했다고 하지만 코로나가 터진 이후 굳이 한국을 방문이 지연되면서 그의 먹킷 리스트는 단순하면서도 명확했다. 나 또한 타지에서 살아보았기에 한식에 대한 로망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그의 먹킷 리스트를 격파할 특별한 방도가 없어 보였다.
한국에서의 첫 데이트를 하나의 테마로 요약한다면 어쩌면 '돼지고기로 이루어진 한식'이 아닐까 - 수육, 족발, 돈가스, 삼겹살, 김치찜 등 나 스스로는 한 달에 한두 번 먹을까 말까 하는 고기 마일리지가 사랑이 싹트는 데이트 기간 동안 다 채워져 버렸다. 물론 우리가 갔었던 곳들은 로컬 맛집 중 맛집들이었기에 먹을 땐 맛있게 먹었지만 어느 순간 지브리 영화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떠오르면서 영화 속 돼지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상상이 들기도 하고, 달달한 족발과 다량으로 섭취했던 마늘 냄새의 향연이 다음날이 되어도 입안과 몸속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아 내가 토실 토실한 도야지가 된게 아닌가 싶어 괴로웠다. 왜 입맛과 체질은 함께 가지 않는 것인가요.
하루는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하기 위해 눈앞에 보이는 돈가스 집을 들어간 적이 있었다. 전반적으로 맛집이 많던 지역이라 의심 없이 들어갔던 이 돈가스집은 젊은 청년들이 운영하는 일본식 돈가스 집이었다. 튀긴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날 내가 먹은 치즈돈가스는 적당히 바삭한 튀김과 얇은 고기, 그리고 치즈의 조합이 충분히 맛있다고 느끼며 먹고 있었는데, 남편이 조용히 본인 그릇 위의 고기를 (깨끗하게) 먹고 난 뒤에 '나중에 네가 일본에 왔을 때 우리 집 근처에 있는 돈가스 집 가자. 거기는 돈가스만 평생 튀기신 할아버지가 직접 튀기는 거라 네가 어떻게 느낄지 궁금하다'라며 엄숙히 우리가 먹은 돈가스에 대한 어떠한 평가도 하지 않은 채 젓가락을 그릇 위에 올려놓았던 게 기억이 난다.
그러고 6개월이 지난 올해가 되어서 우리는 그 돈카츠 집을 정말 함께 가게 되었다.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집을 떠나기 30분 전 식당에 전화해서 자리가 있는지 확인 차 전화를 하는 남편의 핸드폰 건너 들려오는 깐깐한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식당에 대한 편견을 줬다.
남편: 여보세요. 저희 저녁 7시에 두 사람 가려고 하는데요, 자리가 있을까요?
식당: 지금 시간과 자리가 조금 애매하네요. 확인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남편: 아 그렇군요. 제가 동네 주민인데요, 이번에 꼭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요. 어떻게 안될까요?
식당: 아 그러시군요. 흠. 알겠습니다 자리를 내어 보도록 하지요. 성함 알려주세요.
무슨 식당이 이렇게 까탈스럽지라고 생각하면서 내심 맛이 없으면 두고 보자 하는 마음으로 남편과 함께 식당으로 걸어갔다. 15분 정도 걸었을까. 코너를 돌아 우리는 하얀 천 위에 'とんかつ (돈카츠)'라고 써져있는 주택이 보였다. 건물이 다가올 때쯤 그 건물 안에서 손님으로 보이는 한 여성분이 현관을 열고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굉장히 강렬한 첫 만남이다.
이층 집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것 같은 이 식당의 현관을 들어서면 귀여운 돼지 모형들이 삼삼오오 한 곳에 모여 손님을 맞이 한다. 현관을 지나면 오른편에 계산 카운터와 주방이 배치되어있고 싱싱한 고기가 카운터 하단에 진열되어 있어 왠지 모르게 사장님의 고기 부심이 남달라 보였다. 예약자 명을 얘기하면 주방장의 지긋히 나이가 들어 보이시는 한 여성분이 우리를 2층으로 데려갔다. 그분은 흰색 머리카락이 검은색 머리카락보다 많아 이미 머리가 회색이 되어버렸지만, 날렵한 몸매 위에 걸쳐진 셰프 유니폼과 같은 흰색 유니폼에 세련된 금색 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이 모습이 한국의 고깃집 사장님 혹은 종업원들과는 다르게 느껴져 인상에 오래 남는 것 같다.
우리는 기본 중의 기본 메뉴인 로스카츠 (두께 추가)를 시켰다. 메뉴를 시키고 나면 맥주 한잔과 어울릴 짭짤한 오츠 마미(술안주)가 애피타이저로 나온다. 올리브유로 마리네이트된 토마토, 장조림처럼 간장과 설탕에 졸인 돼지 간, 참치 카나페가 나온다.
애피타이저를 먹고 나서야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일본에서의 첫 식당인 만큼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로웠다. 선풍기 중앙에 달린 돼지코 그림이라던지 책상 옆 조그맣게 비취 된 여러 종류의 소스 통 들 - 알파벳 M이 써져있는 은색 머스터드소스 통, 고추기름이 담김 유리병, 엄지손가락보다 작은 소금 통, 그리고 수제 돈카츠 소스 - 그리고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고독한 미식가처럼 혼자 책이나 핸드폰을 보며 음식을 먹는 사람들 (오른쪽 구석에 앉아서 혼자 밥을 드시던 할아버지는 첫 직장 팀장님과 너무 닮아서 순간 멈칫했다)까지 다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메인이 나오기 전 잘게 썰린 양배추와 쌀밥, 그리고 미소시루가 먼저 나온다. 서빙된 흰밥에서는 윤기가 나고, 미소시루는 짜지 않았다. 일본 사람들은 양배추를 캬바츠라고 부르는데, 돈카츠랑 같이 먹기 위해 서빙된 카바츠를 한입 먹어보니 야채 만으로도 입안 가득 단맛이 느껴져서 고기랑 함께 먹으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돈카츠 녀석이 나왔다.
녀석은 바로 튀겨져서 서빙되지 않고, 스테이크처럼 잠시 레스팅(resting)이 되어 나온다. 이렇게 잠시 레스팅을 하는 이유는 고기 겉면에 닿은 기름의 온도로 고기 전체의 육즙을 데워 그 육즙이 고기 안에 고르게 퍼지게 하게 하려 함인데, 이렇게 했을 때 육질이 굉장히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보통 잘못 튀겨진 돈카츠는 레스팅 하면서 육즙이 빵가루에 세어서 껍질이 눅눅하게 서빙이 되는 반면, 이날 내가 먹은 돈카츠는 바삭한 빵가루의 식감은 식감대로, 육즙은 육즙대로 스테이크를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잘 보존이 되어있었다. 비계도 살코기와 비율이 잘 맞아서 입안 가득 담백한 맛과 기름진 비계 맛이 고소했다.
식사를 마친 뒤 계산을 하러 내려갔을 땐 주방장이 직접 결제를 해주셨다. 당연히 계산을 마치고 현관문을 나가려는 찰나 주방장 또한 계산대 앞을 나와 우리와 함께 현관으로 걸어 나오는 게 아닌가. 속으로 우리 때문에 문을 못 닫아서 빨리 닫고 집을 가려는 건가 했는데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현관 앞에서 우리를 배웅하는 것이었다. 남편 말로는 일본 식당들 중 종종 식사를 마친 손님에게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손님을 배웅하는 정서가 남아 있는 곳들이 있다고 했다. 사실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이 부분만 있던 게 아니었다. 룸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의 신발을 무릎 꿇고 정리하는 서빙 직원도 우리를 배웅하는 아저씨만큼이나 생소했다.
아직 많은 것들이 생소하지만 그럼에도 이 문화에 대해 더 많이 읽으면서 배워야 할 것 같다.
2022-02-17
東京、日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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