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니엘의 생각노트 Apr 28. 2022

새댁의 일본 거주 1분기 보고서

일본 생활 3개월 차, 신혼 5개월 차 새댁의 자기 분석 기록

1. 터전을 옮기다.

결혼을 하면 누구나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된다.


보통은 가까우면 옆동네, 조금 멀리 가면 다른 지역 정도라고 하면 나는 바다를 사이에 둔 먼 나라 이웃나라인 일본으로 터전을 옮기게 되었다. 나의 엄마도 부산 태생의 여자인데 우연찮게 서울 남자를 만나 서울로 상경을 했으니 이것도 집안 내력이라면 집안 내력인가 보다. 여태껏 나라 간의 이동을 세어보자면 총 네 번의 이주를 경험했다. 그런데 왠지 나는 지금 머물고 있는 일본이 나의 마지막 정착지가 될 것 같지가 않다.  


일본으로 떠나오는 과정이 어렵지는 않았다. 엄마도 결혼 뒤 할머니가 계신 부산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지냈기 때문에 엄마에겐 결혼 뒤 자녀의 떠남이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당연하게만 생각했다지만 최근 유명한 드라마 '파친코'에  보면서 주인공 선자가 남편과 일본으로 떠나기 위해 엄마와 힘들게 헤어지는 장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버렸다. 어쩌면 말로는 당연하다고 하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가끔 가족과 보고 싶으면 볼 수 보러 갈 수 있는 거리에 지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생각할 때면 아쉬움인지 아픔인지 모르는 감정이 들기도 한다.


2. 한국과 캐나다와는 또 다른 나라, 일본.

4월 말이면 일본에서 머문 지 3개월이 된다. 나와 같이 검은 머리에 갈색 눈동자를 가진 일본인들에게서 크게 이질감을 느끼지는 않지만 살아보니 조금씩 그들과 내가 보고 느끼는 세상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2-1. 패션

넓은 품이나 기장이 긴치마나 바지를 이곳 여성들 즐겨 입는 것 같다.

짧고 파인 옷을 입는 것에 대해 편견이 적은 한국인과 북미 사람들과는 달리 일본인들은 기장이 길고 품이 넓은 옷이 대중적이다. 몸의 실루엣을 대놓고 드러내기보다는 옷감 아래 조신하게 숨겨둔 몸과 옷이 조금 더 역동적인 실루엣으로 다양한 분위기와 느낌을 표현해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양한 문화가 섞여있어 모두가 그런 건 아니고, 패션에 대해 일도 모르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몇몇 일본 하이엔드 (hi-end) 패션을 보면 (이세이 미야키 등) 품이 넓고 패턴은 단조롭지만 좋은 원단으로 다양한 질감과 형태를 표현해내는 것을 더 중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2-2. 건축

자연재해에 노출되어있는 나라여서 인지 대부분 건물들이 한국에 비해 층수가 낮다. 낮은 대신 넓게 펼쳐져 있어 안정감을 느낄  있으며, 단조로울  있는 저층 건물들에 곡선을 더해져 지루할 틈이 없다.  고층 건물들은 (하중을 고르게 나누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고층 건물들 사이에 다리가 연결되어있다. 물론 이것은 내가 가본 몇몇 도쿄 건물에만 해당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건물들을 걷다 보니 어디  곳에 있다는 느낌보다는 사방이 연결된 하나의 도시를 걷고 있는  같은 신기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2-3. 경기 침체가 가계에 미치는 영향

계속되는 엔화 약세와 멈출 줄 모르는 물가에 이곳 사람들의 모습은 더욱 소박해 보인다. 물론 도쿄의 중앙은 아직도 바쁘고 화려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습에서부터가 검소하다. 어쩌면 한국에서의 야채나 과일 가격차이를 느끼면서 아무 생각 없이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바나나 1송이는 (약 7-8가닥) 적어도 3천 원, 많아도 4천 원에 살 수 있다면 일본에서는 한송이가 아닌 바나나 4-5가닥이 4천 원을 웃돈다. 조금 멀리에 있는 야채가게를 가야 조금 낮은 가격에 살 수 있어 일주일에 한 번씩 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국 재래시장에서 질 좋고 양 많은 야채와 과일을 구매하던 나에게는 두나라의 물가 차이가 크게 느껴 다.

 

2-4. 베이킹을 포기하고 한식을 선택하다

건강에도 좋지 않지만 건강에 좋지 않다며 재료를 몇 가지 빼버리니 베이킹이 매번 실패하는 바람에 과감히 포기했다. 다행히 남 편히 내가 만든 한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바람에 한식만 고수하고 있다. 사실 나보다 남편이 요리를 잘해서 그에게 모든 주방권을 넘겨주고 싶지만 뭐라도 해주고 싶은 어미새 마음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주방권을 넘기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는다. 현재까지 나의 요리 선생님은 백 주부님이다.


3.  나를 이해하는 시간

거주지를 옮기는 게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왕 이런 기회가 주어진 거 열심히 해보자라는 마음에서 시작해 여러 아이디어를 생각하다 보니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혼자서는 용기가 나지 않아 도전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남편의 응원에 힘입어 나열하기 시작했다. 우선 '해보면 도움이 될' 공부와 취미활동들을 나열해보니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쓰였고, 다 써 내려가 보니 그냥이 아닌 '잘' 해야 다는 과도한 욕심이 들기 시작했다. 욕심이 마음속에 들어오는 순간, 생각과 마음이 행동보다 너무 멀리 목표를 설정하는 바람에 시작하기도 전에 마음이 지치는 현상을 겪기도 하고 리스트를 써 내려가면서 생겨난 기쁜 마음들이 놀라 도망가버린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무엇이든 잘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이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를 가혹하게 억누르고 있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나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실제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혹시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등 많은 질문들을 스스로 질문할 수 있었고 아직도 질문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도 제자리를 돌고 있는 듯 한 느낌이 들지만 결혼 뒤 이런 것들을 이전보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도전해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감사하다.


4. 결혼 뒤 부부가 된다는 것은

아직 미미하게 서로 발을 맞춰나가는 부부이지만, 부부가 된다는 것이 나에게 이렇게 큰 위안이 될 줄은 몰랐다. 결혼에 대해 특별한 의견이 없었다. 아니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던 나지만, 정작 결혼을 해보니 좋은 친구를 만난 것 같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라는 게 좋을 때가 있으면 싫을 때가 있고, 잘 맞는 게 있다 하면 안 맞는 것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억지로 맞춰가면서 나와 상대가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 또한 결혼의 열매인 것 같다. 또 온전한 의지라기보다 의지가 되어주기 위해 내가 어떤 존재로 스스로 자리 잡아야 하는지 더 깊은 책임감을 가지고 질문하게 되었으니 이것 또한 감사하다.


내 주변에는 결혼을 지나치게 동경하고, 나 반대로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로 결혼에 대한 견해가 양극화가 되어있음을 자주 보게 된다. 그런 친구들에게 나는 종종 이렇게 대답한다. 결혼을 동경하는 사람들에게는 혼자 스스로의 시간을 갖는 법을 배워 실제로 누군가가 다가왔을 때 그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스스로의 힘을 기르는 연습을 가져야 한다고. 반대로 결혼에 대한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의지하는 게 나약한 게 아니라 아닌 척하는 게 나약한 거라고, 내면의 외로움을 직면하고 혼자서 고독하게 무언가를 해내려고 기 쓰기보다 빚지는 게 싫지만 누군가와 짐을 나눠 가지면서 사랑의 빚을 지는 것이 생각보다 즐거운 과정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음식에 대해서도 쓰고 싶은 게 많지만 다음 분기에 몰아 쓰는 걸로.


1분기 보고서 끝.


2022년 4월 29일

도쿄, 일본에서


글보다 사진이 편한 분들에게는 제 인스타그램을 추천해요

https://www.instagram.com/yjsdanielle/


결혼이 엄두가 나지 않거나 생각이 많은 시기라면

https://brunch.co.kr/@yjsdanielle/22


뚜벅뚜벅 일본 탐방기

시부야 속 장벽 없는 미야시타 공원

https://brunch.co.kr/@yjsdanielle/54


디저트 나라 일본에서의 무모한 홈베이킹 도전기 

https://brunch.co.kr/@yjsdanielle/57



작가의 이전글 외국인의 정서적 허기짐을 채워준 도쿄 파머스 마켓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