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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엔탈익스프레스 Mar 31. 2024

2024년의 봄


 3월은 가혹한 달이다. 새 학기, 새 친구들, 새 반에 적응하느라 아이들도 힘겨워 보인다. 그럼에도 주말이 되니 열 살 둘째는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 거라며 나가 버렸다. 확신의 외향형이다. 집순이인 첫째도 그 모습을 보니 어딘가 바람이라도 쐬러 나가고 싶은 모양. 집과 머지 않은 수원 화성으로 나섰다. 


방화수류정 풍경


아직은 쌀쌀한 날씨이지만 수원 화성에는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어딜 가나 액티비티가 필요한 13살 첫째를 위해 수원 화성을 한 바퀴 돌며 해설도 해 주는 작은 기차 모양의 화성 어차도 탔다. 화성 어차는 당일 매표도 가능했지만 당일에 표를 끊으려면 한시간 정도 기다렸다 타야 했다. 어차는 좁고 꼬불꼬불한 화성 둘레길을 요리조리 잘도 다니며 화성의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주었다.  


급히 들어온 카페


 아직은 초봄의 공기가 쌀쌀해서 어차에서 내린 우리는 따뜻한 곳을 찾았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들어온 근처의 카페는 기대 이상으로 아늑했고 따뜻한 음료에 우리는 순식간에 나른해졌다. 


 친구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에세이를 쓰는 챌린지를 하기로 하고 다시 찾은 나의 브런치 스토리는 2022년 봄에 시간이 멈춰 있었다. 그 당시 마지막 휴직을 하며 나는 아이들과 보내는 일상을 주기적으로 업로드하겠다는 야심을 품었지만 고질적인 의지 부족으로 몇 편의 글만을 남긴 채 브런치 스토리를 방치했다. 그래도 2022년에 남긴 글 몇 편을 읽으며 추억에 젖었다. 잊혀졌을지언정 그래도 기록은 의미가 있었다. 


  시간은 어느새 2024년. 나는 한국 나이로 마흔이 되었다.(그리고 나는 올해부터 내 인생에 적극 만 나이를 도입하기로 했다.) 한국 나이 이외에도 올해는 여러모로 나에게 의미가 깊다. 2012년, 첫째를 낳고 2015년 둘째를 얻으며 지금까지 나는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며 지내왔다. 갓난아이를 키울 때 그리고 그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휴직을 했고 작년에는 남편을 적극 독려하여 남편도 육아휴직 행렬에 가담했다. 

  2024년 올해로 둘째가 만 9세가 되며 법적으로 우리 집은 육아휴직을 졸업했다. 육아휴직을 휴가처럼 생각하고 좋아했던 철모르던 첫째 임산부 시절, 휴직을 한다고 할 때마다 듣곤 했던 곱지 않은 한 마디, 복직을 하면 어김없이 배치되던 모두가 원하지 않던 자리, 쪼들리던 가정 경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집에 있어 좋다던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들이 모두 스쳐간다. 

  이제는 휴직 없이 계속 근무할 거라 생각하니 마치 새로 취업이 된 것 마냥 마음가짐이 또 다르다. 육아에서 1차로 해방된 것 같은 후련한 느낌도 든다. 물론 학부모로서의 2막이 열린 것도 늘 체감하고 있고 육아의 끝은 눈감는 그날이라는 선배 엄마들의 말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지만 말이다. 

  

  까페에서 나와 통닭골목에 가 진미통닭을 포장해 집으로 왔다. 훌쩍 커버린 딸은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앉았고, 네 가족에게 닭 한마리가 저녁으로 모자랄까봐 집 근처 타코야끼 트럭에서 타코야끼도 샀다. 집에 오니 아들은 벌써 먼저 집에 들어와 혼자 티비를 보다가 내가 들어서니 얼른 티비를 껐고 주말 근무였던 남편도 돌아와 같이 저녁을 먹으며 주말은 그렇게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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