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성 쥐어짜서 초딩들의 인솔자 되기
우리 집 첫째는 나를 닮아서인지 내향적인 성향에 집순이이다. 그런데 둘째는 주말이면 아침부터 친구들과 논다고 뛰쳐나가 해가 넘어갈 때쯤에야 겨우 귀가할 정도로 친구를 좋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와서는 시무룩해져서 친구 누구랑 누구는 같이 에버랜드에 간다고 했다며 전했다. 그러고는 자기도 같이 가고 싶다며 말끝을 흐렸다.
하고싶은 것들을 모두 다 하고 살 수는 없어. 나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둘째의 희망사항을 회피해보려 했다. 얼굴도 모르는 아들의 친구들 엄마에게 연락을 하기란 낯 가리는 나에겐 꽤나 힘든 미션이었다. 하지만 외면해보려 해도 둘째의 실망한 표정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런게 부모의 마음일까? 결국 나는 아들 친구 둘의 엄마의 전화번호를 구해서 망설임 끝에 카톡을 보냈다. 둘은 이미 에버랜드를 다녀온 시점이었기 때문에, 이번엔 우리 둘째까지 해서 셋을 내가 데리고 에버랜드에 다녀와도 되겠냐고 여쭤봤다.
그렇게 어느 날씨 좋은 오후 나는 우리 첫째에다 둘째, 둘째 친구 두 명 넷을 데리고 에버랜드로 향했다. 가는 차 안에서 끊이지 않는 네 초딩들의 참새같은 수다에 나는 이미 기가 빨렸다. 일단 입장을 하면 초딩 넷을 둘씩 짝지어 놀이기구를 태워 주고 나는 아래서 사진이나 찍어줘야지, 했지만 그 기대도 틀렸다. 같은 열살짜리 아이들이지만 한 친구는 에버랜드 연간이용권 소유자답게 어른들도 무서워서 못타는 스릴있는 놀이기구를 타고 싶어했고, 한 친구는 무섭다며 그런 놀이기구는 타고 싶지 않아했다. 그 와중에 우리 둘째는 혼자 키 130이 넘지 못해서 같이 놀이기구를 타지 못할 때도 왕왕 있었다. 모두의 니즈를 맞추려다 보니 다니며 기구를 타고싶은 사람은 타고 타기 싫은 사람은 기다리는데, 기다리는 아이들의 지루함을 달래주는 것이 나의 몫이 되었다.
입장하면 마냥 동네 놀이터에서처럼 신나게 뛰어놀 줄만 알았던 요 초딩들도 놀이기구에 대한 서로의 취향과 수준이 많이 다르단 것을 확인하고는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두세시간이 지나자 나름 서로 타협하고 의논해가며 또 재밌게 놀았다. 퇴장하며 친구가 둘째에게 말했다. 얘, 너 키 130 넘으면 또 오자! 나는 마음 속으로 대답했다. 그땐 너희끼리 오렴!
퇴근하고 친구1을 데리러 온 친구 엄마와도 인사하고 여러 대화들을 나누고 헤어졌다. 아이의 친구들의 인솔자가 되고, 초면인 아이의 친구 엄마에게 먼저 연락해서 만나기까지 하고…. 아마 둘째가 원하지 않았다면 절대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그런 하루를 보냈다. 원래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것들을 아이들은 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시도하는 일들은 걱정했던 것보단 나쁘지 않고 그 일들을 겪고 처리하며 나는 손톱만큼이나마 좀더 성장하는 기분이다. 내가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아이들도 나를 키운다는 것은 이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