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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엔탈익스프레스 Apr 05. 2022

마지막 휴직, 무엇을 하지?

두 초딩들과 함께 알찬 1년 보내기 계획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마지막 휴직 기간이 시작되었다. 막상 아이들과 함께할 2022년을 앞두자니 마음이 비장해졌다. 앞으로 아마 계속 일하게 될테니 올 한 해가 아마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었다. 


 일하는 엄마 밑에서 자라고 있는 두 아이들을 새삼 다시 바라보았다. 나에게 신생아의 무서움을 가르쳐주었던 첫째가 벌써 11살이 되었다. 엄마 손 잡고 간 학교 교문에서 학교 가기 싫다며 울던 1학년이 어느새 3년간의 학교 밥을 먹고 어엿한 고학년으로 거듭나려 하고 있었다. 둘째는 내가 다닌 직장 바로 앞에 있는 유치원에서 3년을 보내고 졸업해 이제 예비 초등학생이 되었다. 


  아침에 서둘러 일어나 번갯불에 콩 볶듯 준비해서 출근하고 학교며 유치원으로 보내고 나면 해가 저물어 갈 때쯤에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체력이 부족한건지 에너지가 많지 않은 나는 하루종일 일하고 오면 기운이 쭉 빨려 집에 오는 길에 장을 봐서 겨우겨우 아이들 저녁을 차리고 또 치웠고 씻어라, 숙제해라 잔소리하고 돌아서면 어느새 잠 잘 시간이었다.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 아이들은 눈에 보일 듯이 금방 크는데 서로 눈 맞추고 웃으며 이야기할 틈도 없이 그렇게 하루하루가 덧없이 흘러갔던 것 같다. 


  세심하게 신경써주지 못하는 티는 여기저기서 났다. 둘째의 유치원 명절 행사에서 둘째만 한복을 입고 있지 않은 사진을 보고 가슴이 쓰렸다. 직장에서 한창 바빴던 때라 집에 와서도 일 생각을 하느라 둘째의 키즈노트 알림장을 보는 것을 깜빡한 탓이었다. 첫째네 담임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첫째가 다른 친구들에 비해 나눗셈을 유난히 못하니 집에서 연습시켜 달라는 부탁이었다. 퇴근하고 눕고만 싶은 날에 첫째의 싫은 얼굴을 마주하며 둘이 같이 나눗셈 문제들을 풀었다. 피아노, 영어, 태권도를 다니고 있었던 첫째를 수학 학원에 보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둘째의 실내화 가방을 빠뜨리거나 첫째의 물병이나 여분 마스크를 깜빡하고 챙기지 못하는 정도는 애교였다. 


  복직 첫 해에 코로나 19 상황이 시작되며 빈틈은 갈수록 커져만 갔다. 겨우 아홉 살이었던 첫째가 집에 혼자 있어야 되는 시간이 늘어났다. 줌으로 원격 수업을 듣는 방법을 알려주고도 못 미더워 일을 하면서도 내내 신경은 그 쪽에 쏠려 있었다. 원격 수업을 듣게 되며 노트북을 전혀 다룰 줄 몰랐던 첫째는 노트북 사용법에 익숙해졌고 급기야 집에서 혼자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집 노트북 유튜브 계정이 내 것으로 로그인되어 있어서 유튜브가 내 계정에 알고리즘으로 슬라임과 액괴 영상들을 추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알고리즘이 괴담과 연애상담 영상을 띄우기 시작했을 때쯤 그제야 나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던 것 같다. 

 

  마침 그 때 큰애와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영업사원분께 붙잡혀 패드 학습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우리 때 방문 선생님과 함께 했던 종이 학습지가 어느새 작은 태블릿 피시로 할 수 있는 패드 학습지로 나와 있었다. 유튜브보다는 이게 낫겠지 하는 생각에 패드 학습지를 신청했다. 패드 학습지를 마냥 신기해하며 매일매일 제공되는 오늘의 학습을 열심히 하는 모습에 뿌듯했지만...  반년정도 지났을까. 집안 구석진 곳에 방치되어 있는 패드 학습지를 켜 보니 석 달치 오늘의 학습이 밀려 있었다. 


  사회 생활을 하는 입장에서 일보다 아이들을 먼저 생각할 순 없었고, 그래도 남은 힘으로나마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신경써주려 했지만 늘 내 생각같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짜증과 잔소리가 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그런 엄마에게 힘들고 지쳤던 것 같다. 나도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도 나를 사랑했지만 서로 함께하는 시간은 즐겁지 않았던 그런 날들이었다. 


  지난 일들을 생각하다보니 이번 휴직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얼추 가닥이 잡히는 느낌이었다. 다른 무엇보다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늘 지쳐 있고 화내는 엄마가 아닌 웃고 있고 다정한 엄마의 모습을, 들어올 때 텅 빈 집이 아닌 엄마가 기다리고 있는 집을, 학원 여러 개를 돌고 돌아와 숙제와 준비물을 챙겨야 되는 하루가 아닌 햇빛을 받으며 산책하고 뒹굴거리고 빈둥거리는 하루를 아이들에게 유년시절의 기억으로 남겨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구체적인 휴직 목표를 이렇게 정했다. 첫번째로, 첫째는 피아노 학원을 제외한 다른 학원들을 모두 그만두고, 둘째도 2학기 후반까지는 학원 다니지 않기. 대신 내가 복직해서 다시 학원 스케줄을 돌게 되면 들을 수 없는 다양한 방과후 수업과 문화 강좌들을 듣기로 했다. 두번째로,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과 꼭 나들이나 체험학습을 가기. 일할 때, 주말이 오면 아이들은 이번 주말에 어디 재밌는 곳 가지 않느냐며 눈빛을 반짝거렸지만 쉬어야 해서 혹은 밀린 집안일이 부담스러워 외면했던 적이 많았다. 올해는 원없이 다녀 보자고 다짐했다. 세번째로, 이 모든 휴직의 순간들을 브런치에 글로 써서 남기기. 아이들과 보낸 소중한 순간들을 우리 모두를 위해 기록으로 남기자는 의미도 있고, 돌봄 노동이란 건 알아주는 이가 없어 스스로 지치기 쉬우니 나를 위한 목표이기도 했다. 


  3월 2일, 드디어 나의 휴직 기간이 시작되었다. 야심찬 목표와 함께하는 시작은 떨리고 설렌다. 아이들과 나의 2022년이 소중한 추억들로 가득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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