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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지 Mar 04. 2021

쌀에 갇힌 나라, 그리고 갇힌 우리

사회학자 이철승의 '쌀 재난 국가'를 읽고

*문학과 지성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독서했습니다. 해당 글은 우수 서평단으로 채택되었던 서평에 더 보태어 쓴 글입니다.


지리 공부를 좋아했던 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문화는 온통 지리에 의해 결정된 게 아닐까 생각하곤 했었다. 각 나라가 현재의 문화로, 경제로, 체제에 도달하게 된 건 그 나라 사람들이 살아가야만 했던 토지나 기후 등의 다양한 지리 요건에 따른 게 아닐까라고 말이다. 그저 학생 때 한 생각이라 잠깐으로 그치고 말았는데, ’ 쌀 재난 국가’를 읽으며 그때의 생각이 확장되는 기분이었다.


이 책에서는 동아시아의 벼농사 체제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며 현대 사회의 불평등에 어떻게 이르게 됐는지 까지를 설명하고 있다. 나는 특히 내가 감명받은 '벼농사 체제에서 출발한 비교와 질시의 문화’, 그리고 '코로나 펜데믹 속 자기 감시'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0. 쌀, 재난, 동아시아의 국가


쌀이 주식이었던, 그러나 타 동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척박한 환경이었던 한국은 예로부터 벼농사를 위한 공동체가 마을 단위로 매우 촘촘히 만들어졌다. 또한 그 마을 단위 위에는 벼농사를 위협하는 재난이 닥쳤을 시, 그들을 구제하는 주체로서 국가가 존재했다. 벼농사는 다른 농사보다 가뭄, 홍수 등 재난에 타격을 크게 입었기 때문에 국가의 역할이란 매우 중요했다. 


이는 결론적으로 밀농사가 위주였던 서양의 국가 개념과 다르게 된 원인이 된다. 서양에서 국가란 개개인을 하나로 묶어주는 사회의 약속과 같은 개념이었다면, 벼농사 국가에서의 '국가'란 그들을 구제해야 하며 재난에 대비해야 하는 실체적 존재였다. 


국가라는 시스템은 평시의 기능도 중요하지만, 재난에 대비하여 작동하는 기능은 더욱 중요하다. 재난은 개인 수준에서의 대비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재난 시기에 대규모의 인적, 물적 자원의 배치를 효율화하고 집중화함으로써 개인이 대비하거나 극복할 수 없는 '방비 및 방제' 기능을 수행하고, 피해자를 돌보는 구휼의 기능 또한 담당한다. 재난의 시기,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유일무이한 주체로 그 지위가 격상된다. - p.106


저자가 위와 같이 말하듯, 벼농사 체제의 국가는 재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 떠오른다. 그렇기에 국가가 재난을 어떻게 통제하는지, 국민을 어떤 식으로 구제하는지에 따라 국가의 위상이 결정되게 된다. 코로나 19만 보아도 국가의 대응 방식에 따라 정부에 대한 평가가 시시각각으로 변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벼농사 체제는 국가의 역할만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우리들의 삶에 보다 가까운, 개인이 속해있는 공동체와 개개인 또한 벼농사 체제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1. 벼농사 체제에서 출발한 비교와 질시의 문화


마을 단위의 공동체는 경쟁과 비교의 문화를 띄게 된다. 가족 단위로 재배하여 가족의 삶을 개인적으로 꾸렸던 서구의 밀 농사와 달리, 동아시아의 벼농사는 각자 소유한 땅을 마을 공동체가 다 같이 경작하고 분배는 각자의 몫으로 했다. 흔히 들어왔던 두레, 품앗이 등이 그 예시다. 함께 노동한 에서 각자 몫을 가져간다는 점에서 공동체 내의 비교와 경쟁은 더욱 극심해져 갔다. 촘촘한 마을 공동체 안에서 눈치껏 보이는 결과들이 그를 심화시켰다. 결국 이들의 행복은 그저 많은 양을 경작하는 게 아닌, 타인보다 더 많이 경작하는 것이 되었다. 또한 그 타인은 일반적 타자가 아닌 바로 우리 옆의 동료들, 혹은 가족들이었다.


벼농사 문화의 개인들은 '집단 속 주체들'이다. 잘 직조된 사회적 관계 속에 놓인 주체들이라는 의미다. ... 가족과 혈연 및 공동노동으로 엮인 이웃사촌들과의 관계 속에서 개인의 '사적, 독립적 공간'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벼농사 문화의 개인들은 집단 속에서 어떻게 처신하고 자신의 역할을 완수할지를 어려서부터 학습했다. - p.123


위의 본문은 벼농사 문화의 상황을 쉽게 상상할 수 있게 한다. 공동체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이웃사촌과 같은 말이 등장할 정도로 모두가 매우 긴밀한 관계로 연결되어있다. 그 관계 속에서 개인은 개인으로서 온전히 존재하지 못하고 집단의 영향을 끊임없이 받는다.  


이 시스템 안에서 개인들은 서로의 수확량을, 서로의 성적을, 서로의 소득을, 서로의 직업적 성공을 수시로, 1년에 열두 달, 인생 전체에 걸쳐 비교하고 평가한다. 질시는 바로 이러한 비교에서 싹튼다. 이 비교의 쳇바퀴 속에서 패배자는 불행해진다. 인생의 행복의 준거가 자기 내면에 있지 않고, 이웃과의(그들은 당신의 씨족을 포함한다) 관계, 그 관계 속의 비교에 있기 때문이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결론적으로, 벼농사 지역 정주민의 행복은 관계로부터 온다. 나와 내 자식이, 내 가족의 수확량과 소득과 지위가 이웃보다 더 많고, 우월해야 한다. 내 행복의 근원은, 나라는 독립된 개인의 내면의 충만감이 아니다. 내가 남보다 더 잘났다는 것을 남의 눈으로 남의 입으로 확인받을 때, 동아시아 벼농사 지역의 정주민은 더욱 행복해(뿌듯해)한다. - p.135


그리고 이는 결국 위의 본문과 같이 공동 노동에서 나온 자신의 몫을 주변과 더욱 철저히 비교하는 토대가 된다. 오히려 공동 노동이 아닌, 각자 노동을 통한 자급자족이었다면 비교와 질시가 이렇게까지 극심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요약하면, 동아시아 벼농사 체제의 공동생산 시스템은 평등화를 향한 강한 집단적 심리 기제를 발동시키지만, 개별 소유 시스템은 무한 경쟁과 불신, 불평등에 대한 강렬한 개인적 욕망을 자극한다. 동아시아 벼농사 생산체제는 평등화와 불평등화에 대한 열망이라는, 이중의 심리 구조를 생성하는 것이다. - p.241


벼농사 체제에서는 공동 노동을 한다는 점에서 모두가 평등한 대가를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평등화의 욕구가 강하다. 하지만 모순적 이게도, 다른 사람보다 더 얻음으로써 나의 행복이 충족되는 차별화에 대한 욕망 또한 동시에 존재하게 된다. 이는 결국 동아시아 국가만의 특이한 불평등 구조를 생산하게끔 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벼농사 체제의 유산은 현대 사회의 기업 문화로, 우리 삶으로 스며들었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내 옆의 사람과 비교하며 경쟁하고, 그로 인해 힘들어한다.


나는 가끔 생각했다. 사람들은 왜 이리 비교의 굴레에서 못 벗어나느냐고. 비교가 좋지 않음을 알면서도 비교에는 몸이 자동으로 반응하였다. 매번 초조해하고 쉬는 것도 죄악처럼 느껴질 만큼 말이다. 나는 이 장을 읽으며 한편으로는 통쾌함을 느꼈다. 이유를 찾은 느낌이었다. 벼농사 체제의 유산으로 한국 사회 속의 개인은 서로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살아가고 있구나,라고 말이다.


체제의 유산은 가혹하다. 뿌리 깊은 벼농사 체제의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는 체제가 만들어 온 인식 안에 갇혀 지낸다. 저자는 말한다. 뿌리 깊은 비교와 경쟁, 질시의 문화는 아마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타인에 대한 관심을 거두라는 등의 조언을 내릴 수 없다고 말한다. 문화적 유산으로 우리는 그를 철저히 답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제안한다.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면,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2. 코로나 팬데믹 속 자기 감시


앞선 설명과 같이 벼농사 체제의 동아시아 국가는 재난에 대비하고 국민들을 구제하는 주체로써 존재해왔다. 그렇기에 코로나 팬데믹 가운데, 서양과 비교했을 때 동아시아의 특이점 또한 벼농사 체제로부터 기인함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선진국이라고 생각해왔던 유럽의 국가들과 미국은 코로나 팬데믹 속 어이없는 대처를 보여주었다. 정부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프랑스에서 가게 폐쇄 명령을 내리자, 그 전날 마지막 밤이랍시고 파티를 벌인 일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동아시아 국가는 상대적으로 대처에 유연했다. 한국을 포함하여 대만, 베트남, 싱가포르, 라오스 등의 동아시아 국가들은 바이러스를 초기 및 확산 이후에 체계적으로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특히 한국에서의 국민들의 자가격리 및 사회적 거리두기의 대국민적 참여는 다른 나라의 놀라움을 샀다. 


이미 사회적 조율 시스템이 깔려 있는 상황에서, 재난이 닥치면 이 시스템이 신속하게 작동된다. 마을 단위에서 해결이 안 되는 대규모 재난은 당연히 국가가 나서야 한다. 동아시아의 국가는 재난 시 사회를 구제하기 위한 '상해보험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사회는 국가가 와서 구해주기를 마냥 기다리는 수동적 사회가 아니다. 이 사회는 국가에 '호응'한다. 이미 마을 단위에서 조율 시스템을 완비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가 재난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 국가를 중심으로 전국의 수많은 마을과 그 마을의 수장들이 재난 극복 시스템을 작동시킨다. - p.174


위의 본문과 같이 우리는 문화적 유산으로써 국가에 '호응'하는 법을 습득해왔다. 재난 상황에서 국가의 역할 또한 중요하지만, 국가의 대처에 개개인이, 혹은 공동체 단위가 호응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 나의 일탈 행위 때문에 발생할지 모를 바이러스의 확산 못지않게, 그로 인해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과 체면의 손상이 더 걱정되는 것이다. 바로 '사회적 조율 시스템'에 조응하지 않아서 (마을)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확진 판정 없이도 이들을 집에 머물도록 이끄는, 궁극적인 행위의 동기다.  - p.177
... 이러한 평판 저하를 고려하는 '남 눈치 보기의 문화'는 어디서 왔을까? - p.177


또한 그런 호응들 속에는 국가에 대한 일방향적인 호응뿐만 있지 않다. 앞선 비교와 질시의 문화에서 말한 것처럼, 동아시아 국가의 개인은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인식하는 존재다. 그렇기에 국민들의 자가격리 및 사회적 거리두기 동참, 마스크의 상시 착용은 이러한 기질에서 출발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코로나 시대 속 동아시아 국가 내 개인들의 끊임없는 자기 감시와 자기 통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자신의 평판, 자신의 이익이 손상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비교와 질시의 문화에서 살펴본 긴밀한 사회적 관계가 재난 시 개개인이 대처하는 영역에서 조차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긴 내용의 사회학 책을 빠른 호흡으로 읽어본 건 처음이었다. 덕분에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잘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사회학을 복수 전공하고 있는 학생의 입장에서 언제나 서양의 시각으로만 바라본 사회 분석을 접했는데, 우리나라의 현실을 이렇게 사회학적으로 세밀히 분석한 책을 읽으니 새로웠다. 앞서 말했듯 통쾌해지고 시원해진 기분. 


벼농사 체제에서 출발한 우리들의 문화적 유산들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면도 당연히 있다. 그리고 이런 사회학 분석 연구를 읽을 때마다, 문화적 유산으로 답습해온 기질들은 구조 내에서 절대 극복할 수 없음을 더욱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구조 앞에서 무력해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말한 대로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면 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리고 변화를 주도하는 것의 첫 번째는 현재의 구조를 직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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