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심문#2
L. 02
to house
안녕하세요?
첫 번째 질문에 대하여 한참을 생각해 봅니다.
"4년 넘게 만남을 이어오고 있는데, 처음에 설계 의뢰했을 때 '이 집'과 '저 집'을 이해하는 것보다 지금은 더 폭이 깊고 넓어졌을 것 같다. 현 지점에서 다시 '이집저집 우리 집'을 건축사적 시각으로 들여다본다면, 공간 설계 내용 중 수정이나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부분이 있을까? 궁금하다" - 참치
건축에는 ‘건축의 자율성’이라는 말이 있어요. 의뢰인과 함께 건축가가 해석한 장소와 공간이 설계 작업을 통해서 그리고 시공과정을 통해서 완성되고 나면, 건물은 하나의 인격체처럼 자신만의 자율성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이집 저집 우리집은 4년 넘게 만남을 이어 오면서, 제가 설계한 어떤 집보다도 더 많이 방문하고, 머물고 간접적이나마 느껴온 건물이라서 그리고 모든 과정의 땀들을 잘 알고 있기에 애착이 많이 가는 집이에요. 또한 그곳에 살고 있는 모든 분들이 가족은 아니지만 그래도 친구처럼 느껴져서, 설계를 통해서 사람도 얻게 되어 더없이 고마워요. 그래서 선뜻 말하기가 오히려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러한 솔직한 심문(心問)이 신선하고도, 새로운 계기가 될듯합니다.
우선 건축사적 시각에서 생각해보면, 일반적인 듀플랙스/땅콩집/다가구주택의 카테고리에 한정 시기키는 힘들지만, 두 친구네가 함께 사는 집이라는 점에서 공유의 문제, 공유의 방식 그리고 개별성의 확보라는 화두를 어떻게 풀어나고 완성시켰느냐가 중요한 화두였던 것 같아요. 많은 논의와 현실적 선택의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완성되었고, 벌써 두 해를 살아왔고, 또 살아가시는 모습들을 멀리서나마 바라보고 있네요. 공간 구조나 설계의 내용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그리고 현재까지의 사용되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수정이나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우선은 제가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부분을 먼저 말씀드릴게요.
1. 이집과 우리집은 상당히 독립적인 주거 환경을 잘 누리고 있는 것 같아 보여요, 다만 우리 집 부분이 현재는 공방의 역할에 충실한데. 만약 이 장소가 공방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을 해보게 됩니다. 우리 집의 공간이 마당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고, 또 두 집을 자연스럽게 회랑처럼 이어주고 있는데. 현재까지는 그래도 공방으로 계속 기능하고 있어서, 초기에 마당의 활용과 가능성들이 조금은 떨어져 보입니다. 물론 시간이 좀 더 흘러서 또 다양하게 변해 가겠지만, 두 집 사이의 마당의 역할과 의미가 조금은 어색해 보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공유 마당의 성격이 명확하지 않은 느낌이에요. 지금처럼 중성적 공간으로 비워져 있어도 충분하지만, 왠지 모르게 좀 더 밀도가 있는 공간과 장소가 될 수는 없을까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우리 집의 프로그램과 공간의 목적이 구체적이고 합목적성을 뛰어야 하겠지요? 살아가시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고, 필요성이 확보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뭔가의 가능성을 많이 품고 있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만약에 공동의 거실이나 카페 또는 마을과 공유하는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어떻게 변했을까요? 이건 오히려 저의 질문이 되어 벼렸네요...
2. 완성된 설계 작업 이후 완공된 결과물을 볼 때면 늘 아쉬운 부분과 미련이 남는 부분이 상존합니다. 그러나 저는 항상 긍정적인 측면에 무게 중심을 두기에 사소한 부분에 대해서는 오히려 미련을 두지 않으려고 하는데요. 저집의 경우는 거실 공간에 대해서 가끔씩 생각을 해봅니다. 만약에 지금 1층 손님방 부분과 동측 소파 자리의 공간이 조금 바뀌었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마당의 모습이 좀 더 달라졌을까? 동측에 손님방이 마당과도 관계를 맺고, 거실과도 좀 더 적극적으로 연계되었으면 어땠을까 상상을 해본답니다.
(아니면 지금의 이층 거실이 작업실이 되고, 1층 작업실이 거실이나 식당이 된다면,,, ) 필요하면 중앙 마당과도 선택적 연계가 가능했을까? 또 2층의 보이드 공간이 수직적인 공간감과 함께 내부 면적을 줄여야 해서 생긴 이유도 있지만, 보이드가 좀 더 컸더라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1,2층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문제와 시각적 소통을 강화하는 문제점이 대치되고, 선택의 문제이기 하지만 말이에요... 만약 아이가 있다면 좀 더 소통이 되면 좋겠지요?
글을 쓰다 보니 개선점이나 업그레이드보다는 그냥 가정과 상상이 되어버렸네요 ㅠㅠ 아니면 하지 않는 미련을 끄집어내는 꼴이 되네요..
3. 이집의 경우는 딱하나 있는데. 2층 책상 공간에서 거실 쪽으로 쪽창/봉창을 하나 뚫었으면 어땠을까요? 독립적이어서 좋기는 한데, 제가 혼자 2층에 있었을 때는 약간 갇혀있다는 느낌도 조금 들었답니다. 책상 공간에서 선택적 소통을 하고, 뒤쪽 침실 공간을 좀 더 분리했다면 어땠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첫 번째 심문에 제가 횡설수설하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 더 좋아지겠지요? 두서없는 글이지만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글로 적으려니 좋은 점도 있고, 또 망설여지는 점도 있네요... 다음번에 이야기할 자리가 있으면 좀 더 말씀드리거나 또 좀 더 좋은 생각이 나면 메모해두어야겠습니다. (나중에 어느 정도 글이 차면, 북 토크처럼 비하인드 이야기도 해야겠네요. 한잔하면서...)
그리고 건축가 / 삼간일목이 드리는 첫 번째 질문을 남깁니다.
“ 집은 공간(내부)과 장소(외부)가 얼마나 밀도 있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삶과 생활을 얼마만큼 잘 담아내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공간의 크기나 쓰임새에 따라서 부족한 부분도 있고, 오히려 필요 없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이집, 저집, 우리 집에서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장소에 대한 기억과 느낌을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기억이나 추억일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주거의 삶에서, 또는 저 같은 건축가가 제안하고, 만들어 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나 힌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완공 후 방문했던 소하동 건축주께서 거실에서 한가로이 커피를 마실 때 집안에 바람이 머물다 간다는 말이 너무도 좋았습니다.ㅋㅋ)
그럼 다음번 답장을 기다리면, 무더위에 모두들 건강하고 푸르시길 바라겠습니다.
2019.08.05
권현효 올림
삼간일목
cf) 이집저집우리집의 건축 이야기 : https://brunch.co.kr/@samganilmok/34
이 글은 삼간일목에서 설계한 "이집저집우리집"건축주가 3년여를 살아오면서 느끼는 집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건축과 공간 사람에 대한 마음의 질문들을 동등한 입장에서 건축가가 건축주에게, 건축주가 건축가에게 묻고 답하는 편지의 내용입니다. 우리들은 이 편지의 솔직한 물음을 "건축심문(建築心問)"라 부르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