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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간일목 Mar 26. 2020

16. 열여섯 번째 편지

건축심문 #16

L. 16


from house



열여섯 번째 편지

#16



열여섯 번째 편지, 띄웁니다.



효 형에게,

남쪽 지방엔 산수유도 피고, 목련도 피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전 세계 사람들의 삶에 브레이크가 걸린 듯합니다. 형과 가족들, 그리고 삼간일목 식구들에게 별 일 없길 기원합니다.

일전에 보내주신 편지는 잘 읽었습니다.

사무실의 막내 직원분이라면, 일전에 양평에서 한 번 만났던 그 ‘할머니 건축가’를 꿈꾼다는 분이겠군요. 저 개인적으로도 그분의 꿈을 진심으로,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런 꿈이 현실이 되는 건축가들이 많아지길 기대하고 있으니까요. 여하튼, 5년 정도의 시간이 흘러, 정말 실현이 된다면 어떨까 상상해 봅니다.

이번 편지는 저희들의 질문을 먼저 밝히며 시작합니다.




질문입니다.


“선택하신 건축가(막내 직원)에게 1page 건축 의뢰서를 작성해서 보여주세요. 가족 구성원 소개 / 각 구성원이 집이나 공간 구성에 대해 바라는 점 /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의 삶과 새로운 집에서 그리고 싶은 삶이나 동선 등을 정리한 글을 건축가에게, 또 저희에게도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 필수조건! 꼭 가족들과 함께 상의를 해보신 후 작성해 주십시오. ‘지금 집을 짓는다면 어떤 집을 짓고 싶은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함께 의논해 보신 후 작성해 주십시오.”


꼭 가족과 상의 후 자유로운 형식의 글로 작성해주세요.

건축가들이 예비건축주 혹은 건축주들에게 항상 처음 요구했던 그런 글들처럼.^^




형이 주신 질문에도 답을 드려야겠죠?


“실내(바닥, 천정, 벽) 인테리어 마감재료 –벽지, 페인트, 타일, 내부 도어, 가구(주방 및 기타 가구), 조명 등등...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인테리어 마감 재료의 우선순위를 말씀해주세요~ 혹은 예산이 부족하다면 다른 것을 줄이더라도 꼭 이것만은 하고 싶다거나, 이저우에 사시면서 가장 잘 선택한 재료를 말씀 주셔도 좋아요~”


이번에는 참치와 국패가 대표로 생각과 글을 정리하였습니다.


1. 참치


집을 짓기 전에, 아니 집을 짓고 초기 인테리어 할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뀐 것이 바로 인테리어 마감에 대한 것입니다. 일 때문에 회사에서 사무실 인테리어를 많이 하는 편인데, 물론 제가 직접 하진 않고 저는 요청을 하고 인테리어 회사가 요구 사항에 맞춰 일을 해 주는 편이지만, 최근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유럽 인테리어, 블랙&화이트, 미국 농장 스타일, 한옥 스타일 등 다양한 인테리어가 있지만, 공간의 쓰임과 사용자를 생각했을 때 인테리어가 너무 과하면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참 부담스럽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는데요.


예를 들면, 사용하는 사람은 전형적인 농촌의 60대 ‘아줌마’인데 뜬금없이 화려한 르네상스 스타일의 인테리어를 한다든지,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주로 사용해야 하는 곳인데 블랙&화이트로 너무나 모던한 공간을 만든다면.. 어떨까요?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어서 어딜 가든 그런 것들을 속으로 따져 보는 편인데,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그런 부자연스러운 인테리어 공간이 많더군요. 그런 의미에서 주로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과 그들의 스타일, 특성을 반영한 인테리어가 가장 좋은 인테리어 재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좀 추상적이지만, 최근에 많이 느끼고 있는 점입니다.


현실적으로 돌아와서 대답한다면, 공간에서 가장 면적을 많이 차지하는 부분에서 힘을 주고(신경을 쓰고) 포인트가 되는 곳은 적절한 가격대의 제품으로 힘을 좀 덜어내는 것이 현명한 인테리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공간에 다 포인트를 주는 것도 이상하지만, 아무 특색 없는 공간도 이상하긴 마찬가지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신경 쓰는 인테리어 재료는 공간별로 다릅니다. (물론 이 집을 지을 때는 생각을 못한 점이지만..) 예를 들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건 중문이기 때문에 다른 건 적당하게 선택하더라도 중문은 좀 포인트를 주거나 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좌우할 재료(저 집의 경우 원목)를 쓰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하면, 거실은 면적이 제일 넓은 곳이기에 사실 다른 것보다 창과 벽면이 가장 눈에 많이 들어옵니다. 이런 공간은 벽에 신경을 많이 써서 색을 고르겠죠? 더불어 창이 크기 때문에 창틀의 색도 중요합니다. 창틀이나 커튼이 전체적으로 분위기를 결정하기 때문이죠.


그 외에 전반적인 느낌을 결정하는 것은 가장 크게 자리 잡게 될 테이블과 소파에 있겠죠? 조명을 최고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사실 조명은 빛의 색이나 온도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에 엄청 비싸거나 특이한 조명이 필요하다고 생각 하진 않습니다. 적당한 가격대에서 분위기를 흐트러트리지 않을 정도의 디자인이라면 그냥 무난할 것 같아요. 차라리 전구의 색과 조명의 방향을 잘 잡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요.


처음 집을 지을 때 이것만은 꼭 있어야 한다고 고집했던 것이 제겐 ‘욕조’였는데요, 예쁜 욕조에서 반신욕 하며 힐링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죠. 물론 지금도 자주 욕조에서 반신욕을 하며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만, 만일 지금 다시 꼭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욕조라고 대답하진 않을 것 같아요. 살다 보니, 욕조와 같은 것들은 그저 사용하는 ‘소모품’ 정도의 하나이고, 욕조 하나만으로 뭐 대단히 큰 힐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반신욕에 사용할 향이 좋은 천연 아로마 오일이 더 대단하던데요. ㅎㅎ


그래서 지금은 집에서 꼭 인테리어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집 내부뿐 아니라 외부를 자연스러운 동선으로 즐길 수 있는 멋진 테라스, 썬 룸, 데크 공간과 같은 것입니다. 처음 집을 지을 때부터 계획된 곳도 있지만, 필요하다면 작은 공간이라도 내부에서 외부를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중간 개념의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아무리 돈이 들어도 포기 못할 것 같네요.


그리고 그 공간을 나만의 가든, 혹은 나만의 카페로 만들 수 있다면 내부 인테리어 비용을 쪼개서라도 꼭 하고 싶을 것 같아요. 그런 공간에서는 실내에 퍼질 ‘탄내’가 싫어서 못했던 작은 벽난로와 비나 온갖 종류의 벌레 때문에 내놓지 못했던 예쁜 패브릭 소파 세트를 반드시 사서 아기자기한 공간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 이야말로 전원생활을 택한 가장 주요한 이유일 테니까요.


인테리어라는 것이 생각해보면, 무한한 옵션의 바다에서 ‘선택’을 낚는 것이기 때문에 주관이 없다면 그 바다에서 휘몰려 다닐 수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항상 잊지 말고 소신 있는 선택을 하는 게 후회를 줄이는 방법일 것 같습니다. : )



저집 현관, 중문 / 저집 데크 노천 풀장


2. 국패

 이저우는, 바닥재로 코르크 마루를, 벽 마감재로 규조토를 선택하였습니다. 현재까지 정말 최고의 결정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코르크 마루는 친환경 재료이기도 하고, 저희가 선택한 방식은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아서 냄새도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발에 닿는 촉감이 부드럽고 차갑지 않아 좋습니다. 또 고급집니다. ‘유니크’ 하기도 하고요. 마음에 듭니다. 우리는 Glacier(빙하)라는 제품을 선택하였는데, 빙하답지 않게 따뜻한 느낌이 들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규조토는 화산재로 만들어진다고 해요. 그래서 습기 조절, 냄새 제거 등에 좋고, 아토피 등 피부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규조토는 미장으로 마감을 하는데, 누워서 벽이나 천장을 보고 있으면 ‘미장 쟁이’의 손길이 보입니다. 워낙 숙련된 미장공들이 한 마감이라 잘 보아야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택 인테리어를 고민할 때는 무엇보다 바닥재와 벽 마감재를 우선순위에 두라 말하고 싶습니다.


바닥재와 벽 마감재를 가장 중요한 요소 꼽았지만, 사실 인테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구 또는 가구의 배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의 집은 다 비슷해요. 거실 풍경만 봐도 그래요. 중앙 벽면에 TV를 놓고 맞은편에는 소파를 놓아요. 이런 가구 배치는 대부분 집에서 볼 수 있죠. 아무리 디자인이 멋있고, 고급 가구, 가전제품이라 해도 재미가 없어요.


가끔 건축 관련 기사들을 보게 됩니다. 집의 외관 사진을 보면서 집안 모습은 어떨까, 실내 인테리어가 얼마나 멋있을까 하고 사진을 넘기게 되죠. 그런데 대부분 별것이 없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됩니다. 비슷한 가구 배치 때문인 듯해요. 가구 자체도 중요한 인테리어의 요소가 되겠지만, 가구보다도 그 배치나 구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저우는 가구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이저우는 ‘집씨’가 직접 지은 집이라 싱크대나 가구 역시도 집씨 솜씨로 꾸며졌죠. 자의 반 타의 반, 집씨와 함께 가구에 대한 건축주들이 생각과 고민을 해결하다 보니, 지금의 인테리어와 가구 구성이 이루어진 것 같아요. 가구를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형편(?)이기도 했고. 그래서 가구 자체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는지 모릅니다. 아, 물론 저희는 지금의 인테리어와 원목가구 구성에 엄청 만족하고 있습니다.


아, 인테리어와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얼마 전에 경험한 일이 있습니다. 집씨의 지인 부부가 빌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첫 집이라 애착을 가지고 직접 인테리어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방 문을 새로 제작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사실 멀쩡한 방 문을 왜 떼고 새로 만들까 하고 생각했었죠. 고생스럽고 돈도 들고, 굳이 방문을 왜...


그리고 방 문을 설치하는 날 그 집에 가보았지요. 실측을 해왔고, 꼼꼼하게 만들었지만, 방 문은 한 번에 딱딱 들어맞지 않았습니다. 집씨의 아내로 살다 보니, 뭐든 한 번에 딱딱 들어맞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수없이 경험하였지만, 그날도 지켜보기만 하는 것으로도 지치더군요. 손 대패질을 했다가 문을 들었다가 놨다가... 그리고 문을 드디어 달았습니다. 무려 세 개, 앗! 집이 달라졌습니다. 분위기 확 달라졌습니다. 어떤 인테리어보다 극적 효과가 있었습니다. 순간 ‘문이 중요하네.’라고 생각했죠. 집주인의 탁월한 안목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방 문도 고려해볼 요소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3. 집씨 – 국패와 같은 생각입니다. 다만, 문 실측은 집씨가 하지 않고, 지인이 하였습니다. 지인이 만들어 달라는 대로 만들어줬을 뿐이라는...... 물론 후속 작업은 모두 집씨의 몫이었지만요...... 참고 부탁드립니다. 집씨는 모르고 봐도 ‘한 꼼꼼’ 하는 사람입니다.

 






전염병 사태로 형과 주변의 일상이 흔들리지 않길 기원합니다.


- 이저우를 대신하여 집씨가




2020.03.14


집씨


이저우집



cf) 이집저집우리집의 건축 이야기 : https://brunch.co.kr/@samganilmok/34


이 글은 삼간일목에서 설계한 "이집저집우리집"건축주가 3년여를 살아오면서 느끼는 집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건축과 공간 사람에 대한 마음의 질문들을 동등한 입장에서 건축가가 건축주에게, 건축주가 건축가에게 묻고 답하는 편지의 내용입니다. 우리들은 이 편지의 솔직한 물음을 "건축심문(建築心問)"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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