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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공부 Mar 23. 2024

아들의 통 큰 선물

-내차는 할부, 아빠차는 일시불-

“  요즘 같은 세상에 자기네 애들처럼 그렇게 부모 챙기는 애들 처음 봐. 어쩜 그렇게 애들이 둘 다 착해?”

“ 다 누울 자리보고 다리 뻗는 거지 뭐. 지들이 부모보다는 더 낫다고 생각해서 우릴 돌보는 거야....

 부모가 능력 있어봐 그럼 애들이 오히려 부모에게 더 바라는 게 많겠지....”


친구들은 내 옷이며 가방이며 모든 것을 딸이 선물해 준 것을 알고 늘 부러워한다.

그리고 TV를 바꿔 준다던가, 가구를 바꿔준다던가  큰돈이 드는 것은 아들이 주로 해준다.


사람들이 대부분 퇴직하기 전에 꼭 차를 바꾸고 나오라고 한다.

퇴직을 하면 차 바꾸는 것도 부담이고  직업이 없으면 자동차 할부도 잘 안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갑작스러운 명예퇴직을 선택했다.

그래서 차를 바꿀 생각을 미처 못하고 말았다.

 퇴직을 하고 보니 진짜 차를 바꾼다는 것이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그리고 퇴직 후 강연을 다녀보니 요즘 수도권 교통시설이 너무나 잘되어 있었다.

굳이 차를 끌고 다니면서 모르는 길을 찾아다니기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충분했다.

그리고 20년 넘는 차지만 동네에서 끌고 다니기에는 충분했다.

그런데 아들은 연식이 오래된 차를 끌고 다니는 것을 늘 걱정하곤 했다.

그래서 코로나전부터 차를 바꿔주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때는 강연이 취소되고 매일 집에만 갇혀 있다 보니 굳이 차가 필요 없었다.

더구나 남편은 공황장애로 운전을 안 한지 오래되었다. 가족여행 때는 운전을 부담스러워하는 아빠를 생각해서  딸이 공항 밴을 불러 주었다.

하지만 한번 숙소에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는 것 외에는 우리가 어디 가기에는 불편했다.

그래서 남들이 좋다는 양양이나 강릉여행 때 숙소 근처만 배회하다 오게 된 것이다.

남편이 용기를 내어 지난해 거제도까지 간 적이 있었다.

비록 오래된 차지만 둘만의 여행을 다녀온 후로 남편이 자신감을 얻었다.

아이들도 너무 기뻐하며 응원해 주었다.

하지만 연식이 오래된 차라 혹여라도 고속도로에서 잔고장이 발생할까 늘 걱정을 했다.

그래서 올해는 아들이 차를 사주겠다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저 이제 더 열심히 일해야 됩니다 ㅋㅋㅋ"라는 문자와 함께 아들의 통 큰 선물이 도착했다.

아들은 독일차종 세 개 중에 시승을 해보고 마음에 드는 차로 고르라고 시승 신청까지 해주었다.

남편은 전기차도 싫어하고 디젤차도 싫어한다.

게다가 키가 커서 차 밑이 잘 안 보인다며 SUV차도 싫어하는 것을 잘 아는 아들이 자신의 예산의 범위에 맞는 차 중에서 아빠가 좋아하는 가솔린 모델을 골라준 것이다.

그리고 훗날 거제도에서 낚시하며 살겠다는 마음이 있어 어둑한 시골길에서도 잘 보이는 흰색을 선택했다.  그렇게 한 달 내내 차를 고르고 들뜬마음으로 기다리다 드디어  지난주에 새 차를 받았다.


아들은 핸드폰도 새로 바뀌면 어찌할 줄 몰라 짜증을 내는 아빠를 위해 집에 와서 이것저것 세팅도 해주고 둘이 함께 차를 몰고 나갔다 왔다. 여러 가지 기기가 달린 신차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이다.

사실  아들은  엄마아빠차를 먼저 바꿔주고 자기차를 사려고 했단다. 그런데 사려는 전기차는 8개월도 넘게 기다리게 된다는 말에 서둘러 신청한 것이 3개월 만에 나와  오히려 우리 차보다 빨리 자차를 갖게 되었다.

사실은 그동안 우리 모르게  여러 차를 알아보고 있었다고 한다. 연말보다 1월에 사려다 페이스리프트가  된다고 하여  또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반영되려면  2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그냥 사기로 했다.


아들에게 너무 고맙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한편으론 마음이 무겁다.

언제나 엄마 아빠를 생각해 주는 아들덕에 늘 마음이 든든하지만 혹여라도 벌써부터 아들의 짐이 되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나저나 우리를 보살피는 건 너무 고맙고 감사한데 너희들이 나이 들면 누가 보살펴주니?

제발 40대에는 둘 다 좀 짝을 찾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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