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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Aug 23. 2020

[슈독]미친사람들은 어떻게 세상을 바꿀까?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의 자서전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

나이키라는 이름을 정할 때의 일이다. 자체 상품을 만들기 10분 전. 나이키의 창업자 '필 나이트'는 창립 초기부터 함께 했던 존슨이라는 직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그는 제품 이름이 나오는 꿈을 꿨다고 했다. 꿈에서 나온 제품명은  '나이키'.


필 나이트는 팰콘과 디멘션 식스와 같은 이름들 중에서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을 운동화의 명칭을 고르던 중이었다. '나이키라... 승리의 여신인 니케와 비슷한 이름이군' 10분 뒤에는 신발 생산을 마치고 로고를 찍어야 했다. 그에겐 이제 생각할 시간이 3분밖에 없었다. 그는 고민 끝에 새로운 제품의 이름을 나이키로 정했다. 1971년 이후 운동화, 러닝화, 축구화, 농구화 등 신발 업계를 선도한 나이키의 탄생이었다.  


 나이키의 창업스토리를 담은 책 '슈독'은 은둔의 경영자 필 나이트의 자서전 격인 책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단 하나로 요약할 수 있다. 완벽하게 준비해서 사업을 벌이는 사람은 없다는 것. 시총이 이탈리아 한 해 GDP(2조원)를 웃도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유통업을 뒤흔든 아마존의 제프 베저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세계에 전파한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도 단칸방에서 사업을 구상했다. 그들은 좌충우돌하며 만든 이 기업이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하며,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몰랐다. 그들은 '미친 생각'을 가지고 그저 밑바닥부터 시작했을 뿐이다.


나이키를 만든 필 나이트도 마찬가지다. 신발에 미친 그는 전후인 1960년대 일본에 찾아간다. 아식스로 유명한 오니즈카 타이거라는 신발회사였다. 그는 회사 임원을 만난 자리에서 말한다. "오니즈카 신발을 미국에서 팔고 싶습니다".

 필 나이트는 자신이 미국에서 '블루리본'이라는 신발 판매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거짓말이었다. 그는 그저 대학생이었을 뿐이다. 이렇게 시작한 블루리본은 일본에서 신발을 들여와 미국 동부를 중심으로 판매를 확장해 나간다. 그것도 주먹구구식이었다. 오니즈카로부터 몇 개의 신발을 떼 오면 학교의 운동부원이나 코치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는 이런 식으로 회사의 크기를 키워갔다. 회사의 덩치에 비해 자본금과 현금흐름이 너무나 약해 주거래 은행으로부터는 번번이 거절당하는 수모도 당했다. 그도 블루리본을 창업하고 신발을 판매할 때 이 기업이 얼마나 큰 기업이 될지 몰랐을 것이다. 그는 그저 닥치는 일에 부딪혔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났다. 그는 뒷걸음칠 때도 있었지만 눈은 앞을 바라봤고,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정신으로 기업을 키워갔다.


나이키 최초의 후원 선수인 스티브 프리폰테인


 그가 정의한 나이키의 창업 정신은 '프리폰테인 정신'이다. 프리폰테인은 나이키가 처음 후원했던 장거리 육상선수의 이름이다. 프리폰테인은 첫 스타트부터 끝까지 전력을 다해 달린 선수다. 보통 장거리 선수들은 초반에 힘을 비축해 마지막에 힘을 쏟아붓는 게 통상의 일이지만 그는 달랐다. "작전은 필요 없고 오직 열심히 뛸 뿐"이라는 말과 함께 나이키의 정신이 됐다. 나이키는 프리폰테인처럼 와플 모양의 밑창 운동화를 성공시키면 곧바로 벌어들여온 이익을 전부 재투자하는 '전력질주' 방식으로 기업을 키워갔다. 


나이키의 공동 차업주인 빌 바우어만이 와플 기계로 고무를 녹여 개발한 신발.


나이키 창업에 뛰어들었던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이 슈독(shoe dog)이라는 점이다. 슈독은 신발의 제조 판매 구매 디자인에 전념하는 사람을 말한다(269p). 그들은 신발 밑창에 쿠션을 덧대고, 공기를 주입하는 등 새로운 기술을 선보인다. 나이키의 추종자들은 이들의 '프런티어' 정신을 사랑했다. 그들이 가진 '반골기질'은 나이키의 추동력이 됐다. 나이키의 창업 멤버인 우델은 촉망받던 운동선수에서 교통사고로 인해 하반신 불구가 됐고, 헤이즈는 체중이 많이 나가 직전 직장에서 파트너 회계사가 되지 못했다. 이들 모두 직장상사에 버림받고, 운이 좋지 않았고 사회로부터 거부당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반골기질은 대기업에서 불가능한 자유로운 토론문화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기업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창업 멤버들과 술자리에서 치열하게 나이키 앞날을 논의했다. 이를 '버트페이스'(ButtFace) 모임이라고 이름 지었다. 고집 센 이들이 만나 공격적인 언사를 통해 다른 사람을 공격하면서 더 나은 사업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기업을 세우면 모든 것이 싸움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사업을 포기하더라도 중단하지는 않았다. 1971년 오니즈카 타이거즈의 신발이 중단될 위기가 놓이자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돌파했다. "기업가는 결코 포기해선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포기할 때를 알고 다른 것을 추구할 때를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포기가 중단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업가는 결코 중단해선 안 된다"



필 나이트의 무대포식의 경영전략과 삶의 방식은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잊힌 무언가를 건드린다. 밀레니얼, 3포 세대로 불러지는 지금의 20~30세대는 나약함과 유약함의 상징으로 대변되고 있다. 이들은 옛날 젊은이보다 똑똑하지만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본다. 이 세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의 늪과 높은 실업률이라는 한계에 직면해 있다. 이렇게 주어진 조건은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찾을 수 있다. 나이키의 슬로건처럼 우리는 도전해야 한다. JUST DO IT. 그냥 하자.


ps

1등 회사였던 아디다스를 쫓아가면서 벌어졌던 일화도 '슈독'의 읽을거리다.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애용하는 '코르테즈'라는 신발의 이름은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나왔다. 나이키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열리는 점을 고려해 신발을 '아즈텍'으로 지으려고 했지만, 아디다스가 이미 아즈텍이라는 신발을 내놓은 것. 나이키는 아디다스와 법적 분쟁을 피하기 위해 아즈텍 문명을 점령한 스페인 침략자의 이름 '에르난 코르테즈'를 따와 신발을 출시했다.

 나이키 에어를 만든 일화도 흥미진진하다. 루디라는 괴짜가 신발 밑창에 공기를 집어넣겠다는 황당한 기술을 들고 필 나이트를 찾아온 것. 그는 "신발업계에는 온갖 종류의 멍청이가 있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지만 드디어 말로만 듣던 사람이 나타난 것"이라고 회상했다. 나이키 에어는 그 이후 시그니쳐 상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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