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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Nov 15. 2020

유시민의 '자유론'이 불편한 이유

오랜만에 존 스튜어트 밀의 명저 '자유론'(On Liberty)를 펼쳤습니다.  자유론은 대학교 2학년 때 떨리는 손으로 읽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19C를 살았던 존 스튜어트 밀보다 '자유의 가치와 그 정의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가'를 생가하면서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밀은 당시에도 여성의 참정권을 옹호하던,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었습니다. 


마침 유시민 씨가  '지유론'에 대해서 말한 게 뉴스에 나왔습니다. 유시민 씨의 논평을 듣고 모욕감이 들었습니다. 철학서 가운데 으뜸으로 꼽을 만한 책이 본인의 정치적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남용되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곱씹을 겸 이 책을 소개할까 합니다. 


작가 존 스튜어트 밀은 1806년 영국 런던 '펜톤빌'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제임스 밀로 공리주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로 영국에서는 이미 저명인사였죠. 존 스튜어트 밀은 그 아버지 밑에서 혹독한 '영재 교육'을 받습니다. 인터넷에는 존 스튜어트의 독서법이라는 목록이 나올 정도입니다.(그 때문에 20세 때 신경쇠약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밀의 인생도 뒤바뀝니다. 능력주의(메리토크라시)가 탄생하면서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에 따라 평가받을 시대가 왔습니다. 귀족이 관료의 요직을 차지하고 관직을 물려줬던 영국은 인도 식민지배를 거치면서 유능한 중산층 관료들을 분별력 있는 시험으로 선발하기 시작합니다.  인도에 진출하는 사업가들에게 막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했고 이런 이득을 얻기 위해 가문보다 실력 위주로 종업원을 선발하죠.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정치질서와 부패'라는 책에서 "존 스튜어트 밀과 그 아버지인 제임스 밀, 아담 스미스 같은 유능한 실용주의 학풍의 학자들의 등장도 이런 능력주의 사회 형성을 가속화한 요소"라고 평가합니다. 


존 스튜어트 밀


공리주의자였던 아버지 제임스 밀을 따라 존 스튜어트 밀도 철학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자유론'은 그의 아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밀은 책 머리말에 "이 책은 나의 저작임과 동시에 그녀(부인)의 저작이기도 하다... 무덤 속에 묻혀 버린 그녀의 위대한 사상과 고귀한 감정의 반만이라도 이 세상에 전할 수 있다면, 나는 커다란 은혜를 이 세상에 베푸는 중개자가 되었을 텐데"라고 적었습니다. 


자유론은 총 4개 부분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첫 장은 '자유'의 본질과 한계에 대해서 쓴 '서설'입니다. 지배자가 사회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한계에 대해 소개합니다. 정부가 어디부터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나옵니다. 잠깐 소개를 하자면, "문명사회의 모든 구성원에 대해 그들의 의사에 반해 권력을 행사하더라도 정당하게 인정되는 유일한 목적이란 다른 구성원에게 미치는 위해를 방지하는 것" "어느 누구의 행위라도 그가 사회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할 유일한 부분은 타인과 관계되는 부분이다."(30p)라고 말했습니다. 


우선 밀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이상 개인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주의입니다. 아마도 유시민 씨가 이 부분을 인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유시민 씨는 알릴레오 시즌3에서 "어떤 사람의 행동이 타인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지점에서는 개입이 정당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주먹을 휘두를 권리는 타인의 얼굴에서 멈춘다"정도의 주장이라면 자유론은 당대의 철학서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정부가 "미풍양속에 피해를 준다"며 자유에 제한을 가하기 시작하면 개인의 자유는 극도로 위축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960~1980년대 가부장적인 한국 정부가 내세운 논리와 비슷합니다. 서태지가 염색을 하고 레게머리를 하는 것이 저속하고 퇴폐적이라며 규제했던 게 2000년대 일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네 번째 장인 '개인에 대한 사회 권위의 한계'에서 정부가 발휘할 수 있는 권력의 한계를 명확히 지어줍니다. 유시민 씨는 "국가의 간섭에 제약이 있어야 한다"는 이 밀의 말은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밀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누구든지 단순히 술에 취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되어서는 안 된다. 개인 또는 일반 대중에 대해서 명백한 손해를 입히거나 그럴 위험이 있을 때, 이 문제는 자유의 영역을 넘어서 도덕이나 법률의 문제가 된다. 그러나 대중에 대한 특정한 이무를 이행치 않은 것도 아니고, 자기 자신 이외의 한 개인에게 뚜렷한 위해를 주는 것도 아닌 행위로 어떤 사람들이 사회에 미치게 되는 단순히 우발적인 또는 추상적인 위해라고 부를 수 있는 위해에 관해서 말한다면, 이런 경우에 생겨나는 불편은 이간의 자유라는 보다 더 큰 선을 위해서 사회가 참을 수 있는 것이다." 197P

어떤 사람이 술에 취해 음주운전을 한다면 그 사람에 대해서 사회는 법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압력을 가해야 합니다. 선량한 사람이 그의 음주운전으로 희생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술 자체를 금지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 19가 확산될 수 있으니 모든 시위를 금지하고,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살인자'라고 하는 것이 논리적 비약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시위로 인해 코로나 19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뚜렷한 인과관계가 없는 상황에서, 시위로 인해 확진자가 급증한다는 추상적인 위협만으로 시위를 금지하는 행위가 정말로 개인의 자유를 증진시키는 일이냐는 것입니다. 선진국 가운데 코로나 19를 이유로 시위를 제한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프랑스 법원은 "코로나를 이유로 시위 금지해서는 안된다"며 집회를 허용하기도 했습니다. 정부가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는 등으로 시위에 따른 코로나 19 확산을 방지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유시민 씨가 수년 전 밀의 '자유론'을 시청자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고 했을 때 저는 백번 동의했습니다. '자유론'과 같은 불후의 명저를 읽는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정치적인 주장을 위해 책의 일부 내용을 남용한다면 책의 가치와 함께 자신의 가치도 하락할 것입니다. 책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는 건 독자에게나 본인에게나 참으로 불행한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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