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머머, 이제 학부모네?"
"1학년 입학하지, 봐라 금방 6학년된다"
"아이고, 1학년일때 엄마들이 제일 많이 그만두고 제일 바쁘다던데..."
아이가 이제 초등학생 된다는 근황 한 마디에 수십 가지 충고와 조언이 쏟아진다. 이 세상의 인간을 민간인, 군인, 고3으로 나눴던 시절이 있었다면 '초1맘'이라는 카테고리가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겁이 날 정도로.
그래서인지 맘카페에도 벌써부터 예비 초등맘의 넋두리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초등준비를 위해 어떤 공부를 미리 시켜야할지 고민하는 엄마부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2시 반에 나타날 아이들을 어떻게 가장 효율적으로 학원과 연계하는지 묘책을 구하는 글, 남아/여어 성향에 맞춰 새학기 가방 브랜드를 골라달라는 글까지. 나 또한 나눠줄 지식도 없는 주제에 '초등' 이란 말만 들어가면 눈이 번쩍 뜨여서 클릭하기 바쁘다.
많은 기대와 관심(?)을 등에 업는 어엿한 초등 1학년으로서의 첫 공식일정은 바로 예비소집일이다. 온라인으로 날아온 취학통지서를 무슨 대학 입학증명서 모시듯 빳빳한 종이에 곱게 인쇄해서 준비해놓고 아이와 함께 일찌감치 출발했다. 학교가는 길도 미리 익히고 교실 분위기도 둘러볼 생각에 괜시리 마음이 들떴다.
하지만 설렘이 채 가라앉기도 전, 도착하자마자 시작된 예비소집의 모든 과정은 5분도 안돼 끝이 났다. 생월에 맞춰 차려진 부스에서 취학통지서를 내고 학교 안내 문서가 담긴 봉투를 건네받으면 그만이었다. "끝났어요? 가면 되는걸까요?" 답을 알면서도 몇 번이나 되묻는다.
징글징글하게 계속되는 코로나 시국인지라 떠들썩한 분위기는 기대하지도 않긴 했다. 하지만 내심 활기있는 교정을 혼자서 그려보았다. 이제 막 유치원생 티를 벗으려는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다니게 될 학교에 왔답시고 조잘대는 모습이 얼마가 대견하면서도 귀여울까, 어린이집 동기도 만나고 반가운 얼굴도 몇몇 있지 않을까 했다. 그렇지만 학교는 고요하고 적막했다. 밀집도를 막기 위해 예비소집일 시간대를 반나절 가까이 잡아두었기 때문이리라. 이대로 나가기에는 아이에게 잔뜩 바람만 불어넣어준것이 아닌가 겸연쩍은 마음에 귀찮다는 아이를 교정 밖 여기저기 세워놓고 연신 카메라 버튼만 눌러댈 수 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에게 슬쩍 물었다.
"오늘 학교 와보니 어땠어?"
"음...지루했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시큰둥하게 답한 아이는 다시 놀이에 열중한다. 그래, 뭘 뻔한 걸 묻니. 난 어떤 대답을 기대한걸까.
초등학교 입학과 시작하는 제도권 교육 장장 12년의 여정. 코흘리개 어린이로 들어서서 어엿한 성인이 되어야 끝나는 이 길의 시작은 어쩌면 부모에게나 특별한지 모르겠다. 그 길이 어떤지 겪어본 사람만의 온갖 가치판단과 의미부여가 뒤섞여서 부모에게나 제일 중요한 초등학교 입학식의 전형을 만든게 아닐까. 더욱이 (아이들에게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인) 코로나 시국의 2년 동안 학교가 가진 의미는 더욱 옅어졌겠지. 집에서 랜선으로 친구들을 사귀고 선생님을 노트북 화면에서 만나게 되는, 학교보다 '줌' 이라는 말이 더 익숙해졌을지도 모르는 오늘날의 초등학생들.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며 뛰었던 12년, 어쩌면 정말 달라질지 몰라 수능날 고3 아이에게 따뜻한 아침밥을 지어주며 시험장에 보낸 후 펑펑 울었다던 어느 엄마의 글을 기억한다. 아이의 지난 12년이 이 날만을 위해 달려왔다는 것을 알기에, 마지막 단추를 채우는 수능일에 북받친 엄마의 심정이 어땠을까. 나는 친언니가 수능 시험장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울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앞으로 12년의 무게도 이럴까. 그건 잘 모르겠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변화를 목도했고 불가능한 것이 가능해진, 가능한 것이 불가능해진 전대미문의 시절을 살고 있다. 그런 격랑 속에 교육만 그대로일 수는 없겠지.
부모가 아니라 '학'부모가 된다고 요란스럽게 새해 인사를 전했던 나를 되돌아본다. 정작 무덤덤한 아이를 제쳐두고 홀로 전의를 불태웠던 것은 아닌지. 여덟살이 되는 이도, 학교에 입학하는 이도 그리고 그리지 않은 새하얀 도화지의 주인도 아이이기에 나는 내 멋대로 칠하려던 낡은 색연필을 슬그머니 넣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