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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Aug 30. 2018

이런 엄마-11

나를 돌보는 게 아이를 돌보는 일이란 걸 몰랐던 이런 엄마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화내지 않으려면 내 기분을 좋은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아야지"라고 다짐한다 해도 내 기분이 엉망인 날엔 그런 다짐 따위는 허물어지고 만다. 아이가 몸을 치대고, 징징거리고, 음식을 엎고, 거친 행동을 보여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훈육하는 것은 내 기분이 유쾌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기분이 나쁜 상태에서는 아이의 모든 행동이 안 되는 행동으로 보이게 된다. 게다가 "안 할 능력"이 없는 아이에게 "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아이가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거역하거나 반항하는 것으로 보게 되고 응징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아이를 볼 때마다 지적하게 된다. 이렇게 아이를 억압하게 되면 아이는 "정말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아야 할 것"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내게는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언젠가 하루 이상한 날이 있었다.

그날따라 유독 부정적인 행동만 하는 첫째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날은 내 곁에 오려고도 않고 주변에 다른 사람이 다가가도 곁을 내주지 않으며, 배척하는 행동으로 나를 화나게 했다. 왜 그럴까. 그러다 문득 아침의 일이 떠올랐다. 난 잠이 덜 깬 상태에서 기분이 맑지가 않았다. 그때 첫째가 기분이 좋아 나에게 몸을 치대며 장난을 쳤다. 인상을 썼던 것 같다. 언성도 약간 높였던 것 같다. 그즈음 나는 손가락 마디마디가 다 아팠고 만성적인 피로감에 머리도 몸도 무거웠다. 아이는 나로 인해 기분이 상했을 것이다. 나쁜 기분이 전염된 아이는 동생을 꼬집었고 나에게 또 몇 차례 혼났었다. 나는 아이의 핵심 감정을 모른 채 아이의 연속되는 나쁜 행동만을 지적하기 바빴다.

아이와 함께 있을 때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아이와의 친밀함이 쌓이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가 나와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는지가 중요했다.

나는 숙제하듯 일과를 빠르게 치르고 나서 아이들과의 놀이시간엔 시간이 안 간다고 불평하던 엄마였다.

아이들이 엄마와 있을 때 신나거나, 즐겁거나, 편안하거나, 안전하다고 느꼈던가?

매번 지적과 잔소리와 찡그린 얼굴로 아이들의 정서에 오히려 안 좋은 영향을 끼치며 아이들과 멀어질 뿐이었다. 나의 육아는 시간을 들여 나쁜 추억을 만드는 행위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유쾌한 기분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건강해지려고 노력했고, 나를 돌보며 내 즐거움에도 신경을 썼다. 일상에서 유머를 살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 아이들이 머리를 부딪히며 싸우고 있을 때 나는 "싸우지 마"라는 말 대신  "너희들이 소냐? 소싸움 같은 거 말고 달리기 시합 같은걸 해~"라고 웃으며 말했다. 아이들이 나의 농담에 행동을 멈추고 까르르 웃었을 때 그 기분 좋음이 내 육아를 도왔다.

아이와의 즐거운 유대감이 커지고 친밀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듬뿍 받았다.





아이가 안기고 싶을 때 내게 와서 편안히 안길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남편과의 작은 스파크, 내 심리적 동요. 무엇이었든 간에 내 기분이 안 좋으면 그 영향은 무조건 아이들 에게로 내려간다. 나를 살펴야겠다. 내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떠올려 본다. 먹고 싶던 음식을 먹고,  음악을 듣거나 긍정적인 글귀를 읽거나 눈이라도 감고 내 마음을 챙기기로 한다.

유독 힘들어 굳어진 얼굴을 풀 수 없는 날에는 "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몸이 지친 날이라 그래, 엄마가 다른 힘든 일이 있었어, 엄마가 잠시 쉴 시간이 필요한가 봐" 등의 말을 해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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