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앤디 Jul 09. 2018

이런 엄마-6

함께 가는 것이 아닌 이끌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런 엄마

나:저는 왜 유독 힘들어할까요? 아이를 사랑하는데,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요?

상담사: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들었던 감정을 적어보세요.

            그중에서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을 동그라미 쳐 보세요

나: 기쁨, 설렘. 그리고 잘 키우고 싶은 마음. 책임감.

상담사: 책임감이 더 크군요. 육아를 할 때 기쁨이 더 크다면 육아가 힘들까요?

            어려운 건 힘든 걸까요? 어렵지만 재미있는 일은 어떤 일일까요?




아이를 낳고 나는 모유 수유와 유축으로 힘들어했다. 생각처럼 초유는 잘 나오지 않았고 아팠다. 난 배운 대로 열심히 했다.  하지만 계속 아팠고 아이는 늘 배고파했다. 그렇게 3개월을 버티다 알게 된 것은 아이가 설소대 때문에 젖을 잘 못 먹는다는 거였다. 나는 설소대를 자르는 수술을 쉽게 감행하지 못해 또 한 달을 버텨보았지만, 더 이상 못 견디고 아이를 수술시켰다. 그 후 상상도 할 수 없던 편안함이 찾아왔다.


모유가 안되면 분유를 먹이면 되는 거였다. 나는 그렇게 하기 싫었다. 분유를 먹이는 것이 실패하는 거라고 생각했을까?  분유 없이 모유에 성공하고 싶었다. 상황이 안 되는 걸 인정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노력하면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상황을 인정하고 아이에게 맞춰주려는 마음을 가졌다면 나는 분유를 선택했어야 했다.

설소대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바로 수술을 했다면 단 1개월이라도 더 빨리 편안해졌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버티는 동안 나의 힘듦에 아이도 힘들었을 것이라는 걸 지금에야 느낀다.



지나친 책임감은 독이다. 기쁨과 감사함이 사라진 나의 육아는 완벽함을 향하고 있었다. 힘들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들까지 힘들게 한다. 어릴 때 나를 힘들게 한건 나를 키우는걸 힘들어하는 엄마, 아빠를 보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 스스로를 엄마, 아빠의 앞길을 막는 돌덩이처럼 느껴지게 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엄마, 아빠가 완벽하길 바란 적이 없었다. 그저 웃길 바랬다. 엄마, 아빠가 즐거울 때 내가 즐거웠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너희들로 인해 엄마의 인생이 달콤해졌으니 너희들은 복덩이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이들에게 느꼈던 무거운 책임감을 버리고 감사함을 찾아보았다. 육아가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냈다

보석 같은 아이를 키우는 나. 그 아이들과 살 맞대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그 행복감은 정말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 아이들의 숨 냄새, 오동통한 볼, 말랑말랑한 살결, 조그만 손가락과 발가락. 이렇게 귀여운 아이들이 내가 해준 밥을 먹고 자란다는 건 또 얼마나 신기한지 모른다.

난. 두 사람의 인생을  탄생시켰고 키워내고 있다.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 가치 있고 특별한 일을 해낸 거다.

완벽히 해내야만 대단한 게 아니었다. 대단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감사할 것들을 찾으니 기쁨이 저절로 나왔다

나는 내 육아가 힘든 것이 원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착각이었다. 나를 힘들게 한건 완벽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내가 가진 보석들을 볼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내 부모님으로부터 상처를 받았지만 이제는 그것을 원망하지 않고 부모님을 사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 나 역시 내가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이런 엄마-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