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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Sep 17. 2020

대화할 때 나는 어떤 사람인가

대화를 좋아하세요?


<글 쓰는 삶을 위한 일 년>에 보면, 대화의 어원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대화를 의미하는 영단어 ‘dialogue’의 어원을 보면 ‘dia’는 ‘~의 사이’, ‘logos’는 ‘단어’,‘지혜’,‘이성’ 등을 의미한다고 한다.  즉 대화란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생각’을 교환하는 것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고 할 때 서로의 의미 있는 생각을 나누는 것. 그것이 진정한 대화의 본질에 가까운 대화인 것이다.

대화를 하다 보면,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내 경우엔 90% 이상 '듣고만' 올 때가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낸다는 것은, 그만큼 누군가가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일 거란 생각에, 그만큼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낼 곳이 없다는 뜻인 것 같아서, 나는 주로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오는 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방적인 대화(?) 속에서는 건질 게 없다. 그저 함께한 시간 속에서 상대에게 잠깐의 휴식과 마음의 위안을 주었다면 된걸로, '봉사'하는 대화에 의의를 둔달까.


내가 추구하는 대화는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을 건드려주는 대화이다. 그런 상대와 대화를 하고 있으면, 이야기하는 내내 즐겁고 설레고 행복하기까지 하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도 내 마음에 훅 들어오는 대화가 있다.

베르메르가 부엌에서 총명한 그리에와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다.

그리에가 각종 채소를 썰어서 놓아둔 것을 유심히 보고 베르메르가 묻는다.     

“보아하니 하얀 것들은 따로 분리해놓았군. 그리고 오렌지색과 보라색도 따로 분리해놓았고, 두 색을 함께 섞지 않았어. 왜 그렇지?”     

그 질문에 그리에가 답했다.

“두 색을 나란히 놓으면 서로 싸워서요.”

남자가 이런 대답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눈썹을 치켰다.     

이 장면에서 아마 베르메르는 그리에게 훅 빨려 들어갔을 것이다. 나처럼.

뭔가 전기가 통하는 것 같은 느낌. 짧은 대화였지만 강력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대화.


최근에 본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도 그런 장면이 있었다.

주인공들이 함께 앉은 식사자리에서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까에 대한 대화가 나왔다. 그중 한 명이 ‘음악이 위로를 해준다는 말이 정말인지 의심이 들 때가 있어. 사실 정말 힘들 땐 한마디의 말이 더 큰 위로가 되거든’이라 말했다.

그러자 여주인공이 답했다.     

“그래도 믿어야 하지 않을까요? 음악이 위로가 될 수 있다고요. 왜냐하면 우린 음악을 하기로 선택했으니까요.”     

그 말속에 담긴 진심과 위로의 말이 대화의 속성과 잘 맞는 듯하다.

대화는 누군가를 위로하고, 삶을 살아가게 할 수 있는 힘을 준다. 그것이 대화의 힘이고, 음악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은 음악 또한 ‘대화’의 한 형식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힘들 때 음악을 듣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행복할 때나, 글을 쓸 때에도 음악을 듣는다. 음악 속에 담긴 메시지가 내게 말을 걸어올 때가 많다. 그 힘으로 또 누군가를 위로하고 말을 걸고, 글을 쓰고 나의 길을 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좋은 대화는 듣는 이의 영혼까지 사로잡는 힘이 있다.

제임스 맥브라이드는 흑인 남성으로서 자신의 백인 어머니에게 헌정하는 책을 썼다.

그의 회고록 <물색> 중 <신약성서>에는 어린 시절의 그와 어머니의 대화가 나온다.     


어느 날 오후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엄마에게 신이 흑인인지, 백인인지 물어보았다.

깊은 한숨, “아이고, 얘야... 신은 흑인도 아니고, 백인도 아냐, 신은 영혼이야.”

“신은 흑인이나 백인을 더 좋아해요?”

“신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단다. 신은 영혼이니까.”

“영혼이 뭔데요?”

“영혼은 영혼이지.”

“신의 영혼은 무슨 색깔인데요?”

“신의 영혼은 색깔이 없어.” 엄마가 말했다.

“신은 물색이란다. 물은 색깔이 없어.”     


이 짧은 대화 속에서 엄마의 침묵 속에 떠올랐을 수만 가지 감정과 이야기를 상상해보게 된다.

아들이 던진 질문 하나하나에 답할 때 엄마는 얼마나 많은 말줄임표를 썼다가 지웠다가 했을까.

실제 대화보다 더 많은 대화가 담겨있게 느껴지는 대화. 실제 대화보다 더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말들, 정직하게 답하려고 애쓰는 마음,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엄마의 진심과 헤아림, 엄마의 ‘깊은 한숨’에 아들을 향한 사랑과 진심, 배려와 눈물이 담겨있다. 그것이 대화를 통해 고스란히 느껴졌다.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은 즐겁다. 그 대화 속에서 어떤 이야기들을 남길 것인가. 어떤 말의 선물을 주고받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그래서 ‘누구’와 대화하는지가 중요하다. 남의 이야기만 듣고 오는 대화에서는 남는 게 없다. 그저 대화가 하소연에 지나지 않고, 듣고 나면 잊어버려야 할 감정 받이에 지나지 않는다면 얼마나 허무한 대화인가. 의미 있는 생각들을 나누고, 그것이 마음에 새겨지고, 살아가는 내내 문득 떠오르는 선물 같은 만남이 되길, 대화를 시작할 때마다 기도하듯 상대를 바라보게 된다. 오늘의 만남이, 우리의 대화가 서로에게 좋은 선물이 될 수 있기를.


오늘의 대화가 10분짜리인지, 100분짜리인지, 1년의 선물이 될지, 10년의 선물이 될지, 평생 기억될지 상상해보면, 누구와 대화를 하고 싶은지 알게 된다.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 참조 <글쓰는 삶을 위한 일 년> 전 티베르기앵,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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