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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Nov 14. 2020

최선을 다해 절망의 길을 걸어내기를

<타이탄의 도구들>을 쓴 팀 페리스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최선의 노력을 했음에도 절망의 구덩이에 빠질 때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 커트 보니것의 말을 떠올린다. "나는 글을 쓸 때마다 팔다리가 없는 상태에서 입에 크레용을 물고 있는 기분이 든다.”     


'글을 쓸 때마다 팔다리가 없는 상태에서 입에 크레용을 물고 있는 기분'...

글을 쓸 때마다 느껴지는 절망스러운 걱정과 어려움에 대해 표현한 말 같지만, 실제 팔다리가 없는 상태에서 입에 크레용을 물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때 크레용의 또 다른 이름은 희망이 될까, 절망이 될까.


어렸을 적 동네에 꼭 그런 분이 있었다.

월남전에서 다리를 잃은 분이 많이 보였다.

우리 동네에 가도, 옆 동네에 가도, 가까운 시장에 가도, 먼 시장에 가도,

몸의 절반을 커다란 고무로 덮어 씌우고 길에서 리어카를 끌며 기어가는 모습, 그렇게 해서 하루 동안 번 얼마간의 돈으로 생활해나갔을 그분들의 삶을 이제야 떠올려본다.

리어카는 만물상이었다. 때수건도 팔고, 빨래집게도, 비닐, 고무장갑, 행주, 수저, 귀파개, 이쑤시개, 면봉 등등

그땐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여러 가지를 함께 실어도 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는 '가벼운 품목' 들이 리어카 가득 놓여있었던 것 같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그래도, 아니 그나마 괜찮았을 텐데 날씨가 궂은날, 몹시 덥거나 몹시 추운 날에도 쉬지 않으셨다. 땅이 태양의 열기로 뜨겁게 이글거리는 그 화산터 같은 곳을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지나가는 아저씨를 볼 때마다 나는 너무 힘들었다. 도와줄 힘이 없는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어른의 모습은 너무 고달프고 힘겨워보였다.

처음엔 나와 상관없는 일 같았다. 그런데 그분이 내 친구 아버지일 때는 달랐다. 시장에서 만나지는, 기어서 리어카를 끌고 가는 모든 아저씨들이 친구의 아빠로 와 닿았다.

어느 날 친구 집에 갔다. 무심코 보다 보니 알게 되었다. 집의 모든 살림살이들이 낮은 곳에 있었다.

수납장도 낮았고, 식탁 없이 상을 펴서 생활하고 (그때만 해도 식탁 있는 집도 그리 흔하지는 않았다, 내 주변에는), 전화기도 바닥에, 화분도 바닥에, 컵과 물병도 바닥에, 신문도 바닥에, 책도 바닥에, 수건 몇 개도 바닥에, 옷도 바닥에...

대부분 바닥에 놓인 살림을 보면서 아저씨의 눈높이를 알게 되었다. 그날 저녁 나도 방안을 기어서 다녀보았다. 모든 것이 불편했다. 내 발로 걸어서 화장실을 가고, 내 손으로 앉아서 밥을 먹는 일이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편하고, 좋은 거구나...

친구는 항상 밝았다. 배려심도 남달랐다. 항상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느꼈는데, 그 이유가 아빠로 인해 얻은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구는 어릴 때부터 '타이탄'이었고, 그의 배려와 유머는 그의 '도구'였다.

가족과 주변 친구들을 항상 밝은 분위기로 이어주고 도움이 필요한 일에 앞장섰던 친구는 내 기억 속에 언제나 타이탄이다.

지금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왜 어린 시절 좋았던 친구와는 다 연락이 끊기고 찾을 방법을 모르겠는가. 그러다 언젠가 만나 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게 되는가.



삶의 영역에서 큰 성과를 올린 사람들을 가리켜 타이탄이라 부르고, 그들의 비법을 담은 책이 <타이탄의 도구들>이다.

<타이탄의 도구들>을 읽으며 '타이탄과 도구들'을 생각한다.


스티브 잡스가 아직 큰 성과를 거두기 전, 넥스트에서 일하던 시절에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단순한 사실 한 가지만 깨달으면 인생의 폭이 훨씬 넓어질 수 있다. 그건 바로 우리가 일상(life)이라고 부르는 건 모두 우리보다 별로 똑똑할 것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일상은 수많은 '타이탄'들이 만들어낸 것이며, 이 순간도 타이탄들은 그들의 도구로 열심히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 불굴의 개척정신과 의지는 도구가 없을 땐 맨 손으로라도 부딪혀서 성과물을 만들어내었다.

정직하고 순박한 어른들, 그들은 영웅이었다.

온몸을 바쳐 땅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걷는 그들의 투박한 손은 돌처럼 단단하고 거칠었지만, 땀방울 맺힌 그들의 얼굴은 태양 아래 빛이 났다.


최선을 다해도 절망스러울 때가 있다.

절망스러울 때에도 최선을 다할 수 있다.

최선도, 절망도, 인간의 능력 중 가장 끝에서 만나지는 막다른 길이다.

평범한 일에는 최선의 무기를 꺼낼 필요가 없고 절망스러운 상황 앞에서는 평범한 무기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최선과 절망은 막다른 골목에서 만나게 된다.

그때에, 팀 페리스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어느 작가의 말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

"나는 글을 쓸 때마다 팔다리가 없는 상태에서 입에 크레용을 물고 있는 기분이 든다."


팔다리가 없을 때에도, 입에 크레용을 물고!

타이탄이라면 어떻게 싸울까.

크레용이 절망이 아닌 '희망'의 또 다른 이름으로. 자기만의 그림을 꿋꿋이 그려가기를.

점 하나. 선 하나부터 새롭게 다시 시작해가기를.



당신의 문제가 당신을 일탈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당신의 숨은 기대가 당신을 일탈시킨다.

여기서 핵심은 '인생이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기대가 당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당신은 상황 그 자체보다 자신의 기대에 더 많이 휘둘린다. 그게 기대의 문제점이다.

- <시작의 기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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