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만 참으면 괜찮을 줄 알았어] 00. 프롤로그
여기 굉장히 행복해 보이는 여자가 있다. 딸 하나, 아들 하나, 토끼같이 귀여운 아이들에 아주 듬직해 보이는 남편까지 ‘스마일’ 미소를 짓고 있다. 게다가 그 여자에겐 번듯한 직장도 있다. 유명하진 않지만 밥벌이치고는 꽤 괜찮다 쳐주는 곳이다. 아직 솔로이거나, 자녀가 없거나, 전업주부를 하고 있는 친구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넌 정말 다 가졌어. 인생의 숙제를 모두 해결했으니 얼마나 행복하겠어?”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어떤 스릴러물은 이렇게 ‘완벽해 보이는 웃음’이 전주가 된다는 사실을! 그 여자의 웃음을 한 꺼풀 벗겨내면 머리끝까지 부글부글 끓어오른 시뻘건 맨 얼굴이 등장한다. “하, 답답해 미쳐버리겠네.” 거친 말투는 기본이요, 눈에 실핏줄까지 차오른 그 얼굴은 완벽함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오히려 속 빈 강정처럼 건드리면 훅 꺼질 듯한 아슬아슬함이 존재한다고 해야 할까?
내 소개를 하겠다. 결혼 6년 차, 애 둘 엄마, 여자라는 이유로 은근히 밑지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으며, 워킹맘이기 때문에 나이 든 아저씨들의 일을 대신해주는 '호구 아줌마'다. 사실 나도 이럴 줄은 몰랐다. 20대까지의 삶은 참 평안했으니까. 평범한 가족, 별일 없는 일상. 착실히 공부했고 좋은 대학에도 한 번에 들어갔다. 취업할 시기에 긴 백수 시절을 보냈다는 게 유일한 오점이었지만, 그게 뭐 어때서?
하지만 결혼과 함께 맞이한 30대는 매일 새로운 시험 문제가 세팅되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엄마라면 당연히 이렇게 해야지" 남편은 말한다. "어차피 내가 더 길게 돈 벌 건데, 당신은 육아에 좀 신경 써" 직장생활도 마찬가지다. 한때 친구라 생각했던 남자 동료들은 나를 따돌리고 자기들만의 끈끈한 우애를 다진다. "여자들은 한계가 있지", "아무렴, 회사를 지키는 건 결국 남자들이야"란 가부장적 논리를 들이대면서. 그러니 이쯤에서 소리 한번 지르고 가겠다.
"이런 C벌! 이놈의 세상,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네!"
이렇게 하여 '잘 나가던 싱글녀'에서 '멘붕 직전의 1인'이 된 나는 생각한다. 이참에 옷을 확 벗어버리자고. 이 눈치 저 눈치 맞춰주던 가식의 옷은 집어치우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자고. 고분고분하게 살며 쥐도 새도 모르게 당하는 세상, 더 이상 고상한 척하지 말고 진짜 나를 찾아보자고.
맞다. 정리하자면 이것은 솔직하다 못해 벌거벗고 쓴 글이다. 바보 같이 참으며 살다가 버럭 소리를 지르게 된 어느 아줌마의 나체쇼다. 하지만 유명 연사도 아니요, 대단한 사회적 인물도 아닌 '나'란 사람의 나체쇼는 이 위대한 지구의 자전 속에서 곤충이 탈피하는 정도의 미약하고 별볼일 없는 사건일 것이다. 누군가는 얘기하겠지. "그래서 니가 벗으면 뭐가 달라지는데? 별로 볼 것도 없구먼"
하지만 타인이 나를 그렇게 평가한다고 해서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라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생각한다. '참다 참다 벗어버리게 된' 어떤 분풀이가 적어도 나 스스로를 구제할 수는 있을 거라고. 귀여운 아내인 척, 현명한 며느리인 척, 착한 직장인인 척하지 않는 이 솔직한 발산의 이야기가 나, 그리고 나와 비슷한 당신의 삶을 바꿀 수도 있을 거라고. 그러니 주저하지 않겠다. 그냥 벗어버리겠다. 꽁꽁 싸서 묵히고 있던 나, 아니 우리의 이야기를 과감히 까보도록 한다.
[나 하나만 참으면 괜찮을 줄 알았어,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