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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향기 Oct 27. 2022

언니 2

언니를 말하려다 내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 말하고 나서 한참이 흘렀다. 언니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암으로 고생하고 있는 언니에 대해서. 누구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말하고 있다는 것일까. 언니의 이야기가 결국은 나로 돌아오고 있던 참이었다...


 언니가 세상을 떠났다. 느닷없이. 그리고 이주일이 흘렀다. 뭐라고 해야 할까. 나는 다시 컴퓨터 좌판 앞에 앉아 있다. 가을인데 언니는 죽었다. 두 달을 못 버티고. 암 진행을 막는 약을 먹고 있었다. 너무 늦게 발견돼서 수술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3년은 약으로 버틴 셈이다.


 약 치료를 시작하면서 언니는 우울해했고, 우울증을 반려견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다. 언니의 우울증은 많이 좋아졌고 자신감도 생기는 듯했다.  언니는 보통 사람처럼 가까운 곳으로 이동할 수도 었고, 밥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취미생활로 붓글씨 학원까지 다니고 있었다.  


 한 달 간격으로 검사를 한다고 했는데,  암세포가 간으로  전이되고 있다는 소식을 올해 늦여름에 들었다. 놀라서 찾아갔을 때 언니는 담담해했다. 형부도 그랬다. 번지고 있어도 치료하면 괜찮다고 했다. 전이되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어도 아직 몸은 괜찮다는 말이었다. 크게 통증이 있거나 특별히 변한 것은 없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속마음은 어땠을까? 진짜로 괜찮아서 괜찮다고 했을까. 동생한테 차마 안 좋은 말을 할 수 없어서 그랬을까. 어쨌든 본인이 의연해하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언니는 원래 오래 살고 싶지 않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사는 것에 그다지 애착이 없노라고... 그래서 꼭 해야 하는 정기검진도 잘 안 받았나 모른다. 언니는 왜 삶에 애착이 없었을까. 몰랐던 사실이지만 어느 날은 우울증이 심해 수면제를 한꺼번에 먹는 큰 소동도 벌였다고 했다. 그건 암 발병 이후이고, 그 이전에는 왜 그런 마음이 있었을까. 나보다 훨씬 얼굴도 이쁘고, 나보다 훨씬 더 키도 크고, 어디를 가든 예쁘다고 칭찬을 듣고 살았는데... 언니와 함께 내 자취방을 구하러 다닐 때도 '이런 곳에 방을 구할 사람은 아닌데'라고 집 주인은 말했는데, 어딜 가나 귀해보이는 사람이었는데...형부가 바람을 핀 것도 아니고 자식들이 속을 썩인 것도 아닌데, 무엇이 언니에게 그렇게 큰 낙담을 주었을까...


그래도 죽음이 눈앞에 닥치니 그렇게 싫다던 항암치료를 시작한다고 했다. 머리카락이 빠질 것을 대비해 미리 가발까지 사놓았노라고 했다. 우리는 언니 집에서 가까운 삼계탕집으로 가서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언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2, 3년은 더 살 수 있다는 말은 조금 있다가 2,3개월로 줄었다. 1차 항암주사를 맞고 힘들어했다. 밥을 못 먹고 기운이 없고,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힘들어도 차츰 나아질 거라 했다. 전화만 몇 번 했다. 힘들면 응급실에 실려갔다가 온다고 했다. 아픈 사람에게 자꾸 전화를 할 수 없어서 전화도 자주 하지 못했다.

 - 괜찮아?

- 으응 좀 힘드네..

- 밥은 먹어?

- 으응 조금씩...

차츰 나아질 거란 말에 언니도 희망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2차 항암주사를 맞은 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언니는 다시 입원 중이었다. 서울에 살고 있는 큰 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좀 가봐라... 울면서 전화했드라...힘들다고... 생전 지가 먼저 전화한 적이 없었는데... 하면서 큰 언니는 울먹였다. 그때 가봤어야 했다. . .

- 언니야, 내가 지금 올라갈까?

- 뭐 그렇게까지.. 조퇴해야 하잖아...

-그래도 가면 볼 수는 있어? 로비에 내려올 수는 있어? 지금 갈까?

-그럼 그럴래?


그럼, 그럴래? 그게 언니한테서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그럼 그럴래... 그때 그랬어야 했다. 나는 2시간 왕복 운전과 밤길 운전과 조퇴의 번거로움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럼 그럴래... 하는 말이 귀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한 주 더 있다 토요일에 가보려고 했다. 언니는 그 말을 한지 이틀 후에 세상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병원을 향해 아파트 현관문을 마지막으로 나섰을 때는 어땠을까. 병원을 향해서 출발할 때는 죽음을 예감이나 하고 있었을까. 아직 결혼도 안 시킨 두 아들을 응급실에서 보는 마음은 어땠을까. 혼수상태였다니 아들에게 남기는 말도 제대로 못 했을 텐데...자꾸 어땠을까, 어땠을까, 하는 언니의 마음이 떠오른다.


 아깝고, 어이가 없고, 안타깝고, 억울하고, 허망하고, 슬프다. 어떤 말을 해야할까. 언니의 죽음에 대해서. 항암주사 두 번째 만에 죽다니... 항암치료를 안 받았으면 두 달은 더 사는 거 아닌가... 그래도 항암주사를 맞기 전에는 걸어 다닐 수도 있었고, 밥도 먹고,  식당도 다니고, 그랬는데... 삶이 참 허망했다. 있었던 사람이 금방 없어져 버렸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지금이라도 전화를 하면, 응 그래, 하고 전화를 받을 것만 같다.


 있고 없음이란 무엇일까. 잘 모르겠다. 언니 2라고 했으나 언니 3을 이야기할 수는 없을 거 같다. 지금도 잘 토해지지 않는 말을 꾸역꾸역 하고 있다. 이렇게라도 하면 좀 나아질 거 같아서이다. 핸드폰에서 언니의 연락처도 지웠다. 없음 다음에는 무엇이 남아있나... 없음 다음에 있음이 이어질 수 있을까...


꿈속에서도 나타나지 않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젯밤 꿈속에서 언니를 만났다. 꿈속에서도 언니는 병원에 가는 중이었다. 나는 언니의 따뜻한 팔뚝을 오래 잡고 있었다. 따뜻했다. 오랫동안 잡고 있으니, 가보지 못했던 마음이 풀리는 듯했다. 이제 조금 괜찮네... 했다. 꿈속에서. 꿈은 꿈이 아니었을 것이다. 반 수면상태에서 내가 계속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오늘 아침은 따뜻하게 시작했다. 어젯밤 꿈속에서 느꼈던 따뜻함 때문에. 아침에 창 밖을 보니 어느새 가을 혼자 창밖에서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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