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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향기 Nov 04. 2022

게으른 가을이 머물다

  수학여행 간다고 들뜰 때까지는 좋았다. 게다가 하루 전날, 명랑 운동회까지 해서 아이들은 정말 명랑하게 방방 떠 있었다. 저 아이가 언제 저런 면을 가지고 있었을까. 수업시간에 엎어져서 하염없이 잠만 자던 잠순이들이 벌떡 일어나서 마구잡이로 날뛰는 것이다. 노래 가사를 바락바락 악을 써대며 외치고 몸을 가락에 맞춰 흔들어댄다. 노래 몇 소절만 들려주고 다음 가사를 알아맞히는 게임이었다. 인근 도시에서 체험활동전문지도팀을 초청해서 벌인 운동회였다. 지도강사는 전문가답게 한시도 쉬지 않고 아이들 혼을 다 빼앗았다. 아이들은 열광하고 뛰고 춤추었다. 모든 시니컬한 잠보들의 대활약이었다.  아이들에게 저런 에너지가 있었구나. 그동안 저 혈기를 받쳐주지 못해서 미안할 지경이었다. 

 수학여행 당일. 아침 6시 50분 출발이었다.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하러 나갔을 때 아이들은 이미 버스에 승차해 있었다. 승차 완료는 6시 40분. 나는 아이들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평소에는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놈들이 이렇게도 빨리 정확하게 아니, 미리 와 있을 줄이야. 새벽 다섯 시부터 일어나서 준비를 했다고 했다. 얼마나 좋았으면. 코로나 때문에 3년 만에 떠나는 수학여행이었다. 이 외지고 궁벽한 시골 섬마을을, 이 지루하고 따분하고 재미없는 학교의 일상을 벗어난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신났겠지. 서울 경복궁과 용인 에버랜드와 부여 낙화암이 일정이었다. 아이들은 일정이 중요하지 않을 거였다. 물론 에버랜드에서 놀이기구를 타는 재미를 기대하고 있겠지만, 이틀 밤을 친구들과 함께 잠을 잔다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수학여행을 다녀온 지 사흘째 되는 날. 어제부터 몇몇 아이들이 결석을 하더니, 오늘은 한 반에 일곱 명 정도가 결석 중이다. 이유는 독감과 감기. 코로나 환자는 없지만 대신 독감이 유행하고 있다. 명랑운동회 하고, 수학여행 다녀오고, 피곤했나 보다. 게다가 마스크도 제대로 안 끼고 있었다니, 병균이 사방으로 퍼졌겠지. 학교에 나온 아이들도 시들시들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온통 힘을 다 써버리고 나머지만 가지고 학교에 온 듯싶다. 군데군데 자리가 비어 있으니, 아이들도 공부할 마음이 나지 않은지, 까불이 몇 명들이 쉬는 시간에 교무실로 찾아와서 놀아요, 놀아요, 하고 칭얼대다가 나간다. 

 아이들이 힘이 없으니 선생들도 힘이 없다. 그런데 어쩌지? 나는 시 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게다가 시인을 초청한 상태이다. 이 힘없는 아이들에게 시를 어떻게 가르칠까. 신나는 운동회와 신나는 수학여행과 시는 어울릴 수 있을까. 멀리서 달려온 시인께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든다. 그렇다고 초청한 시인께 저번처럼 운동회를 해주라고 부탁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맥없음과 피곤함과 나른함을 시로 쓰라고 할까. 

  멍하니 보고만 있을 아이들 앞에서 강사분 혼자서 열정을 토해놓을 상황이 상상이 되면서 마음이 답답해져 온다. 당장 시험 성적과 관련되는 일이 아니면, 당장 재미있는 일이 아니면, 도통 관심이 없는 아이들 마음 한 구석에 어떻게 창작의 열정을 불러일으킬까. 이 심심하고 지루한 일상 한 구석에 소중한 시의 씨앗이 담겨 있는 거라고, 이 밍밍한 반복의 일상 속에도 칼날 같은 상처가 숨어 있는 거라고, 무심히 하고 있는 동작 하나에도 우주의 무한한 긍정의 힘이 작용하고 있는 거라고, 어떻게 알려 줄까. 어떻게 가르쳐 줄까. 

 어제는 방과 후에 신안 임자도의 대광해수욕장 모래사장을 맨발로 걸었다. 생각보다 바람이 적어서 걷기에 좋았다. 걸으면서 동료가 그랬다. 어느 중학생 시절에 어떤 시인이 오셔서 강의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훗날 좋은 추억이 될 거라고. 맨날 똑같이 하는 수업은 기억에서 사라져도, 그런 시 쓰기 수업은 머릿속에 남을 거라고. 지금 시를 읽어보고 시를 써보지 않으면, 이 아이들이 언제 또 시를 접할 수 있겠느냐고. 

 그래, 그렇지. 나는 지금 아이들을 모두 시인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동료가 말했던 것처럼 시와 시인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욕심을 버리자. 아이들이 시를 보고 경탄하고 흥분하고 날뛰고 설레고 그러지는 않을 거 아닌가. 아이들이 시를 쓰기 위해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지는 않을 거 아닌가. 나는 꼭꼭 숨어 있을 시심을 밖으로 끄집어내려고 안달하고 있는지 모른다. 시심은 꼭꼭 숨어 있다. 그러나 내가 안달하지 않아도, 모든 아이들에게는 시심이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다. 살아 있는 것이 시이니까.  

 오늘은 심심하고 지루하고, 게으른 시로 들어가 보자. 가을도 그렇게 심심하게 다가와서 조용히 머물고 있다.  

동네 가을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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