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원을 잊지 못하는 병
시골을 떠나기로 하고 집을 내놓았다. '10년을 살았으니 그래도 많이 살았지'하는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영원히 살 것 같이 시작했다. 이 집에서 정년을 맞이하고, 이 집에서 생을 마감해야지 했다. 영원히 살 것이라고 생각하니, 집에 무슨 문제가 조금만 생겨도 걱정이 태산같이 되었다. 처음에는 수도도 없고 도로포장도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수도를 설치해 달라고, 쓰레기 분리수거함을 놓아달라고 면사무소에 전화하고, 민원을 신청하기도 했다. 민원을 신청하면 답변을 들을 수는 있었지만, 원하는 것이 다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민원 덕분에 2년 후에 된다는 수도가 1년 앞당겨졌지만 쓰레기 분리수거장은 설치되지 않았다. 적당한 곳에 놓아두면 일주일에 한 번씩 수거해 가기로 한 것이 최선이었다. 그 적당한 곳은 바로 집 앞의 전봇대 밑이었다.
세면대가 막히거나 창문이 잘 안 열리거나, 문이 틀어져서 잘 안 닫히거나, 방충망이 헐거워져서 벌레가 많이 들어오거나... 그런 일이 생기면 이걸 어떻게 해결하나 걱정부터 되었다. 어디에 연락해야 할지 누구를 불러서 고쳐야 할지가 막막했다.
집에 햇빛이 잘 안 들어오는 것도 끝까지 문제였다. 물론 햇빛이 잘 안 들어온다는 것도 나의 과대한 욕심 때문에 문제 삼는 것에 불과하지만. 우리 집은 동향이어서 아침 10시까지는 햇빛이 예쁘게 들어오는데 말이다. 특히 겨울이면 태양이 낮아지니까 햇빛이 낮게 깔려서 소파 자리까지 한참을 환하게 비춘다. 그래도 나는 '남향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미련이 얼마나 미련스럽게 많았으면 다 지어진 집을 들어서 틀고 싶기까지 했을까. 약간만 방향을 돌려서 지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 여기다가 창문 하나만 더 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집을 남에게 팔겠다고 내놓고 나서야 집 안에 들어오는 햇빛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버리려고 하니 막상 가지고 있는 것이 아까워졌다.
'아, 이게 바로 집착이구나' 하고 절절하게 느낀 것은 집을 파는 과정에서 더 심해졌다. 집을 얼마에 내놓을까? 얼마에 내놓아야 서운하지 않을까? 부동산을 하는 친구에게 물어보고 선배한테도 물어보았다.
" 그 정도면 얼마가 적당할까요?"
" 대략 인근의 아파트 시세보다는 조금 싸야 하지 않을까요? "
우리는 2억 3천을 선택했다. 맨 처음 집을 지었을 때 1억 3천 정도가 들었다. 건축업자를 잘 만났고, 흙과 나무로만 지은 집이라 다른 집에 비해 건축비가 덜 들었다. 거기에 이동식 구들방이 2천 오백이었으니, 2억 3 천정도면 손해 안 보고 서운하지 않을 거 같았다. 그런데 마음속으로는 내심 너무 비싸게 내놓는 건 아냐? 하는 생각이 있었다. 2억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 본전만 따지면 약 1억 6천 정도. 그러니 7천만 원을 더 붙여서 내놓는 것이었다. 좀 과한가? 왠지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흥정을 할 때는 깎일 것이니 넉넉하게 부르자... 10년 사이에 물가가 엄청 많이 올랐다는 생각은 안 하고 그 사이에 도시 집 값은 몇 배로 뛰었다는 생각은 미처 안 했다.
부동산을 하는 친구에게 먼저 집을 내놓아달라고 부탁했다. 친구는 우리 집에 와서 사진을 여러 장 찍고 둘레도 살펴보았다. 네이버 부동산에 내놓고, 부동산 연결망에도 올리겠다고 했다. 네이버 부동산에 우리 집이 매물로 올라와 있었다. 그러나 서너 달이 지나도 반년이 다 되어가도 연락 오는 곳이 없었다. 감감무소식이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고 있었다.
우리는 발로 뛰기로 했다. 인근 도시의 부동산을 찾아다녔다. 우리 집 사진을 보여주고 집 값을 얘기했다. 부동산 업자는 도시 사람 중에 은근히 시골집을 찾는 사람이 간혹 있다면서 희망적인 얘기를 해주었다. 찾는 사람이 있으면 꼭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가격은 조정이 가능하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발로 뛰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못되어서 집을 보러 온 사람이 나타났다. 여자 한 명이었다. 그런데 이 집을 월세로 줄 수는 없냐는 거였다. 몸이 안 좋아서 이런 집을 찾고 있는데, 계속 살 자신은 없고 1년만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월세라는 것을 예상하지 않고 있는 터라 돌려보냈다. 그 여자가 찾아온 지 이틀 후에 한 식구가 단체로 우리 집을 보겠다고 들어왔다.
우리 나이 또래의 부부와 딸과 사위와 손주들까지 여섯 명쯤 되어 보였다. 우르르 들어와서는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와, 좋네~ 괜찮네~를 연발했다. 딸 부부는 다락방도 있다, 작은 방도 숨어 있다, 붙박이장도 있다, 벽이 황토다, 마루도 있다, 하면서 다녔다. 손주들은 할아버지를 부르며 다락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마당으로 내려섰다. 나는 집 칭찬을 마구 해대었다. 시골에 이만한 집이 없다, 인근 도시와 접근성이 좋다, 20분이면 목포도 가고 1시간이면 광주도 간다, 마을이 조용하다, 사람들도 모두 착하고 좋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편안하다, 등등. 한참을 얘기했더니, 나이 든 남자가 물었다.
" 얼마까지 줄라요?"
" 2억 천까지 줄게요"
"...,..."
남자는 아무 말이 없더니,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고 오겠단다. 그러라고 했다. 생각이 있는 것도 같은데,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남편이 나를 방으로 끄집어 들이더니, 남편이 버럭 화를 냈다. 아니, 그렇게 한꺼번에 2천을 깎아주면 어떡하냐고. 처음에는 천만 원만 깎아주다가 안 된다고 하면 못 이기는 척 다시 오백이나 천을 깎아 줘야지, 대번에 그렇게 팍 깎아줘 버리면 어떡하냐고...
나는 마음속으로는 2억 정도면 괜찮다고, 많이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남편의 말에 얼떨떨하긴 했지만 금방 우기는 말이 튀어나왔다.
"에이, 2억 정도면 많이 받는 거야."
"그래도 그렇지."
남편은 나의 사려 깊지 못함을 탓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식구들이 마당으로 다시 들어서고 있었다. 남자가 마루 앞에 턱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핸드폰으로 우리 집 지적도를 보여주면서, 지을 때 얼마에 지었소? 한 1억 도 안 들었지라? 쩌그 윗동네에 내놓은 집은 200평 인디 1억 육천입디다, 거기를 할라고 하다가 잠깐 요 동네에 와본 건디, 또 하나 나와 있는 집도 황토로 만든 집인디 이 집보다 커도 1억 구천에 나왔습디다, 이거 몇 년에 등기했소? 10년 넘었지라? , 마구 묻는다. 나는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하면서 띄엄띄엄 얼마가 들었고 언제 등기를 한 건지 기억을 더듬다 급기야 등기증을 찾으러 집 안으로 들어가고...
남자는 트집을 자꾸 잡아서 집 값을 낮추려고 함이었다. 우리는 그 눈치도 못 채고 사실 확인에만 급급했다. 아니라고 10년은 아직 안되었고, 건축비만 해서 얼마였고, 땅값은 얼마였고, 쩌기 구들방은 얼마에 샀고, 등등 먼 기억만 더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