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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향기 Mar 26. 2024

 친구의 대답없음

 몇 년만인가? 세어보자. 대학교때 보고 안 보았으니까 35년도 더 넘었다. 목소리를 들은 느낌이 통화를 끊고 난 후에도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다행히 전화번호가 핸드폰에 살아있었다. 나의 이름을 밝혔을때 35년 전의 옛친구가 말했다.

"중학교 동창? ㅇㅇㅇ? "


 왜 갑자기 전화할 생각이 났을까?

어제 남편이 느닷없이 내 친구의 근황을 물었다. 

"혹시 이혼한 건 아닐까?"

 연락을 끊은 친구가 혹시 이혼을 해서 그런건 아닐까 라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왜 갑자기 잘살고 있을 사람을 이혼시키느냐며 웃고 말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핸드폰에 아직 번호가 살아있을 것 같은 옛 친구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남편이 물었던 그 친구의 번호는 이미 없어졌지만, 다행히 중학교 동창 친구 번호는 살아 있었다. 마침 같은 지역이니 이사왔다고 전화나 해볼 마음이 생겼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0년이 지나면 '홈커밍데이'라고 해서 동창회를 여는 문화가 있다. 몇 년전에 '홈 커밍데이'안내문자를 받았었다. 그때 동창회에 나갔더라면 그 친구를 만날수 있었을란가 모른다. 그 친구는 의사를 만나 약사를 하고 있다고 전해들었다. 동창회에 기부금도 꽤 많은 액수를 냈다고 했다. 기부금을 상상 이상으로 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걸 알고 발길을 돌렸다. 괜히 마음이 후줄근해지고 초라해져서였다. 친구를 만날수 있는 기쁨보다 현재 나의 위치를 확인하고 비교당하는 느낌이 들까봐 자리를 피했다. 그 때 잠시 그 친구가 문자로 소식을 보내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는 평범하게 살 거 같지 않았는데, 어때?' 그 답으로 '응, 그래 맞아 평범하게 산 건 아니야' 라고 답했고 그걸 마지막으로 소식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평범하게 살지 못했다는 자괴감 때문이었을까? 거리가 멀다는 이유 때문이었을까? 굳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은 나지 않았다. 


 퇴직 한지 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 무료하고 심심해서인가? 옛 기억을 더듬고 전화변호를 뒤적이고 연락을 해보는 이유가? 아니 그보다는 다 괜찮다는 느낌이 번져오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지금 이런 내가 다 괜찮다는 느낌... 누구보다 어떻고, 무엇보다 더하고,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해결되어야만 한다는, 그런 생각이 좀 옅어진다고 할까...  

 그 친구가 "중학교 동창? ㅇㅇㅇ?" 라고 했지만 생각해보니 그 친구와는 중학교 동창이자, 고등학교 동창이고, 대학교 동창이다. 참 깊은 인연인데 이렇게 되었다. 아니 대학교 한 시절은 같이 자취를 하기도 했다. 방을 두번 옮겼던 기억이 나니까 아마 1년은 더 넘게 같이 살았던 것 같다. 우리집은 큰 목돈이 없어서 전셋방을 구할 수 있는 그 아이 집에 얹히듯 같이 살았다. 깊고도 깊고 질긴 인연이 그렇게 쉽게 끊어질 수도 있었다. 

 누구의 잘못인지 모르겠지만 이제 와서는 조금 후회가 된다. 내가 그 아이를 쳐냈나 모르겠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사회의 변두리에서 변방의 의식를 키워가면서 반항적인 젊은 시절을 보냈고 그러면서 평범하지는 않은 삶을 선택한 내가 기존의 울타리를 걷어내고 '나'라는 옹졸한 방어막을 견고하게 쌓아올리고 있을 때였으니까...

 

 지금 어디냐고, 묻는 친구의 목소리가 내가 알던 친구와 연결이 되지 않았다. 내가 그런 느끼을  말했더니 그 친구도 그렇다고 말했다. 내가 알던 그 친구의 목소리는 좀 더 가늘고 높고 여린 것이었다. 그런데 조금 전에 들었던 친구의 목소리는 당차고 활기차고 힘있고 굵었다. 생소하고 낯설었지만 반가웠다. 세상에... 35년만에 연락했는데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고 또 신기했다. 


 이제 연락을 해서 뭐 어쩔수 있을까? 한두번 만나서 그간 살아왔던 이야기를 나누고 그럴수 있겠지. 그리고 난 다음은? 글쎄 잘 모르겠다. 다만 반가움이, 살아있었음에 대한 감동이 더 컸다. 근무시간이 끝나면 전화한다는 그 친구의 연락을 기다렸다.  


 일주일이 지나도 그 옛친구는 연락을 하지 않는다. 지금은 근무중이니 이따가 이 번호로 전화하겠다더니... 며칠은 기다리고 며칠은 원망하고 며칠은 포기했다. 괜히 잘 있는 사람을 불러내서 기다리고, 원망했다. 내가 일으킨 소동이니 내 탓이다. 전화를 하지 않는 그 친구 탓이 아니라.

 혹시 그 친구도 같은 생각이었을까? 이제와서 연락을 하면 뭐하나, 그냥 살아왔던 이야기를 나누는 것 말고는 뭐를 할수 있나... 괜히 지나간 시간을 불러내서 사라졌던 감정들을 봐야하는 것말고 뭐가 있나... 하는 그런 생각이었을까? 그게 반가움보다 더 컸는지 모른다. 냅두자.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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