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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Sep 12. 2017

대한제국의 벨기에 영사관, 대한민국의 미술관이 되다

남서울 생활 미술관을 다녀와서



​<혼잡한 유흥가 속 덩그러니 놓여진 신고전주의 건축물>

_미술관 창문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이다. 미술관 뒤편으로 카페나 술집들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 상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굉장히 정적인 미술관의 창문밖으로 번쩍이는 불빛들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인상적이었다.


 사당역 6번출구로 나와 앞으로 20m정도만 걸어가면 바로 모습을 드러내는 남서울 미술관은 위치적으로 너무나도 찾기 쉽고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있다. 하지만 평소 문화생활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안으로 발을 들이는 것이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될 것이다. 위치적으로는 가까우나 심적으로는 멀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경험담이다.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거리에 살면서도, 미술관 앞을 수도 없이 지나치면서도 단 한번도 안으로 들어가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자그마한 두려움이 발걸음을 막아 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서울 미술관은 언제나 시민을 위해 열려 있고,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이제 나와 같은 경험을 할 당신을 위해 이렇게 글을 쓴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망설이지 말고 당장 그 안으로 발을 들여보자.


<대한제국의 벨기에 영사관, 대한민국의 미술관이 되다>


 개관 12년차의 남서울 미술관, 하지만 이 미술관의 역사를 논하려면 무려 1905년, 대한제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절 고종황제는 일본에게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 중에 있었다. 이에 따라 대한제국은 중립국 선언을 하게 되었고, 이 때 우리의 손을 잡아준 벨기에의 영사관이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대한제국에 세워지게 되었다. 그러나 고종황제의 중립국 정책은 일본에 의해 무력으로 짓밟혔고, 뒤이어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막을 내리며 대한제국의 중립국화도 함께 막을 내렸다.

 이렇게 중립국을 향한 노력이 역사 속에 묻히며, 자연스레 벨기에의 존재 또한 우리의 근대사 속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근대사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벨기에 영사관이 지니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으며, 처음 위치인 중구 희현동에서 지금의 관악구 남현동으로 옮겨와 복원되었다. 이 후 서울시립미술관 소재의 ‘남서울미술관’ 으로서의 변화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고, 현재는 역사와 건축, 근대와 현대가 교차하는 공간으로서 시민들에게 가장 가까운 공간에 자리잡게 되었다.
 

 이처럼 이 건물은 일제시대부터 해방, 또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모든 근대사를 함께 지켜보았다. 이렇게 근대사적으로 굉장한 의미를 간직한 건물이 문화예술을 만나 탄생한 것이 바로 지금의 남서울 미술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은 역사와 문화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이색적인 공간으로 다가온다. 이 건물은 우리나라와 아픔, 기쁨 일제의 아픔, 해방의 기쁨을 함께하고 마침내 우리와 문화의 공유도 함께하는 공간으로 변화한 것이다.



​<공예, 실용성을 벗고 예술성을 입다>


 ‘연중무료로 운영되는 다채롭고 수준 높은 기획전시 등으로 도심속에 예술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지역 문화 공간’ 이라는 미술관 홈페이지의 소개글처럼 남서울 미술관에서는 시민들을 위한 기획전시를 언제나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현재는 ‘공예의 자리’라는 기획전시가 진행중이다.

공예의 자리
2017년 06월 06일~ 2017년 09월 24일
(무료)

 공예는 가장 오래된 미술이며, ‘실용성’에 기초한다. 그러나 근대 이후 미술 개념이 변화하고 산업화가 가속됨에 따라 ‘공예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 앞에 놓이게 된다. 이 기획전시에서는 실용성에서 유래한다는 공예의 속성을 벗어나 작가의 미학적 표현에 근간을 둔 새로운 공예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이를 통해 현대미술에서 공예가 지닌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권영우, 무제, 1982,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화선지와 함께 쓰이는 먹과 붓을 사용하지 않고 종이 자체를 매개로 표현한 작품이다. 표면을 날카로운 도구를 긋고 찢는 ‘우연성’을 강화하여 종이 자체가 지닌 물질의 특징을 극대화하였다고 한다.



[이수경, 번역된 도자기, 2011,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도자기를 깬 후, 그 파편들을 ‘탈 도자기’ 형상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파편들을 잇고 붙이는 작업을 통통 죽은 것을 새로운 것으로 살리는 과정을 상징화 하였다고 한다. 다소 난해한 모양이지만 해설을 보고 나니 작가의 의도가 너무나 분명하게 다가왔고, 기억에 남는 작품 중 하나이다.



[신미경, 트랜스레이션-청화백자 시리즈. 2009-2013,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작품을 운송할 때 쓰이는 목상자를 의도적으로 작품과 함께 전시하고 있다. 사물이 원래 있던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 박물관에 전시되는 유물이 되면서, 사물의 본래 가치와 우위가 변화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또한 해당 작품은 놀랍게도 비누로 제작되었는데, 쉽게 손상되거나 씻으면 없어질 수 있는 비누라는 연약한 재료를 통해 단단한 도자기의 형상을 제작함으로써, 견고해 보이지만 사라질 수 있는 현재의 가치와 위계를 시사하고자 하였다.
 처음엔 아름다운 도자기의 형상에 이끌려 유심히 보게 되었던 작품이다. 때문에 이 작품의 재료를 알았을 때 가히 충격적이였고,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실제 청화백자를 뛰어넘는 아름다움과 우아함이 느껴진다. 거기에 비누라는 연약한 재료를 사용한 작가의 창작의도가 뇌리에 박혀 이 날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물이 되었다.



​<예술은 이해하기 힘들어!>

 ‘예술은 이해하기 힘들어!’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고, 나 역시도 자주 하게 되는 말이다. 이 전시도 마찬가지로 해설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다소 난해하다고 칭할 만한 작품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해하기 쉽다면 그것은 예술보다는 교과서에 가까울 것이고, 작가의 전달과 우리의 해석을 통해 예술작품이 비로소 그 의미를 온전하게 갖춘다고 생각한다. 교과서보다는 예술이 우리에게 더 큰 교훈을 안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비록 지금은 입구에서 나눠 주는 안내 책자 없이는 단 한작품도 해석하지 못하는 ‘예술 뜨내기’라고 할지라도.
 전시기간이 이주 남짓 남았다. 만약 이 이 근방에 살고 있다면, 혹은 이색적인 전시회를 찾고 있다면 잠깐 시간을 내어 역사와 예술을 함께 체험 할 수 있는 남서울 미술관에 방문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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