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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a May 14. 2022

딸이 포켓몬 스티커를 당근에 올렸다.

물건에 대한 가치는 내가 만드는 것일까?

"엄마 당근에 포켓몬 스티커 올려봐도 될까요?"


아이는 내 당근 계정을 이용해 포켓몬 띠부띠부씰을 올렸다. 2200원짜리 빵에서 부록으로 나온 스티커를 무려 1500원에 말이다!!!  몇 시간 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자기야 1500원짜리 스티커는 당근에 왜 올린 거야? 이게 팔리겠어?"

"응 둘째가 올리고 싶다고 해서 허락해줬어. 안 팔리면 내리면 되니까. 본인 용돈 할 거라네"

아이가 올린 포켓몬빵 띠부띠부씰

결론부터 말하자면 2200원짜리 포켓몬빵에서 나온 주인공도 아닌 식충식물로 추정되는 포켓몬의 띠부띠부씰이 1500원에 거래되었다. 좀 더 실용적이고 쓸모 있고 ( 물론 내 입장에서) 가치가 나가는 내 중고 물품은 뒤로 한채 말이다. 이로써 초등학교 5학년 내 딸아이의 첫 당근 거래가 성사되었다. 


아이의 취미 중에서 돈이 나가는 것은 또 있다. 지난 어린이날 선물해준 3500원짜리 동물의 숲 아미보카에서는 무려 인기순위 1위의 주민 카드가 나와버렸다. 닌텐도 동물의 숲은 나만믜 섬을 꾸미는 게임인데 하나의 섬마다 열 명의 주민 캐릭터들이 살게 만들 수 있다. 닌텐도의 마케팅 전략이 대단한 게.. 랜덤으로 카드를 3장씩 넣어 3500원씩 판매하고 있는데, 여기서 나온 주민을 태그 하여 내 게임의 주민으로 진짜 초대할 수 있게 만들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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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캐릭터를 내 게임의 주민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 첫째 게임에서 캐릭터를 소환하는 무한 노가다 작업을 한다. 이 방법은 매우 귀찮고 비 인기 주민이 걸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둘째, 아미보카드 랜덤 팩을 구입한다. 이 방법 역시 확률이 매우 떨어진다. 셋째, 온라인에서 인기 주민 카드를 구매한다. 세 번째 방법은 가장 쉽지만 내 아이가 뽑은 인기 1위 주민의 경우 가격이 85000원 정도 한다.


이쯤 되면 어른들은 궁금하다. 도대체 인기 주민이 내 게임 안에 내 캐릭터도 아니고 주민으로 살면 뭐가 좋은데?  좋은 점은... 내 게임 속 마을에 예쁜 캐릭터가 살고 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하지만 아이들 사이에서는 엄청난 가치가 있는 행위이다. 포켓몬 빵을 뜯었는데 뮤츠가 나왔다던지, 누구네 동숲에는 미첼이 산다던지 하는것이 엄청난 가치가 된다.

그 가치는 누가 만드는 것일까? 그게 바로 마케터들의 몫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마케터들은 존재하지 않는 가치를 물건에 쏟아 붙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했다. "비존재에 대한 가치부여" 그것이 너무나 멋져 보여서 내가 마케터가 되었던 이유도 있다. 


그래서 그 가치들이 한낱 가죽을 엮어 만든 물건에 에르메스라는 명품을 탄생시키고, 자동차의 본질인 승차감도 아닌 하차감이라는 가치를 부여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내가 만든 가치가 아니라, 나 같은 마케터들이 만든. 즉 타인이 만든 가치라는 것이다. 


사회가 만든 가치라는 것에 너무 현혹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사회는 교묘하게 양산된 가치를 내가 생각해낸 가치라고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철학자 한병철에 의하면 근대 이전의 사회를 주종관계에 의한 타자에 의해 착취되는 사회로 규정짓는다면, 현대사회는 내가 나를 착취하는 사회이다. 이는 주종관계에 의한 착취보다도 더 효율적인 결과를 내는데, 인간은 '자유'에 의한 자발적 몰입에 더 큰 성과를 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현대 사회는 구입이나, 노동을 강요하지 않는다. 새로운 가치만 만들면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신식 핸드폰이었던 아이폰 12를 단종시키고 아이폰 13을 만들어내면 된다. 원래 팔던 빵에 인기 캐릭터 스티커를 집어넣으면 된다. 에르메스의 공급 수량을 제한하고 ( 명품이라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주행등의 위치를 조금 바꾸고 디테일에 살짝 손을 본 다음 2023 신형 모델이라는 이름으로 신차를 출시하면 된다. 그러면 소비자들은 자발적으로 구입 예약을 하고, 오픈런을 하며 마이너스 대출을 받거나 혹은 더 많이 벌기 위해 더 노력하고 더 열심히 살기 위해 나를 채찍질한다. 


이쯤 되면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질문이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너는 모든 것에 초연하니? 당연히 아니다. 나 역시도 아이폰 13을 구매했다. 어제는 자동차를 구입하기 위해 몇 군데 견적을 받아왔는데, 자동차를 바꾸는 이유가 첫 번째는 17년 된 내 차가 고장 나서 이기도 하지만, 두 번째는 17년 된 내 차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안 바꿨냐?"라는 질문에 더 이상 답하기 싫어서 이기도 하다. 


그러나 알고 당하는 것과 모르고 당하는 것은 다르다. 내가 추구하는 이 가치가 오직 나만의 가치가 아닌, 사회가 만든 '비존재에 대한 가치 부여'임을 가끔 상기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이 무한 경쟁사회에서 I can do it을 외치려 오늘도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이 나의 가치일 수도 있지만 남들이 부여한 가치에 효율적 자발적 노예로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마케터들의. 그리고 거대기업들의. 그리고 사회라는. 비존재적 유기체의 최면일 수도 있다는 의심은 하면서 살아가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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