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뿐인 섬, 그 정원을 산책하다

20190911

by 셩혜

호스텔 체크아웃 후 쥬데카 골목골목을 걸었다. 볼거리가 모인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 번잡스럽지 않다. 베네치아에서 중산층이 산다는 동네답게 조용하면서도 현대식 건물이 곳곳에 있다. 쥬데카 섬을 떠나 이솔라 델레 로즈(Isola Delle Rose) 섬의 JW 메리어트 베니스 리조트 & 스파(JW Marriott Venice Resort & Spa)로 숙소를 옮겼다. 이번 일정은 나의 출장+남편의 휴가가 합쳐진 것이라 무작정 내 일만 하기에 미안함이 들어 하루 정도는 완벽하게 호캉스를 통해 쉼을 갖고자 했다.

이 섬에 있는 것이라곤 호텔이 전부다. 베네치아 본섬과 리도섬을 바라볼 수 있는 호텔이 오직 이 섬의 주인이다. 4층 건물로 하얀색 벽에 갈색 창문 프레임, 단층으로 이뤄진 빌라 같은 룸, 성당, 스파, 피트니스, 다이닝 레스토랑 건물 사이로 올리브 나무가 무성하다. 호텔 건물 뒤로는 호텔 부지보다 더 넓은 공간 정원이 펼쳐진다. 아침에 본 무지개 덕분인가! 기본 룸을 예약했는데 스위트 룸으로 업그레이드를 받았다. 그것도 호텔 건물 가장 중심에 위치한 룸으로 말이다. 호텔로 들어오는 수상 택시가 시원하게 보이는 룸이다. 베니스 국제영화제(Venice International Film Festival) 기간이라면 영화계를 주름잡는 전 세계 배우를 룸에서 편하게 볼 수 있을 텐데 도착하기 이틀 전 영화제는 막을 내렸다(영화제 기간 많은 배우와 스텝이 이 호텔에 투숙한다.)

초록잎 무성한 정원 사이로 난 자갈길을 산책 삼아 걸으니 중세 시대 어느 수도원 정원을 거니는 느낌이다(알고 보니 1800년대까지 카푸친(capuchin) 형제회 수도원이 있던 자리다). 정원 끝에 서서 호텔 쪽을 바라보니 건물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빼곡한 나무 사이로 아침 햇살이 싱그럽게 빛나고 바람이 향기처럼 흩날린다. 무심결에 고개를 돌리니 등 뒤로 섬을 둘러싼 나무 사이, 바다 물결 위로 떨어지는 햇살이 얌전히 반짝반짝 빛을 낸다.

빌라동 산책로를 거닐다 ‘바스락’ 하고 소리가 나 발 아래쪽 바닥을 보니 세상에 미니 달팽이를 밟아 죽인 것 아닌가! 거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달팽이가 꿈틀꿈틀 겨우 움직이고 있다.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살폈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달팽이는 올리브 정원에서 이 나무들의 친구가 되어준다.

간간이 청소하는 호텔 직원이 보였지만, 그들은 내 산책을 방해하지 않았다. 에둘러 길을 돌아가거나, 무심한 듯 자신의 일을 할 뿐이다. 오전 7:40. 호텔 정원이 오로지 내 것 같다.


그나저나 이 작은 섬, 자로 잰 듯 반듯반듯한 호텔을 보고 있자니, 본섬의 고딕, 바로크 시대 건축 양식을 띈 오래 시간을 담은 호텔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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