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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 Mar 11. 2024

첫 만남이 반가워서 영역표시 좀 할게요.

가끔은 나도 개가 되어야겠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꽤 어릴 때부터 우리 집은 개를 키웠다. 동물을 좋아했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많은 개들이 내 인생의 소중한 순간을 함께 보냈고 지금도 함께하고 있다. 메리, 마루, 패키, 꿍이...  이름만 들어도 사랑스러운 모습들이 머릿속으로 떠오르고 그들은 존재 자체로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든다. 이렇게 개들과 함께 했던 성장과정에서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개를 부르는 방법이다. 입을 휘파람을 불듯이 오므리고 위아래의 치아를 붙인 다음 혀의 마찰을 이용해서 다음과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이다



쭈쭈쭈쭈



이 소리는 기분에 따라서 다양한 톤으로 나올 수 있는데, 일반적일 때는 차분한 쭈쭈쭈가 기분이 좋을 때는 조금 더 방정맞은 느낌의 쭈쭈쭈쭈 소리를 낼 수도 있는 강아지를 부르는 마법의 소리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강아지와 쭉 성장하면서 강아지를 부르는 것이 익숙했던 나에게는 한 가지 버릇이 생겼는데 길을 가다 강아지가 보이면 나도 모르게 이 소리를 내며 부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행동이 나의 뇌를 거치지 않고 나오는 버릇이라는 것을 이 날의 일로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날 몸과 마음의 휴식을 위해서 충북에 있는 한 휴양림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동안 휴양림을 가면 저녁에 자연 속에서 맛있는 음식을 배 터지게 먹고, 아침에는 조금 일찍 일어나 휴양림과 연결된 산을 오르는 나만의 루틴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방문하게 된 곳은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라 휴양림 내부의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지 않는 상태라 이용이 불가능했다. 그냥 돌아가기는 아쉽다는 생각에 휴양림이 있는 근처 마을을 천천히 걸어보기로 하고 주변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한 20분쯤 정처 없이 걸었을까 작은 계곡을 끼고 건너편에 있던 한 전원주택에서 굉장히 요란스러운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더 가까이 가보니 노란색의 큰 개 두 마리가 신나서 꼬리를 흔들며 반가움의 댄스를 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개의 종은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사람을 굉장히 좋아하는 걸로 봐서는 분명 좋은 개 임에는 분명했다. 개들은 울타리가 있는 주택의 마당에 있었고 그 사이를 계곡이 또 가로막고 있어서 우리는 멀리서 서로의 존재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떨어진 채로 서로 반가움만 표시하다 발걸음을 다시 옮기려고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에서 그 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쭈쭈쭈쭈




그 순간 잠시 정적이 흘렀던 것 같다. 반가워서 꼬리를 치며 엉덩이를 흔들던 개 두 마리가 일순간 행동을 멈추고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잠깐의 정적이었지만 나는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그때 갑자기 개 두 마리가 집 울타리의 한쪽 어디론가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능숙하게 울타리 한쪽에 만들어 놓은 개구멍에 차례로 몸을 쑥 집어넣고 집의 울타리를 탈출해서 밖으로 나왔다. 순간 조금 놀라긴 했지만 계곡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강아지들이 내가 있는 곳 까지는 오지 못할 거라고 안일한 생각을 했었다.




"어... 어...? 개가 계곡 밑으로 오는데?"




같이 있던 일행이 놀란 목소리로 다급하게 소리쳤다. 집보다 다소 낮은 위치에 있었던 계곡이라 개들이 살고 있는 집에서 계곡까지 연결된 길은 없을 것이라는 단단히 잘못된 착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개구멍을 빠져나온 개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이 다니는 길을 이용해 계곡으로 내려왔고 돌다리를 이용해 순식간에 계곡의 반대편까지 넘어왔다.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 우리는 재빨리 개들과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개들은 생각보다 빨랐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발걸음을 옮길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늦은 뒤였다. 걸어가는 등 뒤로 경쾌한 발소리가 연이어 들리기 시작하더니 누군가 뒤에서 어깨와 등을 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조금 전 봤던 그 개 두 마리였다. 멀리서 볼 때와는 달리 개들은 생각보다 더 컸고, 생각보다 더 사람을 좋아했다. 하지만 사람 한 명 지나가지 않는 시골길에서 큰 개 두 마리의 격한 환영을 받는 상황은 생소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운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개를 많이 키워본 입장에서 이들은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개를 키워 본 경험조차 없는 일행은 나를 지나서 먼저 앞질러 걸어가기 시작했고, 그 두 마리의 격한 환영 인사는 혼자서 오롯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럴 때 개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만져주기라도 하면 더 큰 불상사가 생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개들은 원래 그런 존재니까. 누군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덮어놓고 사람에게 애정을 보여주는 그런 존재니까 말이다. 나는 최대한 개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무시하며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나의 반응에 개들은 마치 의아하다는 듯이 점프를 하며 계속해서 등에 신호를 보냈다.




'왜 놀자고 불러놓고 안 놀아줘? 뭐야? 얼른 나를 만져! 놀자니까?'




그럴리는 없지만 개들이 내 등 뒤에서 이렇게 외쳐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최대한 이런 모습을 애써 못 본 척하며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지속적인 나의 무관심에 점프를 하며 나에게 놀자고 신호를 보냈던 개들이 드디어 행동을 멈췄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나?라고 생각한 나를 비웃듯이 개들은 나를 지나쳐서 내 앞에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일행에게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함께 놀 대상을 바꾼 것이었다. 그렇게 한걸음 뒤에서 나는 분명하게 봤다. 한껏 신난 개들의 뒷모습과 사정없이 좌우로 흔들리는 꼬리를... 그렇게 일행에게 개들이 뛰어간 뒤 갑자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먼저 뛰어간 개 한 마리가 갑자기 다리 한쪽을 들었다.

그리고는 일행에게 최대한 몸을 붙여 가까이 밀착했다.




나는 이게 무슨 신호인지 알고 있었다. 수컷이었던 개가 일행의 왼쪽 다리에 영역표시를 한 것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개를 키웠던 나도 처음 보는 광경에 그대로 멈춰 버렸고, 그 일행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개의 반가움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시원하게 자신의 영역을 표시한 개는 다시 꼬리를 흔들며 나에게로 뛰어왔고, 나머지 한 마리는 그 충격의 현장을 냄새만 맡아보고는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머지 한 마리는 그 행동을 따라 하지 않은 것이다. 개를 키워본 사람은 아마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아...."




일행의 짧은 감탄사에는 복잡한 많은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놀자고 개를 불렀던 나를 원망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하지만 그 사건보다 지금 더 중요한 것은 우리를 계속해서 따라오는 개들을 다시 집으로 데려다주는 일이었다. 개를 유인할만한 간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그 두 친구는 굉장히 성격이 좋고 사람을 잘 따르는 개들이었다. 집으로 가자는 나의 말과 발걸음을 따라서 두 마리의 개는 그들의 집을 향해 경쾌하게 잘 따라왔다. 집 앞에 도착하자 세상 쿨하게 우리를 등지고 자연스럽게 다시 계곡을 넘어 개구멍을 통과해 집으로 들어가는 개들을 보면서 참고 있었던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억지로 참으려고 했지만 뒤에서 잔뜩 울상을 찌푸린 채 있는 일행을 보고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개가 사람에게 붕가붕가와 같은 행동을 하는 여러 봤지만 영역표시를 하는 건 정말 처음 보는 일이었다. 나는 궁금한 마음에 휴대폰을 꺼내 이것이 과연 무슨 행동을 의미하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여러 설명이 있었지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것은 일종의 '찜'의 행동이었다. 사람이 마음에 들어서 찜을 하기 위해 영역표시를 하는 개들이 있다고 한다. 첫 만남에 그 친구는 첫인상 선택에서 한 마리의 개에게 선택을 받게 된 것이다.




생소한 사건이었지만 다행히 좋은 의미였기 때문에 나는 충격에 빠진 일행을 다독여 줄 수 있었다. 그렇게 휴양림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행동은 개들의 발차기로 흙투성이가 옷을 재정비하고, 반가움의 흔적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일이었다. 별다른 사건이 없었던 나는 비교적 빠르게 정비를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나 다음에 정비를 위해 들어간 일행은 한동안 화장실에서 차마 나오지 못했다.




나는 개를 좋아한다. 내가 씻든 아니든, 내가 어떤 옷을 입고 있든, 내가 어떤 사람이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반겨주니까. 휴양림에서 아침 일찍 후줄근한 모습으로 산책을 하던 나와 일행을 보고 먼저 꼬리를 흔들어준 것. 그리고 나의 나지막한 쭈쭈쭈쭈 소리에도 잔뜩 귀 기울여 들어주고 반갑다고 먼저 달려와준 것. 그것은 모두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의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어느 순간 나이를 한 두 살 먹어가면서 누군가를 볼 때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조건을 평가하려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요즘 드는 생각은 내가 다른 누군가를 평가할 자격이 있을까? 라는 것이다. 사람은 그 존재 자체로 자신만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 가치는 그 어떤 누구라도 감히 판단할 수 없다. 오로지 본인만이 자신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나도 가끔은 개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나의 잣대로 타인을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의 가치를 바라보는

개의 시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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