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메리 에이어스 <수치 어린 눈>)
5월 인사이드맘 심리북클럽 주제는 "수치심"이다. 우리가 수치심을 따로 공부하는 이유는 수치심은 좀 특별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수치심은 여러 감정 중 하나이지만 다른 감정들과 층위를 달리한다. 많은 학자들은 수치심이 우리 "존재"에 관련된 감정이라 말한다. 수치심과 대비되는 감정으로 죄책감이 자주 논의되는데, 죄책감은 우리 "행위"에 대한 감정이지만 수치심은 "존재"와 연결되기 때문에 더 심각하고 만성적인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메리 에이어스 <수치 어린 눈>은 수치심과 눈 eyes을 연결하고 있다. 수치를 느끼는 사람은 누군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그 느낌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게 일어난다. 그 눈은 외부적인 시선도 있고, 내부적인 시선도 있다. 대상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 나 자신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우리의 어린 시절 주 양육자와의 시선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어머니의 눈. 어머니가 나를 응시하는 눈은 타자와 나 자신을 향한 시선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생각해 보면 우리 아이들도 내 눈빛이나 표정을 무척 살필 때가 많다. 어린 시절의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유아가 자기가 누구인지에 대한 느낌을 발달시키기 위해서 부모는 유아의 나르시스틱한 요구를 수용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정상적인 자기애적 욕구가 짓밟힌다면 그 욕구는 무의식 속에 차단된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사소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는 순간, 무의식 속에 억압되었던 자기애적 욕구가 고개를 들면서 비판이나 거절을 당해야 하는 순간 견딜 수 없는 수치심이 몰려든다.
"부모의 눈에서 느낀 거절과 비난의 느낌은
수치를 불러일으키는 최초의 내적 눈을 만들어낸다.
이 눈은 실패와 부적절감으로 가득한
파편화되고 고갈된 자기를 응시한다"
-메리 에이어스, <수치 어린 눈>-
딸이 6살 때쯤인가, 편식이 심한 딸을 엄하게 혼낸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왠지 모르게 딸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게 되었다. 그때 난 딸의 눈에서 누군가를 발견했다. 그건 나였다. 딸의 동공에 또렷이 비치는 나. 딸아이를 혼내는 내 모습이 딸아이 눈에 비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자각한 순간 이상하게 화가 누그러들었다. 약간의 수치심과 함께 딸아이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딸의 눈에 나는 그동안 어떻게 비치고 있었을까를 생각하니 아득해졌다. 딸의 눈에 난 어떻게 비치고 있었을까. 나는 딸에게 어떤 눈길을 보내왔던 걸까. 그런 생각들을 하는 것만으로 성난 감정은 이내 잠잠해졌다.
상담을 오랫동안 해온 교수님이 그러셨다. 어떤 내담자는 상담자의 응시만 받아도 눈물을 흘린다고. 존재를 바라보는 그런 응시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며, 상담자의 따듯한 눈빛 속에서 내담자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간다고 설명하셨다. 그때 그 말이 오래도록 남은 이유를 이제야 또렷이 깨닫게 된다. 어떤 응시를 받았는지에 따라 사람은 자신의 비존재를 느끼기도, 선명한 자기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동안 나는 어떤 눈빛을 보냈을까.
그리고 난 어떤 눈빛을 받아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