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우울이 찾아올 때

(feat. 금이 간 화분)

by 지음


현대인의 대표적 정신 질환은 우울증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코로나 블루라는 이름이 탄생할 정도로 우울증은 이제 만연해졌다. 온종일 돌밥돌밥 해야 하는 엄마들,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면서 아이들을 제대로 케어하기 어려운 워킹맘들, 우리는 모두 힘든 시기를 살아내고 있다.


이소진,김은석,and 유성경. "워킹맘의 일-가정 갈등과 우울의 관계에서 마음 챙김의 매개효과." 한국심리학회지 여성

워킹맘들은 일과 가정에서 모두 잘 해내고 싶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며 무력감과 죄책감을 자주 느낀다. 어린아이들과 함께 있어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 자녀교육에 소홀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직장에서 민폐를 끼치는 존재가 되는 것 같은 수치심. 남편의 지원과 이해, 든든한 조력자가 없다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갈되기 쉽다.


아픈 줄도 모르고 오늘도 일과 가정에서 고군분투하는 워킹맘, 어느 날 그녀에게 우울이 찾아왔다.





출처: unsplash


우리가 보통 말하는 '우울증'은 미국 정신건강의학회가 정한 DSM-5 (정신건강 진단 표준 기준으로 사용됨)에서는 '주요 우울 장애'라고 한다. '주요 우울 장애'로 진단받기 위해서는 다음의 요건을 만족해야 하는데, 거의 매일 우울하고, 모든 일상 활동에 흥미나 즐거움이 떨어지고, 부적절한 죄책감을 느끼는 등의 부정적인 정서가 2주 이상 연속되어야 한다(우울증의 시간적 판단 기준이 딱 "2주"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http://www.snuh.org/)


워킹맘이 우울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특별히 한국 워킹맘이 다른 나라의 워킹맘보다 우울 수준이 심각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워킹맘의 우울에 대해 연구한 논문들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사회문화적으로 부여되는 젠더 역할" 때문이다. 한국 워킹맘은 일과 가정 중 가정을 더 중시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사회 문화적 분위기와 압력 속에서 살아간다.


이소진,김은석,and 유성경. "워킹맘의 일-가정 갈등과 우울의 관계에서 마음 챙김의 매개효과." 한국심리학회지 여성

일과 가정을 병행하다 보면 시간적,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구멍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당연하고 마땅한 구멍이다. 그럼에도 미디어에서는, 일과 가정 모두 세련되게 척척해내는 슈퍼우먼 워킹맘들이 나온다. 한 두명이 아니다. 잘 모르지만 건너 건너 아는 워킹맘은 매일 아침도 차려주고, 애들도 반듯하게 잘 키웠고, 그 와중에 승진도 했다 카더라는 소문은 자꾸 들려온다. 전업맘의 애들은 예체능도 잘하고 공부도 잘한다던데, 엄마가 라이딩하는 좋은 학원에 다녀서 그런 건지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이런 사회문화적 압력 속에서 살아가는 워킹맘은 자신의 구멍을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다. 이상적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현실의 자신을 채근하다가 그녀는 결국 우울감에 휩싸인다.







우울이 찾아올 때, 어째야 할까.


우울하면 시야가 좁아진 채로 다른 대안을 생각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대안이 실현 불가능해서가 아니다. 그 대안을 생각해 내지 못할 정도로 우울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이 시야가 좁아진 상태임을, 우울이라는 터널 안에 갇힌 상태임을 의식하지 못할 때도 있다. 자신의 상태를 의식할 수 없으니 스스로 회복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소진,김은석,and 유성경. "워킹맘의 일-가정 갈등과 우울의 관계에서 마음 챙김의 매개효과." 한국심리학회지 여성

논문에서는 해결 방안의 하나로서 '마음챙김'을 제안하고 있다. 마음챙김은 여러 가지로 정의될 수 있지만 엘렌 렝어는 “마음챙김은 바로 앞에 있는데도 몰랐던 모든 경이로운 것들을 알아차리며 현재를 충실히 사는” 심리적 원리라고 말했다. 우울할 때 그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우울한 나 자신의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고 관찰할 수 있다면, 마음챙김을 통해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문제는 우울하면 마음챙김의 상태가 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마음챙김을 하라는 명상 유튜브를 틀어놓고 하더라도 마음챙김이 되지 않는다. 우울할 땐 무기력증을 수반하고 즐거움, 흥미 같은 긍정적 전서가 현저히 저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울할 땐,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의 우울, 우울에 이르게 된 내 상황, 일과 가정을 병행한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고된 일인지 엉엉 울며 털어놓을 수 있는, 안전한 누군가가 필요하다.




작년 하반기, 난 오래 우울했다. 겨우 겨우 일상을 이어나가는 정도였다. 글도 쓰지 않았고, 독서도 하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아서 내가 안 만났는데도 지독하게 외로웠다. 상담을 2년간 배우고 해왔음에도 우울에 빠진 내가 나를 건질 수가 없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친구를 먼저 떠나보낸 슬픔을 겪고 있는 남편은 그땐 도움이 되어줄 수 없었다. 친구들에게 속을 털어놔도 깊은 속은 털어놔지지 않았다. 나 자신도 모르겠는, 이 답답한 마음을 풀어낼 누군가를 찾고 싶었다.


예전부터 좋아하던 교수님과 연락이 닿아 교육분석을 받기 시작했다. 2~3개월은 그저 내 우울한 상태 그대로 상담에 나갔다. 말도 잘 안 나오고 매 회기 똑같은 얘기를 하는 것 같은 나 자신이 한심했다. 머리로는 일과 가정 모두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가슴으로는 내가 그럴 수 없는 사람임을 인정하는 게 힘들었다.


답답한 시간들이 지났지만 교수님은 그때마다 우울한 나를 있는 그대로 견뎌 주시고 공감해 주셨다. 섣부른 위로가 아니었다. 깊은, 공감이었다. 그 공감이 쌓여 메마른 내 마음을 적시면서 누군가의 말이 심어지는 밭으로 일구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그때해 주신 이야기가 내 마음에 싹을 틔웠다.


"선생님, 이 세상에 금이 가지 않은 화분은 하나도 없어요. 단 하나도 없어요."


출처: unsplash

금이 가지 않은 화분은 하나도 없다. 이 말이 왜 이렇게 내 마음에 남았을까. 아무래도 난 금이 가지 않은 화분이 분명히 있을 거라 믿고 있었기 때문일 거다. 나만 금이 간 거 같아서 그 균열 사이로 내 인생이 새어 나가고 있는 것 같아 불안했기 때문에... 하지만 금이 가지 않은 화분은 없다. 그리고 화분에 난 금은 화분에 독특성을 부여한다. 금 때문에 유니크한 화분이 될 수 있는데 나는 그저 금이 없는 완벽한 화분만을 바라고 아무것도 새어 나가질 않기만을 바랐다.


여전히 내 인생에는 금이 많다. 내 일도, 가정도. 좀 더 가까이 보면 스크래치투성이다. 그럼에도 그 스크래치들이 모여 나만의 인생 화분을 만들어 낸다. 그 화분에도 흙을 담고 씨앗을 심고 싹을 틔워낼 수 있다. 그러니 금이 좀 간 화분이면 어떠랴. 생명을 키워낼 수 있으면 화분은 그걸로 족하다. 그걸로 충분하다.





우울할 때 기억하기.

금이 가지 않은 화분은 하나도 없다. 단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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