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은 어떤 감정에 자주 사로잡힐까. 나를 포함한 주변의 워킹맘들, 그리고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듯 많은 워킹맘들은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을 가장 많이 느낀다. 일하느라 애착이 불안정해지거나 아이에게 소홀해져 자녀에게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고, 실제로 자녀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불안은 우울로 심화되기도 한다. 자연스레 일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되고 깔때기 이론처럼 결국은 퇴사나 휴직을 떠올리는 악순환에 들어간다.
출처: 유성경(Sung-Kyung Yoo) 외 4인 "워킹맘의 일 가정 양립 촉진을 위한 집단상담 프로그램 개발 및 효과성 검증." 한국심리학회지 여성 23.3 (2018): 37
죄책감의 사전적 정의는 "저지른 잘못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마음"이다. 묘하지만 이 '죄책감'의 사전적 정의에서 느껴지는 부정적 느낌이 별로 없다. 잘못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마음은 도덕적이며 올바른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워킹맘이 느끼는 죄책감도 엄마로서 느끼는 책임감의 발로이기 때문에 정당한 감정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지나친 죄책감이라면 신경증으로 발전할 수 있겠지만, 적절한 죄책감은 오히려 좋은 엄마로서의 자질을 가진 워킹맘들이 느끼는 당연한 감정이 아닐까.
브레네 브라운은 <수치심 권하는 사회>에서 수치심과 죄책감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죄책감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긍정적인 동기인 반면 수치심은 더 나쁜 행동을 부추기거나 아예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 수도 있다."
브레네 브라운 <수치심 권하는 사회>
죄책감과 수치심은 모두 자기평가(self-evaluation)에 대한 감정이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이 수치심과 죄책감의 차이를 구분 지어 설명하는데, 엄마 역할에 적용해 보면 '나는 나쁜 엄마다(수치심)', '나는 엄마로서 나쁜 행동을 했다'(죄책감)으로 구별할 수 있다. 즉 수치심은 '존재'의 문제지만 죄책감은 '행동'의 문제다. 더 나아가서 "수치심을 느끼는 성향은 분노조절 장애, 우울증, 중독 등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수치심 경향이 있는 사람들은 수치심을 버리고 보다 더 건강한 감정적 반응, 즉 죄책감을 느끼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라고 역설하고 있다(출처: 브레네 브라운 <수치심 권하는 사회>).
출처: 브레네 브라운 <수치심 권하는 사회>
그렇다면 워킹맘들이 자주 느끼는 감정이라고 대답한 '죄책감'은 실제로 '수치심'과 진짜 '죄책감'이 혼재되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만일 자신이 '죄책감'이라고 부르는 감정에 자주 사로잡힌다면 그것이 '나는 나쁜 엄마'라는 수치심인지, '나는 엄마로서 나쁜 행동을 했다'라는 죄책감인지 구별할 필요가 있다. 죄책감이 쌓여 불안, 우울로 심화되고 있다면 그 죄책감은 실제로는 '수치심'일 가능성이 높다.
브레네 브라운은 <수치심 권하는 사회>에서 완벽한 워킹맘이 되고 싶었던 자신의 꿈이 무참히 짓밟혔던 여러 에피소드를 언급한다. 아이 학교 행사에서 준비물을 완벽히 까먹고 다른 학부모가 가져온 준비물로 대체했던 일, 모유 수유를 하며 빡센 연구를 진행할 때 모유 수유 쿠션을 허리에 차고 허둥지둥하는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해괴했는지, 우아하게 노트북으로 일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워킹맘 광고가 얼마나 현실과 괴리된 것인지 등등.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15301298
브레네 브라운의 에피소드들을 들으며 나는 큰 위로를 받았다. 한참 사무소가 바빴을 때 아이가 듣고 싶어 하는 방과 후 신청을 놓치기 일쑤였다. 알람을 2개씩이라 걸어 놨지만 일에 집중하고 있으면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였다. 정보에도 무지했던 나는 야무진 엄마들이 남편, 아이들까지 동원해 가장 정확한 "네이버 시계"로 카운트다운을 하며 광클릭을 한다는 사실을 큰 아이 5학년 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뿐만 이랴... 가장 수치스러운 기억은 큰 아이 어린이집에 식판을 씻지도 않고 보낸 적이었다. 이런 일에는 그리 민감하지 않은 큰 아이인데도 그때 어린이집에 다녀와서는 "식판이 안 씻겨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엄마~" 하고 말해 주었다. 지금도 그 일들을 글로 옮겨 적고 있는 것뿐인데도 가슴의 경미한 두근거림이 느껴진다.
아이들이 어릴 때 사무소를 개업했고 나름의 균형을 유지한다고 생각하며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내 시간을 내어준다고 믿었는데,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내 노력은 허사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무엇이든 잘해야 성에 찼던 내가 일과 가정에서 무능력감이라는 쓴맛을 억지로 삼켜야 했다. 나보다 더 일에 집중하는 워킹맘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대단한 모성의 소유자지만 커리어를 쌓는 속도는 더뎠고, 나보다 가정에 집중하는 전업맘 친구들을 만나면 재택근무하며 아이를 키운다고 부러움을 받았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나는 늘 모자란 엄마인 것처럼 느껴졌다.
돌이켜 보면, 왜 그렇게 자주 수치심을 느껴야 했나 싶다. 일에서도, 가정에서도 완벽하고 싶은 나의 헛된 욕구가 나를 괴롭혔으리라. 완벽하지 않아도 두 가지 일을 그 정도 해내는 것만으로도 정말 충분했는데 말이다.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충분한 엄마'가 더 좋은 엄마인데 나는 어디에서도 좌절을 맛보고 싶지 않은 퇴행적 욕구에 고착되었던 것 같다.
출처: iStock
대학원에서 수업을 들으며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 있다. "건강해지는 게 뭔지 알아요? 반띵할 줄 알면 돼요. 모든 일에 내 탓만 있지 않고, 네 탓만 있지 않지요. 모든 일에서 내 탓 반, 네 탓 반을 생각할 수 있으면 건강해지는 거예요." 물론 정확한 반반이 아닌 경우도 있을 거다. 과실 비율이 다를 때도 있다. 하지만 자녀의 문제 100%가 엄마 탓은 아니다. 그렇다고 모두 자녀의 탓만도 아니다. 그러니 워킹맘으로서 수치심을 느끼는 나를, 조금은 더 연민하고 공감해 주면 어떨까. 나에게 공감이 잘 안될 때는 진심으로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좋다. 수치심의 묘약은 공감이기 때문이다.
작년에 일을 줄이면서 가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일을 할 때 못 챙겨주었던 것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챙겨주는 나를 만났다. 맛있는 요리도 많이 하고, 아이들 방 청소도 함께 하고, 아이들과 페인트칠도 같이 해 보고, 도서관도 연체하지 않고 책을 함께 반납하고...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살림도 꽤나 잘하잖아?!' ㅎㅎㅎㅎㅎ. 약간의 자뻑 모드로 돌아가면서 '일을 했으니까 이 많은 것들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게 당연한 거였어. 내가 일과 가정에서 못 해내는 게 아니었어. 나도 하면 할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 그때의 난 그저 못하는 사람으로 생각했구나'를 깨달았다.
일과 가정이 양립한다는 건, 일과 가정 모두 완벽하게 꾸려 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일과 가정을 양립하느라 생길 수밖에 없는 구멍들을 유연하게 바라보는 능력을 키우는 과정이 아닐까. 가끔은 방과 후 신청을 놓치더라도 예상외로 좋은 수업을 만나기도 했다. 바쁜 시기엔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 주어도 아이들은 더 좋아한다. 도서 반납이 연체되니 같은 책을 깊이 읽으니 그 분야는 도사가 되었다.
그러니 당신과 나는,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