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3년이 뭐길래

(feat. 획득된 안정애착)

by 지음


첫아이 태교를 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 3년이라는 시간은 애착의 결정적 시기라는 걸.


애착, 대상관계 이론 등에서는 생애 초기의 경험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만나는 대상, 엄마와의 첫 경험이 사람의 무의식을 그리는 밑그림이기 되기 때문이다.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였던 마거릿 말러는 여러 엄마-아이 그룹들을 관찰하고 연구한 결과 아이가 태어난 후 3년간 엄마와의 관계에서 '분리-개별화' 과정이 진행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분리-개별화' 과정은 분화(부화), 연습기, 재접근기, 대상 항상성의 네 단계로 이뤄진다. 대상항상성까지 잘 발달된 아이들은 엄마와 연결감을 유지하면서도 개별적인 존재로 성장해 나간다. 이 단계까지 잘 발달된 아이들은 안정애착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이론가들마다 말하는 기간은 약간씩 다름).


마거릿 말러_분리개별화 이론, 출처: <청소년상담사 한 권으로 끝내기>


심리학 이론을 굳이 끌어다 쓰지 않고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해 보더라도 사람의 생애 초기를 어떻게 보내는지는 무척 중요하다는데 동의가 될 것이다. 문제는 현실과 이론의 괴리가 발생할 때 나타난다. 아무리 좋은 이론이라고 하더라도 나의 현실에는 적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다면? 아이가 한참 엄마를 찾을 때이지만 엄마가 일을 지속해야 하거나 일을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엄마의 인생과 아이 인생의 타이밍이 그때마다 딱딱 맞아떨어진다면 좋겠지만 그건 말처럼 쉽지 않다.


그렇다면 아이에게 풍부한 정서와 관계의 금수저가 될 수 있는 생애 초기 안정 애착을 주지 못한 워킹맘은 어째야 할까. 그놈의 3년 동안 안정애착을 형성해 주지 못한 워킹맘은, 아니 최소 1년이라도 함께 있어주지 못한 워킹맘은 오랜 기간 죄인의 심정으로 지내야 하는 걸까. 최근에는 육아휴직, 유연근무제 등의 다양한 일-가정 양립 제도들이 정착되면서 워킹맘들이 아이들과 생애 초기 3년을 함께 있어줄 수 있는 가능성은 이전보다 높아졌다. 또한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도 보편화되면서 엄마들은 아이들과 생애 초기 3년을 물리적으로 함께 있어주기가 수월해졌다.


그럼에도 3년이라는 기간은 많은 엄마들에게 여전한 부담이다. 그때같이 있어주지 못한 엄마들은 아이가 자라면서 정서적 또는 관계적인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미안함죄책감을 느낀다. 아이가 힘들어할 때마다 '내가 아기일 때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그런가?', '내가 일하고 돌아와서 피곤한 채로 제대로 놀아주지 못해서 그런가?'... 청소년기까지 아이의 문제가 지속된다면 엄마의 미안함과 죄책감은 우울감이나 무력감으로 심화되기도 한다.


출처: unsplash/ 검색어: frustrated


아이의 생애 초기 3년은 중요하다. 다른 시간보다 엄마의 존재를 가장 필요로 하고 이때 형성된 안정애착, 좋은 대상관계의 경험은 아이의 평생을 정서적, 관계적인 부자로 살아가게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워킹맘들이 안정애착을 생애 초기에 선물해 주지 못했다고 해서 죄인의 심정으로 살아갈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안정애착은 생애 초기 3년이 지나고 나서도 얼마든지 복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착 이론의 대가인 포나기(Fonagy)와 메리 메인(Mary Main)은 수많은 엄마와 아이 그룹을 관찰하고 연구했다. 그러면서 애착 유형을 발견했고 애착 이론은 더욱 정교화되었다. 그러다가 그들은 생애 초기에 안정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그룹 중에서도 차후에 안정애착을 획득한 그룹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생애 초기에 안정 애착을 형성하지 못했지만 차후에 사후적으로 형성된 애착을 '획득된 안정 (earned secure) 애착'이라 설명했다. '획득된 안정 애착'을 형성한 엄마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대부분 '성찰 능력' 또는 '메타인지'가 뛰어나다는 점이었다. 엄마들이 자신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가능하다면 불안정 애착 유형인 아이도 안정 애착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성찰 능력'이나 '메타인지'는 타고난 부분도 있겠지만 심리상담, 교육, 훈련, 독서 등을 통해 향상시킬 수 있다. 아이에게 애착 문제가 있다면 대부분 엄마 자신에게도 애착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불안정 애착으로 인해 아이에게 정서적인 불안정, 사회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다면 엄마는 자신의 어린 시절 애착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부터 시작해 보는 거다. 애착 유형은 많은 경우 대물림되기 때문이다.




나는 '획득된 안정 애착' 이론에 무척이나 매료되었다. 내가 엄마와 불안정 애착(회피형)을 맺어왔기 때문에 아이들과도 어느 정도 심리적 거리를 필요로 했다. 나의 애착 유형을 깨닫기 전에는 이 정도는 워킹맘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했고, 친정 엄마와 비교하자면 나 자신은 꽤나 따뜻한 엄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리를 두는 엄마를 차갑다고 표현하는 아이들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내 애착에 문제가 있다는 걸 자각할 수 있었다.


심리상담을 받고 심리학을 공부하며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정서적 반응을 충분히 해주지 못했음을 점점 깨달았다. 상담과 심리학 덕분에 성찰 능력을 꾸준히 높여가고 있다. 아직도 나의 애착 유형대로 행동할 때가 많지만 이제는 그런 행동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좀 더 빨리 깨닫는다는 점에서 이전과 달라졌다. 그리고 먼저 아이에게 다가가서 균열이 난 관계를 복구하려 노력한다. 몇 년 간의 노력으로 아이들은 이제 엄마의 노력을 알아준다. 엄마가 원래 그런 스타일이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주려 무척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아이들은 진심으로 알아주었다(제 애착 복구의 노력 포스팅이 여기 있네요. ㅎㅎ).


"부모와의 관계에서 애착 손상을 회복한 경험이 없는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금이 간 관계를 회복시키기가 어렵다. 안정적 애착이란 끝없는 '단절-회복' 의 경험으로 만들어지는 동아줄이지, 부모의 초인적 인내와 정성으로 한 번도 금 가지 않고 빚어낸 도자기가 아니다."

출처: 문요한 <관계를 읽는 시간>


출처: istock


내가 일하느라 아이에게 안정 애착을 주지 못해 아이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는 워킹맘이라면, 지금도 애착을 복구할 수 있다. 아이가 초등학생이든, 중학생이든...대학생이라도 상관없다. 지금 시작하면 된다. 어색하더라도 아이에게 진심 어린 칭찬을 건네고, 민망하더라도 내가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화냈던 것을 사과하고, 너무 바빠서 함께 시간을 내주지 못했다면 뻘쭘해도 먼저 데이트 신청도 해보고... 그렇게 조금씩 복구하다 보면 아이들 마음속에 엄마는 내면화된 안전기지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아이들이 인생을 살아가다 힘든 일을 만나도 내면화된 안전기지에서 다시 일어날 힘을 얻을 수 있다.


※ '애착'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다음 포스팅도 함께 읽어 보세요.

https://brunch.co.kr/@abigailjoz8/9

https://brunch.co.kr/@abigailjoz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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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abigailjoz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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