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나를 따라다니는 말이 있다. 슈퍼우먼. 나는 언제부터 슈퍼우먼이 되었단 말인가? 슈퍼우먼이라는 말을 듣는 상황은 대체로 이랬다. 일에서도 뭔가 성과를 내고 있는데 아이들 교육이나 살림도 뭔가 잘되어 가는 듯한 느낌을 주면 "와, 선생님은 슈퍼우먼이네요!"라는 말이 되돌아왔다. 기분 좋으라는 칭찬 같지만 그 말을 들을 때 내 기분은 어딘가 복잡했다.
지난 주말 가족들과 집에서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정주행했다. 히어로물을 좋아하지 않지만 딸아이가 궁금해하여 보기 시작했다. 1탄부터 보니 생각보다 꿀잼. 그 중 인상적이었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피터 파커(스파이더맨/토비 맥과이어)를 어렸을 때부터 키워준 삼촌은 학교에서 친구와 큰 싸움에 휘말린 파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넨다.
큰 힘에는 반드시 큰 책임이 따른다
출처: 영화 <스파이더맨> 캡처
맞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엄마가 되면 가정에서 큰 힘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가정에서의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그런데 여기에 워킹맘들은 일에서의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사람들이 칭찬으로 건넨 '슈퍼우먼'이라는 말에서 난 아마도 이중 책임, 다중 역할을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무게감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그러니 기분이 묘할 수밖에.
소위 슈퍼우먼이라 불리는 워킹맘들은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경우가 많다. 완벽주의는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이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며, 성취와 생산성을 중심으로 자신을 평가하려는 성향"을 의미한다(Burns, 1980). 완벽주의라도 다 똑같은 완벽주의는 아니기 때문에 삶에 긍정적 기능을 하는 지 여부에 따라 적응적 완벽주의와 부적응적 완벽주의로 구분할 수 있다.
적응적 완벽주의는 개인의 삶에서 성공의 자원이 된다. 꿈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 기준이 높다. 적응적 완벽주의는 높은 기준을 달성하기 위한 자신의 노력과 성취에 만족감을 느낀다. 어제의 나와 비교하여 오늘 성장했다면 그런 나를 수용할 수 있다. 반면, 부적응적 완벽주의는 타인이 비교 대상이 된다. 타인에게 인정을 받고 비난을 피하기 위해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대를 가지고 완벽을 추구하지만, 자신의 실수와 실패를 쉽게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자신에게 내적으로 신랄한 비판을 하는 경향이 있어 엄마 역할에서도 죄책감과 우울감을 자주 느낀다.
또 완벽주의 성향은 성 역할에 대한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죄책감을 더 많이 느끼는 영역이 다르다.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부모들 중에서도 성역할에서 전통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가정→일 갈등에서 더 많은 죄책감을 느끼고, 성 평등주의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일→가정에서 더 많은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양육행동에 있어서도, 적응적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부모는 자녀에게 수용적이나, 부적응적인 완벽주의는 비판적이거나 과도하게 허용하기 쉽다.
또한, 적응적 완벽주의 성향의 부모는 합리적 지도, 애정적, 적극적 참여의 특성을 가지나, 부적응적 완벽주의 성향의 부모는 실수 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녀들을 권위주의적으로 통제하거나 거부적 양육 태도를 보이기 쉽다.
슈퍼우먼 워킹맘들의 부적응적 완벽주의는 일과 가정, 자신에게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럼에도 완벽주의적 성향으로 인해 성공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일과 가정에서 완벽주의적 성향을 내려놓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어쩌면 변화의 동기조차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일과 가정에서 내가 슈퍼우먼으로 완벽을 추구하며 살아왔기에 이 정도 성과를 이루었고 애들도 잘 키웠다고 믿는다면 굳이 변화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부모의 완벽주의는 대부분의 자녀들을 숨 막히게 만든다. 자녀들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도록 통제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사실은 부모의 완벽주의는 자녀들에게도 전수된다는 점이다.
일도 가정에서도 만점 엄마라는 말이니 칭찬으로 들으면 되지 굳이 이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자신의 완벽주의 때문에 자신과 가족들, 주변 동료들 모두 행복해한다면 아마 그 완벽주의는 적응적 완벽주의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완벽주의적 성향 때문에 자신과 가족들, 동료들이 힘들어한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이다.
금이 가지 않은 화분을 원했던 나는 아이에게도 비슷한 기준을 어느새 요구했다. 대놓고 요구하지 않아도 암묵적으로 요구하며 통제했다. 무섭고 질긴 대물림이었다. 엄마의 과한 기대가 그렇게도 무거웠으면서 나는 자녀에게 또 그 무거운 짐을 부과하고 있었다. 일에서도 가정에서도 무거운 짐을 들고 경계를 횡단하는 나는 40세가 되기도 전에 지쳐 버렸다. 엄마는 나에게 좋은 것만 주려 했다. 본인의 인생도 자식들을 위해 온전히 희생하고 헌신하셨다. 그럼에도 희생과 헌신의 또 다른 양면은 통제라는 걸 상담을 받고 심리학을 공부하며 깨달았다.
나는 꿈이 있는 나를 사랑한다. 언제까지나 꿈을 좇으며 살아가고 싶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고군분투한 내가 때로 넘어지고 실패하고 실수했을 때 나는 나 자신을 아껴주지 못했다. 잔인할 정도로 나 자신을 몰아대고 채근했다. 무엇을 위한 채찍질이었을까. 내 욕구였을까 엄마의 욕구였을까. 피아의 욕구가 구분되기 시작할 때쯤부터 조금씩 더 자유로워졌다. 일에서 가정에서 구멍이 생기고 틈이 생겨도, '또 메워가면 되지', '구멍 좀 있으면 어떠냐' 여유를 부릴 줄도 안다. 완벽한 엄마, 슈퍼우먼 엄마 노릇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공부하고 일하느라 아이들 간식을 태워 먹어도,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느라 고객의 컴플레인이 접수되더라도, 이제는 예전보다 긴장하지 않는다.
싱어게인 30호 이승윤은 존경하는 이재철 목사님의 아들이다. 한참 이승윤이 이슈가 되던 그 해 목사님과 한 일간지에서 인터뷰한 내용이 떠올랐다. 너무 인상적이어서 신문에서 오려 놓았고 지금까지 우리 식탁 테이블 옆 보드에 붙어 있다.
가족 비전보드 판에 함께 걸려 있는 이재철 목사님 인터뷰
네 아들을 둔 목사님의 교육관은 "바른 마음으로,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해서, 바른길을 가자"라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4가지 각론을 다음과 같이 덧붙이셨다.
"첫째 자립한다. 설령 실수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래야 나중에 남을 돕는 사람이 되지, 자립 못 하면 평생 기생하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모든 걸 스스로 결정하게 했습니다.
둘째는 예의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최우선은 예의다. 너희도 예의를 갖추지 않는 사람은 싫지 않으냐.
셋째는 정리 정돈이다. 내가 거쳐 간 자리를 다른 사람이 치우게 해선 안 된다.
넷째는 내가 무엇을 하든 누군가를 위한 봉사 혹은 섬김이어야 한다"
-중앙일보 이재철 목사님 인터뷰 중에서-
그리고 이어진 기자의 질문과 대답이 압권이었다.
기자: 첫째 각론이 '자립'인데 그렇게 자란 아이는 무엇을 갖게 됩니까.
이재철 목사님: " '자기만의 영혼'입니다."
자기만의 영혼. 자기만의 영혼!
목사님의 아들 이승윤이나 이승국을 보면 그들은 진정 자기만의 영혼을 소유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보기만 해도 미소가 번진다. 자유로운 영혼을 보는 즐거움은 그런 것이다.
일과 가정에서 완벽하려 애쓰는 건 삶의 훌륭한 태도이다. 누구도 그 태도에 딴지를 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통제 불가다. 가장 확실한 사실은 우리 인생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완벽하지 않은 나 자신, 완벽하지 않은 일과 가정을 좀 더 수용해 주면 어떨까.
아이들에게 슈퍼우먼 엄마는 필요 없다. 그들은 자기만의 영혼을 위해, 원 위에 세워진 길을 걸을 것이다. 그러니 나도 이제 어쭙잖은 슈퍼우먼 옷을 집어던지련다. 나만의 영혼을 소유하기 위해, 오늘도 나만의 길로 한 걸음 내딛는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만의 길을 걷다보면 원 위에서 나와 아이들은 한번씩 만나겠지. 서로를 응원하면 다시 헤어지고 만나고. 만나고 헤어지고. 둥글게 둥글게, 그렇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