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이 워라밸을 위해 가정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건 무엇일까. KB금융지주가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한국워킹맘보고서>에서는 워킹맘들이 워라밸 실현을 위해 가정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요건은 '배우자의 지원과 이해'라고 보고했다. 무려 90.8%이다. 워킹맘들에게는 육아도우미, 가사도우미의 필요보다 '배우자의 지원과 이해'를 더 원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출처: KB금융지주 2019 한국워킹맘보고서>
배우자의 역할은 하기 논문에서도 강조된다. 워킹맘이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위해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경계 지킴이(Border-keepers)'로서의 '배우자'라는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출처: 일-가정 양립 유형화 및 일-가정 양립 촉진적 자기의 가정 →일 양립에 대하 자기 효과와 상대방 효과 (2018,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심리학과, 김은석)
우리의 배우자는 안녕한가. 그가 안녕할 때 나도 안녕한가. 아니면 나는 안녕하지 못한가.
한국의 많은 워킹맘들은 2022년에도 가사와 육아 일을 나의 일로 인식하지 않는 남편들 때문에 안녕하지 못한 것 같다. 2021년 LG홈인은 워킹맘들을 대상으로 <워킹맘 마이크>라는 이벤트를 실시하였다. <워킹맘 마이크>에는 5000여 명의 워킹맘들이 집안일, 자녀육아/교육, 배우자, 직장 생활에 대한 고민을 익명으로 게시하였다.
배우자에 대한 속 깊은 고민들을 엿보니 여기가 2022년의 대한민국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아직도 많은 워킹맘들이 가사, 육아, 직장 일까지 병행하며 본의 아니게 슈퍼우먼이 되어야 하는 현실을 호소했다. 익명의 게시판에 남편에 대한 불평과 분노를 잠깐 쏟아 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말하는 워킹맘들도 꽤 많았다. 워킹맘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건 돈도 아니고, 가사/육아 도우미도 아닌 '남편의 지원과 이해'이지만 정작 많은 남편들은 아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 남편들의 경우 미국 남편들보다 그 정도가 심한 편인데 이는 통계적으로도 확인 가능하다.
출처: 일-가정 양립 유형화 및 일-가정 양립 촉진적 자기의 가정 →일 양립에 대하 자기 효과와 상대방 효과 (2018,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심리학과, 김은석)
"일과 가정의 양립"은 워킹맘과 워킹대디 각자의 과제인 동시에 부부 공동의 과제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누구 한 사람만의 과제가 아니다. 성 역할에 대한 고정 관념이 이전 보다야 훨씬 나아졌겠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남았다.
출처: 일-가정 양립 유형화 및 일-가정 양립 촉진적 자기의 가정 →일 양립에 대하 자기 효과와 상대방 효과 (2018,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심리학과, 김은석)
나의 남편은 결혼 이후에도 남의 편이 아닌 내 편으로 함께해 주었다. 나와 아이들의 선택을 늘 지지해 주고 존중해 주는, 나무랄 데 별로 없는 좋은 남편이다. 그럼에도 때로는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그를 사로잡을(?) 때가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이 어리고 일을 한참 해야 했던 나의 30대에는 친정 엄마와 일주일에 몇 번 오시는 이모님께서 살림과 육아의 상당 부분을 조력해 주셨다. 이제 아이들이 중학생,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들어가면서 친정 엄마와 이모님의 조력을 줄여도 괜찮을 것 같아 내가 많은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게 되었다. 자영업이고 재택근무이지만 여전히 매여 있어야 하는 업무 시간이 있었고, 그 사이사이 꼬박꼬박 아침 챙기고, 아이들의 온라인 수업이 끝나면 점심 챙기고, 때로는 학원 라이드를 하고, 아이들 학원 보내면 일하고 공부하고 저녁, 야식 준비를 함께 해내야 했다.
남편은 바쁜 사업으로 평일은 거의 11시를 넘는다. 그러니 최소 주말에는 가사와 육아를 안분해야 하지만 몸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눈치였다. 그 꼴(?)을 가만히 보아주는 나는 아니기에 "여보~ 나 설거지 좀 도와줘~~", "여보~~ 건조기에서 빨래 꺼내는 거 도와줘~", "여보~ 쓰레기 좀 버려줘~"라는 나의 주말 언어가 되어 버렸다. 남편은 내가 "여보~"라고 부를 때마다 작은 한숨과 함께 마지못해 침대에서 일어나곤 한다. 그럼 왠지 미안하기도 하고 매번 남편을 시켜 먹는 내가 못된 아내가 되는 것 같은 복잡한 기분에 휩싸였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나는 왜 남편에게 이 일들을 "도와달라"라고 말하고 있는 거지?'라는 엄청난 자각이 일어났다. 그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그때부터는 언어를 바꿨다. "여보~설거지해야 해~", "여보~ 음식물 쓰레기 버려야 해." "당신이 할 차례야~". 남편은 처음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실소를 자주 보였지만 평일에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아이들을 케어하는지 깨닫게 되면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아직은 내가"구체적인" 지령을 내려야 움직이지만, 그럼에도 이 작은 변화가 나에게 큰 힘을 주고 있다. 주변에서 "알아서" 아침도 대령해 주고 "알아서" 분리수거도 해주고 "알아서" 설거지도 해주는 2022년에 최적화된 남편들이 몇몇 있다. 자기주도학습이 되는 그들을 배 아파하며 남편에게 불평만 쏟는 건 좋은 전략이 아니란 걸 몇 번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지령 수행 시 한숨 쉬며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올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잘했다고 엉덩이를 팡팡 쳐주는 게 훨씬 더 나은 전략이었다.
전업맘이었던 엄마는 아직까지도 가사를 하며 도와주지 않는 남편(우리 아빠다)을 욕하면서도 남편에게 지령을 내리지 않는다. 마트에서 무거운 걸 낑낑대고 양손에 들고 오는 엄마의 짐을, 아빠는 한 번도 알아서 들어주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엄마에게 물어봤다. "엄마, 아빠한테 하나 들라고 해. 왜 들라고 말을 못 해??". 근데 엄마의 대답이 나를 기막히게 만들었다. "아빠는 약하잖아. 너네 중학교 때 아빠 가구 한번 들어주다가 허리 삐끗해서 이런 거 못 든다.". .......... '엄마도 얼마 전에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았잖아....!!'.
논문에서도 남편이 주도성을 가지고 가사 일을 안분하는 것보다 아내가 주도성을 가지고 가사 일을 안분하고 여러 가지 역할들을 조정하는 것이 일과 가정의 양립, 일과 가정이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통계를 언급했다. 이런 통계가 씁쓸하다. 그럼에도 엄연한 현실을 수용하며 나는 오늘도 그를 부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