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은 퇴사 고민을 어느 정도로 해봤을까? 2021년과 2019년도 워킹맘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워킹맘의 90% 이상이 퇴사 고민을 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퇴사를 고민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일과 육아 병행의 어려움(45.6%)" 때문이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들이 신체적, 정신적인 소진을 호소하다가 결국 퇴사를 고민하거나 실행에 옮기는 경우들이 여전히 많다는 뜻이다. 10년 전과 비교해 볼 때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제도적 보완이 대폭 개선되었음에도, 82년생 김지영들이 아직도 이렇게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과 가정이 갈등을 일으키는 상황에서 번아웃이 오면 워킹맘은 자연스레 퇴사를 고려하게 된다. 일에 몰입하면 가정에서 육아와 가사에 문제가 생기거나, 가정에서 육아와 가사에 좀 더 신경을 쓰면 일에서 구멍이 난다. 사실 일과 가정을 양립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워킹맘들이라면 일과 가정에서 어느 정도의 구멍은 당연지사. 그렇다면 일과 가정에서 구멍이 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일을 지속하는 여성과 일을 그만두는 여성은 어떤 점에서 다를까?
대부분의 워킹맘들은 전통적인 어머니 역할과 관련된 사회적 가치와 자아성취의 가치 사이에서 갈등을 느낀다. 일과 가정의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전통적 성역할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워킹맘들은 퇴사를 고려할 확률이 높고, 다양한 조력, 경제적 가치 창출, 일에 대한 의미 부여를 통해 자아성취의 가치를 더 높게 느끼는 워킹맘들은 일을 지속할 확률이 높다. 어떤 가치가 더 우수하다, 이 시대에 더 적합한 가치인지 논할 필요는 없다. 전통적 가치와 자아 실현의 가치 모두 소중하지 않은가.
문제는 워킹맘 자신도 자신을 모를 때가 많다는 점이다. 전통적 성역할에 따른 엄마의 자리를 선택해서 과감히 퇴사를 했다면 전업맘의 자리에서 행복해야 한다. 하지만 퇴사 선택을 한 엄마들 중 적지 않은 엄마들이 그 선택을 곧 후회한다(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반대로 자아 실현의 가치가 소중하다고 생각해서 일을 지속해 나가더라도 아이들이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죄책감과 미안함에서 자유롭지 못한 워킹맘들도 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내면화된 가치를 내가 진정 원하는 가치라고 착각하고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지방 사범대학을 졸업한 친정 엄마는 중학교 선생님이었다. 그러던 중 서울에 직장이 있는 아빠를 만나 엄마는 아빠를 따라 서울로 왔고, 엄마는 퇴사했다. 지금처럼 교사의 이동이 원활하지 않았던 그 시대에는 지방에서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그 쪽에서 시작했으면 지방에서만 교사 활동이 가능했다고 한다. 그 때 엄마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고 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을까?
엄마는 나를 키우는 내내 인이 박히게 말했다. "여자도 돈을 벌어야 한다, 여자도 평생 자기만을 일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가정주부는 하면 안된다 등등". 덕분에 나는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인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가정주부로 살아서는 안된다는 막연한 비합리적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뭔가 내 안에서 몰랐던 욕구가 꿈틀거렸다.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 주고 싶은 강렬한 욕구 말이다.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욕구, 아이들과 더 예쁜 추억을 많이 쌓고 싶은 욕구,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고 싶은 욕구, 맛있는 음식을 손수 요리해서 먹이고 싶은 욕구...나는 엄마의 생각보다 전통적(?)인 여성의 욕구가 강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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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리사로서의 커리어를 짱짱하게 쌓아나가는 것보다 아이들과 어떻게 하면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를 더 많이 고민했다. 큰 아이가 예민한 기질로 태어나 더 그럴 수 밖에 없기도 했지만 내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좋아했다. 그렇다고 일을 포기하려는 생각도 가져본 적은 없다. 다만 자발적으로 동료들이나 직원들과의 찐한 네트워크는 포기했고, 칼퇴근과 주말은 무조건 가족과 함께를 외쳤다. 어떻게든 재택근무가 되는 환경을 만들어 나갔고 이제는 정착했다.
11년 전 사업을 시작했을 때 파트너 변리사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영업이었다. 고객을 업무 시간 외에도 만나 밥먹고 술마시는, 아이들과의 시간을 포기해야 하는 영업 방식은 택하고 싶지 않았다. 고민 끝에 생각해낸 나만의 영업 방식은 글과 강의였다.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강의 컨텐츠를 만들었다. 덕분에 그 영업 방식이 통하는 고객들과 내 컨텐츠를 알아봐준 정부 기관의 인정을 받아서 파트너로서 어느 정도의 기여는 할 수 있었고, 덕분에 매출이 크게 확장되거나 변리사로서의 높은 인지도는 얻지 못했다. 약간의 후회가 남기도 하지만 덕분에 난 제2의 삶을 꿈꾸며 준비하고 있다. 지금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나는 일과 가정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삶을 선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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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퇴사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이 떠밀려서 내린 결정이 있나 싶다. 결국 자신의 선택이고 자신의 결정이다. 늘 엄마가 비교하는 대상들은 그 때 지방에서 선생님을 계속했던 엄마의 친구들이다. 지금은 퇴직하셔서 연금을 짱짱하게 받고 아이들도 너무 잘 커주었다며 자신의 퇴사 선택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신다. 그런 엄마를 볼 때마다 안타깝다. 가정주부로 살아온 엄마의 인생이 안타까운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 살아온 자신의 삶을 평가절하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자신의 삶에 후회를 조금이라도 덜 남기려면 워킹맘들은 일과 가정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일이나 가정 양자 택일의 문제는 결코 아닐 것이다. 문제는 역시 방법이다. 내가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고 싶으면 재택근무나 유연근무제가 가능한 직장으로 이직할 수도 있고, 재택하면서도 할 수 있는 사업을 구상할 수도 있다. 전업맘을 선택하더라도 자아실현의 욕구가 없어지지는 않을 터, 전업맘으로서의 삶을 블로그나 유튜브를 통해 브이로그 형식으로 컨텐츠 생산자의 삶을 살 수도 있다. 현재 직장에 만족해서 꼭 이 곳에서 쇼부를 보고 싶어 정시 퇴근이 어렵다면, 주말의 어느 하루라도 아이들과의 퀄러티 타임을 가질 수 있다. 때로는 일에만 전념해야 할 때도 있고 가정에만 전념해야 할 때도 있지만 일과 가정 모두 복구 가능하다. 그러므로 일과 가정은 양립 가능하다. 양립 의지만 있다면 말이다.
개인적인으로 나는 모든 엄마들이 워킹맘 또는 예비 워킹맘이라고 생각한다. 워킹맘의 뜻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을 이르는 말이다. 그렇다면 '일'의 정의는 무엇일까.
한 논문에서 본 "직업(job)"과 "일(work)"의 정의가 무척 맘에 들었다. 직업(job)은 생계 유지를 위한 경제활동으로 돈 벌기 위한 수단이지만, 일(work)은 경제적 보상을 넘어선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활동이다. 나에게 변리사는 "직업"이고, 심리상담과 작가지망생으로서의 글쓰기는 "일"이다. 전업맘으로 일상에서 글쓰기를 꾸준히 하는 분들은 "워킹맘"이다. 전업맘으로 반려동물과 식물들을 잘 키워내는 분들은 "워킹맘"이다. 전업맘으로 아이들에게 엄마표 교육을 하는 분들도 "워킹맘"이다. 그러니까 꿈이 있는 엄마들은 모두 "워킹맘"이다. 워킹맘이 일과 가정 모두에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아가고 싶다. 내가 다시 두근거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