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과 1학년

(feat. 학부모의 세계)

by 지음


초등 1학년은 워킹맘의 무덤일까?


한국의 많은 워킹맘들이 퇴사나 이직을 가장 고민하는 시기는, 애착의 결정적 시기인 영유아 때도 아니고, 첫 사회관계를 배우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등원할 때도 아니다. 바로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 때'이다.


출처: KB 금융연구소 <2019 한국워킹맘보고서>


기사를 검색해 보면 '초등 1학년은 워킹맘의 무덤이다, '워킹맘에게 고통을 주는 시험대다' 등의 제목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논문 역시 초등학교 1학년, 저학년을 둔 워킹맘, 취업모를 대상으로 한 연구가 다수 발표되어 있을 정도다. 특히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온라인 수업으로 초등 1학년을 시작한 아이들의 워킹맘들은 혼돈 그 자체를 경험했을 것으로 보인다.


출처: (좌) 류은희.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취업모의 양육스트레스 및 대처 경험 연구." 국내박사학위논문 / (우)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이 취업모의 근로조건에 미치는 영향.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2&oid=009&aid=0004109658




초등 입학이 뭐길래 워킹맘들이 자신의 경력 단절까지 고려할 만큼 고민이 큰 걸까? 초등학교 입학은 자녀의 발달과 부모에게 어떤 의미일까?


초등학교 1학년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과 달리 처음으로 의무교육이 시작되는 시기로서 내가 속한 사회의 규칙을 내면화하는 첫 단계이다. 1학년 때 형성된 학습 활동의 흥미, 또래와의 대인관계, 학교 규칙에 대한 적응 정도가 이후 학교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여러 영역에서의 변화가 있는 시기지만, 한국의 많은 부모들은 초등 1학년을 "학업이 시작되는 시기"로 지각한다. 그래서 자녀들의 학업 역량이 준비되었는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아직은 어리게만 보이는 내 아이가 이제 사회로 나갈 첫 준비를 시작하기 때문에 엄마들로서는 자녀를 잘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게다가 학부모로서의 역할을 새롭게 더 부여받기 때문에 학부모로서의 새로운 역할을 어떻게 잘 감당해야 할지 긴장과 불안이 올라오기도 한다.


출처: (좌) 류은희.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취업모의 양육스트레스 및 대처 경험 연구." 국내박사학위논문


여기까지는 모든 엄마들에게 공통적으로 찾아오는 고민과 불안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워킹맘들에게 가중되는 불안이 있는데 바로 '학부모 네트워크'에 참여하여 내 아이에게 안정적인 그룹과 양질의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아무래도 일을 해야 하는 절대 시간이 있기 때문에 전업맘보다는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 아이에 대한 세심한 케어 등은 부족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일상을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전업맘과 달리 워킹맘들은 그 네트워크 속에 자연스럽게 들어가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렇기에 티타임이라도 잡히면 반차를 내고서라도 학부모 네트워크에 속하려 노력하지만 때로는 일 때문에 그러한 노력을 지속하기는 불가능하거나 관계에서 어려움을 맞이할 때 오히려 허탈감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출처: (좌) 류은희.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취업모의 양육스트레스 및 대처 경험 연구." 국내박사학위논문


학부모 네트워크의 필요성과 유익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공감한다. 하지만 그 네트워크 속에 있다는 것만으로 나와 내 아이는 관계적인 면에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걸까. 네트워크에서 쏟아지는 정보가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불안과 경쟁의식을 유발하지는 않는지, 학부모 네트워크가 워킹맘들이 또 하나의 부담이 가중되는 사회적 관계는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출처: (좌) 류은희.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취업모의 양육스트레스 및 대처 경험 연구." 국내 박사학위논문


물론 좋은 학부모 네트워크를 만나면 정말 든든하다. 하지만 1학년 때 모임이 중학교 때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고, 3학년 이후부터는 나와 그 엄마가 친하다고 해서 내 아이와 그 엄마의 아이가 계속 친하게 될 가능성은 보장되지 않는다. 엄마의 친구가 아닌, 아이만의 친구 그룹이 자율적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출처: (좌) 류은희.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취업모의 양육스트레스 및 대처 경험 연구." 국내 박사학위논문


자녀를 유치원까지 키워내는 것도 만만치 않았는데 초등학교 1학년 때 다시 찾아온 고비라니. 워킹맘이 현실에서 일과 가정을 함께 꾸려 가는 것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논문을 읽으며 나도 시간 여행을 떠났다.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때는 벌써 8년이 지났고, 딸은 4년이 지났다. 특히 첫째를 초등학교에 보내기 전에는 불안이 매우 높았던 걸로 기억한다. 늦게 피는 꽃인 우리 아들은 초등학교도 1년 늦게 보내는 게 좋지 않겠냐는 전문가의 의견도 받은 적이 있어서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좀 더 성숙할 때까지 1년 늦게 초등학교에 보낼 것인가? 아니면 아이와 나, 내가 의지하는 분께 맡기고 또래와 함께 보낼 것인가? 매일 같이 머리를 싸매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라는 존재는 아이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아이의 인생인데 어린아이가 온전히 선택하고 책임지게 할 수는 없었다. 남편은 자녀교육에 있어서는 거의 내가 하자는 대로 했기 때문에 내 선택의 책임은 늘 무겁게 느껴졌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전 6개월 이상 매일 같이 새벽 기도를 다녔다. 어떤 길로 아이를 인도해야 할지 나도 잘 몰라서 그분께 맡기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런 준비는 나름 많이 했지만 아이의 학업을 위해 어떤 정보가 필요한지, 학부모 네트워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었다. 입학해 보니 초등학교 1학년 남아들을 위해 가장 필요한 네트워크는 축구를 통해 만들어졌다. 아이가 축구에 관심이 있든 없든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서단체로 축구반에 가입해야 했고, 주 1회는 축구하는 아이를 지켜보는 엄마들끼리 네트워크 하는 효율적인 시스템. 하지만 축구공과 아이들을 따라다니기도 힘든 우리 아들은 축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 아이를 네트워킹의 목적만으로 축구를 시키는 건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지켜보는 나도 마음이 힘들었다.


출처: unspalsh


결국 우리 아들은 남들은 다 시키는 축구를 시키지 못했다. 그 당시 내 마음은 한이 될 지경이었다. 감사하게도 그 때는 분기별로 생일을 축하하는 반 전체 모임이 있었고 네크워크가 빈약한 우리 모자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하지만 그 모임에 전출하는 것만으론 일상을 공유할 수 없었다. 소위 '네트워크'에서는 자연스럽게 멀어져 갔다.


아이가 2학년이 되고 나서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반 대표 엄마를 하기로 했다. 그냥 끼어들기는 어려워서 직책을 맡아 자연스럽게 녹아들자는 나름의 묘수(?)였다. 일하는 것처럼 반 모임을 조직하고 재택하는 워킹맘으로서 워킹맘과 전업맘의 마음을 반반은 어느 정도 알기에 전업맘들이 잘 모일 수 있는 낮모임과 워킹맘들이 잘 모일 수 있는 평일밤모임/주말모임을 함께 기획했다. 형평성 있게 대하려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학년말 엄마들이 후한 평가를 해주었다. 일상의 네트워크에 속하지는 못했지만 아이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나름의 내 노력이었다.


2학년 때 처음, 아들이 사귄 친구를 집으로 데려왔다. 내가 만들어준 친구가 아니었다. 그 친구 엄마와는 총회에서 인사만 한 사이였다. 그런데 아들이 친구를 알아봤고 그 친구가 아들을 알아봐 주었다. 아들이 친구를 사귀어서 그 친구 엄마랑도 몇 번은 만났지만 만남이 지속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아들은 친구와 잘 지냈고 3년 연속 같은 반이 되어 아들은 외롭지 않은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5학년이 되어서 또 다른 친구를 데려왔다. 그리고 그 친구 엄마로부터 함께 오케스트라를 보러 갈 수 있냐는 초청을 받았고 이후부터 중3이 된 지금까지 그 가정은 우리 가정과 계절마다 같이 놀러 갈 정도로 친밀한 이웃이 되었다. 모두 아이가 사귄 친구였고, 나는 아이 덕분에 귀한 이웃을 만날 수 있었다.




0-3세는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이다. 초등학교 1학년도 아이가 행복하고 성공적인 학교생활을 하게 만드는 중요한 시기가 맞다. 하지만 그때 안정 애착을 주지 못했다고 해도, 초등학교 1학년 때 학부모 네트워크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해도, 복구할 기회는 항상 있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 맞게, 아이와 엄마의 성격에 맞게, 일과 가정을 꾸려 가는 방식을 주도적으로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남들의 방식이 아닌 "나만의 방식" 말이다.


1학년 때 축구 팀에 들지 못해도, 생활체육을 함께 하지 못해도 괜찮다. 아이가 좋아하는 운동을 함께 즐거워하며 할 수 있는 친구를 아이가 데려온다. 친구들이 다니는 좋은 학원 정보를 알지 못해도, 좋은 레벨의 반에 함께 묶어 주지 못해도 괜찮다. 시행착오가 있어도 아이에게 맞는 학원을 만나게 되고, 아이의 속도 대로 아이에게 맞는 레벨의 반에서 공부하며 실력을 단단하게 쌓아나갈 수 있다. 그러니 우리, 나 자신과 아이를 더 믿어 주자. 우린 이미 충분하다.


나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자 안달하기보다
먼저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되고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되고
행여 내가 후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아이에게 끊임없이 배워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저 내 아이를 '믿음의 침묵'으로 지켜보면서
이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것이었다."

박노해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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