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나,원해솔,이주영,and 성지은. "외손자녀 양육을 통해 워킹맘인 딸을 지원하는 60대 여성에 대한 사례연구." 사회과학연구 31.3 (2020): 209-236.
배우자 외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조력자는 조부모가 아닐까? 그중에서도 한국 워킹맘들에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조력자는 친정 엄마라고 한다.(2018 전국보육실태조사). 30대 40대 워킹맘들의 친정 엄마는 대부분 현재 60대인데, 이들은 의무교육 초기 수혜자로서 표면적으로는 남녀에게 동등한 교육이 보장된 환경에서 자라난 첫 세대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만연했던 가부장적 분위기의 문화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성 역할에 대한 이중잣대를 가지고 있는 낀 세대라 말할 수 있다(60대 여성에 대한 이런 사회문화적 특성을 정리된 언어로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친정엄마가 가지고 있는 무수한 이중잣대를 좀 더 너그럽게 보아주는 여유가 생긴다).
그들에게 워킹맘 딸은 어떤 존재일까? 어떤 존재이길래 고생스러운 황혼 육아를 마다하지 않을 수 있는 걸까.
최유나,원해솔,이주영,and 성지은. "외손자녀 양육을 통해 워킹맘인 딸을 지원하는 60대 여성에 대한 사례연구." 사회과학연구 31.3 (2020): 209-236.
논문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30대 40대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급격히 증가하게 된 배경에는 "딸이 자신과는 달리'사회적 존재'로 살길 원했던 현 60대 여성들의 바람과 노력이 있었다"라고. 친정 엄마들에게 워킹맘 딸은 자신의 사회적 자아를 투영한 '또 다른 나'는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성장해온 60대 여성들은 전통적인 성 역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딸이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도록 돕기 위해 기꺼이 황혼 육아를 선택했던 그녀들이지만 사위가 육아 휴직을 내는 것은 여전히 불편해했다. 엄마가 가사와 육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60대 여성들에게는 당연한 상식이었다.
결국 30대 40대 워킹맘들이 일과 가정 모두 잘 해내어야 한다는 압박은 60대 친정엄마의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암묵적으로 전수된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논문에 나온 7명의 60대 여성들은 모두 사회생활을 이어가는 딸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전통적 가치관에 따라 육아까지 책임져야 하는 딸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이중 책임을 져야 하는 딸의 짐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에 황혼 육아를 하게 된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논문에 인용된 60대 여성 인터뷰이들이 인터뷰어에게 한 말들이 친정 엄마가 하는 말처럼 들렸다.
최유나,원해솔,이주영,and 성지은. "외손자녀 양육을 통해 워킹맘인 딸을 지원하는 60대 여성에 대한 사례연구." 사회과학연구 31.3 (2020): 209-236
열혈 친정 엄마의 조력을 받아온 나로서는 이 논문을 읽으며 자연스레 엄마를 떠올렸다. 그리고 함께 읽게 된 그림책 <할머니 엄마>를 보며 자꾸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림책 <할머니 엄마> by 이지은
정겨운 그림체의 <할머니 엄마>. 할머니 엄마는 워킹맘 딸이 간 이후 엄마와 헤어져 속상한 손녀딸을 다정하게 달랜다. 칼국수도 함께 만들고, 손녀를 포근히 안고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들려준다. 손녀의 상상 놀이에도 즐겁게 참여하고, 손녀의 투정을 가슴에 담았다가 손녀에게 소화가 될만한 따뜻한 언어로 돌려준다. 이불같이 포근한 할머니 엄마다.
그림책 <할머니 엄마> by 이지은
이렇게 좋은 할머니 엄마가 있는데 손녀는 아직도 엄마가 고프다. 유치원 운동회에 엄마랑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회사 사정으로 할머니가 참여했다. 할머니는 자신이 엄마보다 운동을 잘했다며 큰 소리를 탕탕 쳤지만 달리기에서 넘어지고 만다. 손녀도 속상하고, 그 모습을 본 할머니 엄마는 더 속상하다. 그래도 할머니 엄마는 손녀 달래기의 고수. 시장에서 파는 고로케를 먹으며 둘은 속상한 마음을 달랜다. 둘이 고로케 먹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그림책 <할머니 엄마> by 이지은
엄마.
지금 이 순간 엄마라는 이름을 부를 때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아들이 5개월 되었을 때 나는 내 커리어를 위해 중국에 유학을 갔다. 열혈엄마인 친정엄마가 중국에 따라와서 아이를 봐주겠다는 약속을 흔쾌히 해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플랜이었다. 나는 아이를 친정엄마와 보모에게 맡겨둔 채로 북경에서 오전에는 어학연수, 오후에는 로펌에서 업무연수를 다녔다.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한 선택권을 가지고 싶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임에 틀림없었지만 중국에 있는 동안 엄마와 나, 아이 모두 참 힘겨웠다.
어느 날 저녁 아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며 옆에 있던 엄마가 말했다. 전후 맥락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들 곁에서 누워있던 엄마의 얼굴은 또렷이 기억난다.
"나도 우리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는 눈을 질끈 감고 입을 꼭 다물었다. 사무치는 그리움을 애써 삼키려 듯... 무뚝뚝한 경상도 엄마에게서 처음 보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그때 이미 외할머니께서는 돌아가신 상태였다. 외할머니는 허리가 굽어진 채로 평생을 일만 하다가 돌아가신 분이었다. 그런 외할머니가 싫어 엄마는 아빠와 결혼하자마자 고향을 떠나 서울로 왔다. 어렸을 때 외할머니 집에 몇 번 갔지만 초등 고학년 이후부터는 외할머니를 거의 뵌 적이 없다. 외가 사정이 워낙 복잡했기 때문에 엄마는 자신의 친정에 덧정조차 없는 듯이 말하기 일쑤였다. 그런 엄마가, 엄마가 보고 싶단다.
그림책 <할머니 엄마> by 이지은
엄마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나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셨다.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늘 벗어 버리고 싶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내가 결혼한 후에도 어떻게 하면 나를 더 잘 도와줄 수 있을지 늘 궁리하셨다. 중국 유학을 갈 때도 아이를 봐주기 위해 따라왔고, 서울에 와서 사무소 개업과 둘째 임신을 동시에 했을 때도 지방 출장까지 라이드 해 주셨다. 첫째를 데리고 언어치료, 놀이치료를 다니며 노트북으로 업무를 봐야 했을 때도 늘 동행해 주셨다. 국도, 반찬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준비해 주셨지만 이거 저거 챙겨 먹고 있느냐, 왜 이걸 버렸느냐는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고마운 줄도 모르고 받아먹기만 했다.
무뚝뚝하지만 한결 같이 행동으로 나를 사랑해 주셨던 엄마. 내가 원했던 사랑의 방식은 아닌 적도 많았다. 하지만 엄마도 외할머니에게 받은 서푼 어치의 정서적 자산으로 나를 사랑하려 최선의 최선을 다했음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나와 아이들의 세포 하나하나에 심겨 있다.
"나도 우리 엄마가 보고 싶다"라는 말을 했던 엄마의 모습. 그때 난 미래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저렸다. 아니 지금도 저리다. 다 큰 딸 앞에서 엄마가 사무치도록 그리운 날이 나에게도 곧 오겠지. 그날이 두렵지만 지금은 옆에 살아계시니 감사할 뿐이다. 아직 기회가 있으니까.
엄마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싶어지는 날이다. 봄날, 엄마랑 꽃길을 걷고 싶다. 오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