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까?

(feat. 영화 <씽> 로지타)

by 지음


7년 전쯤 회사 워크숍에서 직원들과 함께 팀빌딩 코칭을 받았다. 프로그램 중에는, 각자 나무판자에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을 쓴 후 "나는 내 꿈을 이룰 수 있다!"라고 선언하며 격파를 하는 순서가 있었다. 그때 내가 쓴 꿈은 "나는 일과 가정을 모두 훌륭하게 가꾸고 싶다"였다. 나는 코치님의 뿜뿜 동기부여 약발 덕에 송판에 과감하게 꿈을 쓴 후 격파와 함께 외쳤다. "나는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 다 잡을 수 있다!"


출처: 구글 '태권도' 검색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라이센스>


그 후로도 일과 가정 모두를 잘 꾸려가기 위해 동분서주, 고군분투했다. 7년이 지난 지금, 그 꿈은 이루어진 걸까. 꿈의 실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래도 7년 전보다는 훨씬 잘 해내고 있는 것 같다. 워킹맘이 된 지 16년 동안 일과 가정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늘 노력했지만 때로는 밸런스가 깨진 적도 많았다. 어떤 시기는 일에서 내 역할이 집중적으로 요구되었고, 어떤 시기는 가정에서 내 역할을 더 많이 필요로 했다. 일에 집중할 땐 아이들과 친정엄마에게 미안했고, 돌보지 못한 살림들이 마음을 어지럽히기도 했다. 가정에 집중할 땐 적기에 수행하지 못한 일 때문에 고객들과 직원들의 불평을 감내해야 했다. 일과 가정이라는 경계를 매일 담타며 오가야 했지만 에너지가 고갈될 때는 둘 다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코칭을 받던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여전히 일 토끼와 가정 토끼를 둘 다 잡고 싶은 욕심쟁이 워킹맘이었을 거다.


딸이 그려준 두 마리 토끼 다 잡은 워킹맘 ^^


그렇다면 일과 가정은 갈등 관계일까? 일에 집중하면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고, 거꾸로 가정에 집중하면 일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그런 관계일까. 이 질문에 신선한 관점을 제공하는 논문 내용이 있어 소개하고 싶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일과 가정에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드는 시간적, 정신적, 물질적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고 보는 '자원 소모 모형 (resource drain model)'이 주를 이루었다. 이로 인해 개인의 한정된 자원으로 일과 가정에서의 역할을 수행을 둘 다 제대로 하기는 어려우므로 일과 가정은 대부분 갈등 관계에 있음을 전제로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와 반대로 일과 가정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자원을 소모하기 보다 오히려 자원을 증대시키며, 한 영역에서의 경험이 다른 영역에서의 역할 수행에 도움을 준다고 보는 '역할 축적 모형(role accumulation model)'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출처: 김은석. "일-가정 양립 유형화 및 일-가정 양립 촉진적 자기의 가정→일 양립에 대한 자기 효과와 상대방 효과." 국내 박사학위논문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2018. 서울).


출처: unsplash / 검색어: work family


이 말은 곧 가정과 일에서 정신없이 1인 다역을 소화하고 있는 워킹맘들이 일에서 보람이나 성취를 느끼면 가정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고(일→가정 향상), 가정에서 남편이나 자녀들과 좋은 관계를 이루어 나가면 일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말이다(가정→일 향상). 즉 일과 가정은 갈등 관계에만 놓여 있지 않으며, 서로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향상' 관계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출처: 김은석. "일-가정 양립 유형화 및 일-가정 양립 촉진적 자기의 가정→일 양립에 대한 자기 효과와 상대방 효과." 국내 박사학위논문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2018. 서울


그렇다면 일과 가정이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는, 일 토끼와 가정 토끼를 잘 잡은 워킹맘은 어떤 개인적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지난 포스팅(워킹맘심리학 2)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가정 양립 촉진적 자기'의 특성을 가진 워킹맘들은 일과 가정을 갈등 관계에 놓지 않고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도록 "주도적"인 삶을 만들어나간다.


출처: 김은석. "일-가정 양립 유형화 및 일-가정 양립 촉진적 자기의 가정→일 양립에 대한 자기 효과와 상대방 효과." 국내 박사학위논문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2018. 서울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여러 조력이 필요하고, 다양한 지지 자원도 존재하기 마련인데 이러한 자원은 기다린다고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워킹맘 스스로가 매일의 삶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요구들을 조정하고 필요한 자원과 조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보다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것.


상담적 개입 방향은 여기에서 정해진다고 볼 수 있다. 즉, 워킹맘 자신이 수동적 역할 수행자에서 주도적인 주체로 변화될 수 있도록 돕는 것. 이를 위해 심리적으로 소진된 워킹맘이라면 우선은 심리적 에너지가 충전될 때까지 경청, 공감 등을 통한 자존감 향상, 충전된 후에는 마음챙김, 심리교육, 해석 및 직면 등 자신과 상황에 대한 시야(조망) 확장, 주어진 자원을 활용하기 위한 의사소통기술 학습, 부부상담 등을 통한 배우자와의 관계성 회복 등이 단계적 또는 종합적으로 다루어질 필요가 있겠다.




논문을 읽으며 바로 떠오른 캐릭터가 있다. 영화 <SING>의 로지타. 가수가 꿈이었던 그녀는 결혼 후 매일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남편과 20여 명의 아이들을 돌보는 전업맘이다. 설거지를 하던 보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녀에게 갑자기 날아든 오디션 포스터는 그녀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출처: 유튜브, 영화 <씽>


오디션에 도전해 보기로 마음먹은 로지타는 용기 내어 남편에게 말을 건네지만 이미 지쳐있는 남편은 그만 소파에서 TV를 보며 잠들어 버린다. 실망은 잠깐, 그녀는 더 이상 꿈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매우 "주도적"으로 자신의 환경을 바꾸어 나간다. 피곤에 찌든 남편과 20명의 개구쟁이 아이들을 케어할 수 있는 "살림 자동화 시스템"을 하루 만에 만들어 낸다!


출처: 유튜브, 영화 <씽>


얌전해 보였던 로지타는 어떻게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 걸까? 아마도 그녀 자신의 꿈을 향한 간절함이 잠재해 있던 놀라운 주도성을 끌어낸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상의 무게에 눌려 해결점을 찾지 못했던 살림과 육아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기게 만들었다. 그녀는 가수의 꿈을 이뤘다. 그리고 전에 받지 못했던 남편과 아이들의 존경까지 덤으로 얻게 되었다. 일과 가정이 '시너지'를 일으켰다.


출처: 유튜브, 영화 <씽>


엄마가 된 이상 워킹맘이든 전업맘이든 살림과 육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고이 간직해 온 꿈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꿈꿔온 일, 행복한 가정, 그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으면 좋겠다. 봄날은 온다.


https://youtu.be/TFUYeyEnF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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