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도시락에 핀 꽃

(feat. 엄마 셋 도시락 셋 by 국지승)

by 지음


도시락.


살림에 서툰 워킹맘이라면 도시락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을 알고 있을 것이다. 평소 살림에서 아주머니와 친정 엄마의 조력을 받아왔던 나이지만, 도시락만큼은 늘 손수 준비해 주고 싶었다. 엄마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달까. 그래서 도시락을 준비해야 하는 날이면 전날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예쁜 도시락", "아이 도시락", "도시락 메뉴" 등의 다양한 키워드로 검색한 후 고마운 블로그 포스팅을 통해 아이가 좋아할 만한 메뉴인지, 내가 준비할 수 있는 수준인지를 가늠하고, 준비물들을 미리 챙겨야 했다. 그리고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연 순간 아이가 기뻐할 모습만 그리며 진정 열심히, 진정 산만하게 준비했다.


여기, 그 때의 나를 떠올리게 해준 그림책이 있다.


KakaoTalk_20220221_060833998.jpg?type=w1 출처: 국지승 <엄마 셋 도시락 셋>


국지승의 <엄마 셋 도시락 셋>에는 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엄마 셋이 등장한다. 직장에 출근하는 엄마, 집에서 작가 활동을 하는 엄마, 아이 셋을 정성껏 돌보는 엄마. 근무 형태에 따라 직장맘, 프리랜서맘, 전업맘이라 구분하여 부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모두 "일(work)"하는 "워킹맘"이다.


301호 지선씨는 <우리 아이 쉬운 도시락> 책을 꺼내 들고 서투른 솜씨로 김밥을 싼다. 가끔 옆구리가 터지기도 하지만 도시락에 담으니 그럴싸하다.



SE-0814448d-8979-41ed-b85d-fc1317ebb224.jpg?type=w1 출처: 국지승 <엄마 셋 도시락 셋>


하지만 지하철 출근길에서도 미간에 잔뜩 힘이 들어간 그녀의 머릿속엔 아마도 '김밥이 들고 가다가 뭉개지진 않을까? 뚜껑을 열었을 때 옆구리가 다 터진 모습이면 어쩌나? 우리 애 도시락이 젤 빈약하면 어쩌지?'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있는 것만 같다.


202호 다영 씨는 그림책 작가다. 밤새 작업을 한 그녀는 오늘도 알람 소리를 듣지 못했다. 허겁지겁 일어나 세상 고마운 분식집에서 김밥과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 음료수를 사들고 돌아온다. '휴, 됐다'라는 그녀의 안도가 왠지 모르게 안쓰럽기만 하다.


KakaoTalk_20220221_060833998_03.jpg?type=w1 출처: 국지승 <엄마 셋 도시락 셋>


101호 미영 씨는 막내를 들쳐 업고 아이 둘의 도시락을 싸고 있다. 프로페셔널한 모습이지만 아이 셋을 챙기느라 정신없기는 매한가지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웃으며 아이들을 배웅하는 미영씨. 그녀는 프로 일잘러다.


KakaoTalk_20220221_060833998_04.jpg?type=w1 출처: 국지승 <엄마 셋 도시락 셋>


지선 씨는 도시락은 어땠을지 무척 궁금하지만 오래 생각할 겨를은 없다. 오늘도 직장에서의 하루는 너무 바쁘니까. 다영씨는 그림책 작업에 몰입하고 싶지만 아이의 중요 일정을 깜빡할까 노심초사다. 미영 씨도 집에서 하루 종일 빨래, 청소, 아기 돌보기 등 쉴 새 없이 엄마로 일하느라 자신의 이름을 까먹기도 한다.

그림책 속 워킹맘들은 모두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바쁘다. 봄이 오고 있는 소리를 들을 수도 없고, 이미 와 있는 봄을 느낄 수도 없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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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지승 <엄마 셋 도시락 셋>


일과 가정을 곡예사같이 넘나드는 그녀들에게 어느 날 다정한 누군가가 봄소식을 전해준다. 소풍을 다녀온 아이의 손에 들려 있는 봄꽃. 도시락에도, 엄마의 마음에도 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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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지승 <엄마 셋 도시락 셋>




엄마의 도시락은 힘이 세다. 뜨끈한 도시락을 열면 평소엔 무뚝뚝한 엄마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도시락의 힘을 아는 내가 엄마가 되었으니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손수 만들어 줄 기회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단기간에 음식 솜씨를 업그레이드하긴 어려웠기에 나름의 꼼수를 부린 도시락은 바로 이것!


KakaoTalk_20220221_080411835.jpg 내가 만든 고양이 도시락


소풍에 가기 전 도시락 뚜껑을 슬쩍 열어보고 함박 미소를 지었던 딸의 표정이 아직도 생각난다. 고양이들 치즈 눈알과 김 수염이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빈 공간을 브로콜리로 채워야 했다. 듬성듬성 이상한 솜씨지만 새벽 5시부터 일어나 도시락을 쌌던 나도, 고양이 도시락을 받아든 딸도 행복했다.


이제는 도시락을 싸 줄 일이 없다. 아이들이 훌쩍 커버렸으니...

한 번쯤 이 유치한 도시락을 다시 싸주고 싶다. 고양이 주먹밥, 문어 소시지, 다양한 표정의 메추리알까지.


KakaoTalk_20220221_080411835_02.jpg 문어 소세지와 여러 표정의 메추리알


그러면 아이들 마음에도, 내 마음에도 또 꽃이 피겠지.


KakaoTalk_20220221_060833998_05.jpg 출처: 국지승 <엄마 셋 도시락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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