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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호박 Sep 26. 2021

괜찮은 날

오늘은 참 괜찮은 하루였다. 가끔은 나 스스로가 무서울 정도로 감정 기복이 심한 성격인데 오늘은 참 괜찮았다. 나와 오늘을 함께 보냈던 친구는 평소 발이 아파서 힘들어하는 내 발 컨디션이 괜찮아서 더 그럴 거라고 했다. 맞다. 오늘은 신발이 왠지 더 발에 꼭 맞아서 편하게 걸었고, 많이 걸었는데도 불구하고 아프지가 않았다. 발이 불편한지 벌써 일 년이 훌쩍 넘었는데 날 좋은 날 걷다가도 발이 아프면 금방 우울해지고 짜증을 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은 날씨도 좋았고, 쉽게 볼 수 없는 가득한 구름 속에서 비행운을 보았다. 일 년에 몇 번 볼 수 없는 하늘로 가득한 날이었다. 가고 싶었던 맛집에 생각보다 늦게 도착했는데 웨이팅도 없이 들어갔다. 솔드아웃이었을까 봐 걱정했는데 그렇지도 않았고.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던 음악을 함께 들었으며, 가는 곳마다 불친절한 사람도 없었고 모든 사람들이 평화로워 보였다. 나는 나대로 행복하고 나대로 슬퍼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주변의 영향을 참 많이 받는 사람이었다.


내 안에는 다른 사람의 표정 때문에, 말 때문에, 상황 때문에 꼭 나의 일처럼 괴로워하는 내가 있다. 그런 날이면 아주 오래 잠을 자고 싶어 진다. 깨어나면 다시 그 괴로움이 되살아날까 봐 두려워하며 잠에 드는 나의 모습을 떠올리면 더 슬퍼진다. 때때로 그 괴로움은 잠에 들어도 지속되어서 자면서도 한숨을 푹푹 쉬거나 악몽을 꾸며 누군가와 한참 대화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일어난다. 


한동안 나는 그렇게 지냈는데, 오늘처럼 이렇게 괜찮은 날이면 이 안정된 마음을 오래 지속하고 싶어서 잠에 들기 싫어진다. 그러면서도 혹시 깨어있는 동안 또 슬픈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 된다. 신발을 신지 않고, 맨발로 부드러운 땅을 하루 종일 밟은 것 같이 편안한 날. 오늘은 오래 눈을 뜨고 시간을 보내도 별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괜찮은 날이면 오래오래 깨어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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