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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호박 Feb 14. 2022

개인의 취향


가끔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여러모로 아빠를 똑 빼닮았다. 동그란 발과 발가락, 어른들이 보기에 좋은 복코까지. 성격은 비슷하지 않지만 취향은 비슷하다. 엄마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나의 옷 취향을 아빠는 늘 존중해주었고 "잘 골랐다"라는 말까지 덧붙일 정도였으니까. 닮은 구석은 꽤 많지만 내가 아빠에게 그대로 물려받은 건 기계를 좋아하는 것이다. 정확히는 기계를 알아가고, 부품을 공부하는 것보다는 그냥 무작정 사는 것.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쯤 아빠는 갑자기 사진 공부를 하겠다며 소니 디지털카메라와 니콘 DSLR을 턱 구매했다. 덕분에 나는 중학교 시절 소풍 갈 때마다 값이 꽤 나가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진에 열정이 있는 학생이 되었다. 어렵게 자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잣집도 아닌 가정의 가장인 우리 아빠는 돈을 모으기보다는 쓰는 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학여행, 축제, 현장학습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친구들과 풍경을 열심히 찍었던 나를 보며 선생님들은 내가 사진학과를 전공하고 싶어 하는 줄로 착각하기도 했다.

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아빠와 나는 이러한 취향을 버리지 못했다. 다행인 건 우리가 아주 값비싼 기계를 모을 만큼 부자가 아니라는 거다. 그냥 누군가 나에게 "600만 원짜리 명품 가방을 살래, 스피커를 살래?"라고 물었을 때 고민 없이 "스피커"라고 대답할 의향이 있을 정도일 뿐. 스물아홉이 된 나는 명품 가방은 당연히 없을뿐더러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파운데이션과 쿠션, 아이라이너 등 웬만한 색조 화장품은 다 버리고 구매하지도 않으며 선크림과 내 눈썹을 지켜 줄 아이브로우만 곁에 두고 살아가고 있다.

대신 나에겐 든든한 기계들이 있다. 아이패드 프로, 아이맥, 애플 워치, 닌텐도, 뱅앤올룹슨 스피커, 브릿츠 스피커, 와콤 태블릿, 이사 기념으로 아빠가 선사한 LG 스타일러, 미러리스 카메라, 폴라로이드 카메라....... 곧 3주년을 앞둔 우리는 서로 어떤 선물을 해 줄까 고민했는데 잉구는 나에게 다이슨 드라이기를 선물 받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물론 써 보지 않은 전자제품이었기에 궁금하고 기뻤지만 뭔가 서로 긴가민가한(?) 느낌이 있었다. 지금 다시 곱씹어보니 '다이슨 드라이기' 자체를 가지게 되는 것은 좋지만 미용과 머리손질에 소질이 없는 내가 그것을 가지고 있어도 잘 활용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오늘 선물 받은 토이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스캔하고 한참을 기뻐하는 내 모습을 본 잉구는 필름 카메라를 하나 더 장만하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다. 맞아. 그거야. 내가 지금 원하던 기계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잘 사용할 수 있는 필름 카메라를 셀렉하는 건 잉구의 몫이다. 잉구는 무턱대고 턱턱 기계를 사고 나서 보는 나와 달리 무언가를 구매할 때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기계는 내가 받고 지식은 잉구가 얻는 이 레퍼토리. 우리끼리만 웃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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