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를 즐기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 나는 자주 억울했지만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건은 체력장이다. 무엇보다 유연성과 리듬감은 타고 난 건데 스트레칭으로 나의 운동 능력을 평가하고 그것이 수행평가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것이 분했다. 우리 아빠는 완벽한 박치고 엄마는 음치인데, 뚝딱이 가족 유전자로 태어난 내가 유연하게 몸을 잘 움직일 리 있겠는가? 무엇보다 태생이 다리가 튼튼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길쭉하고 가느다란 다리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운동을 멀리 했다. 나 같은 뚝딱이가 운동을 잘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체육 선생님이 여자였던 고등학교 특성상 체육 시간에 달리기 대신 춤을 추게 했으니까. 춤을 못 따라 하는 학생들끼리는 남아서 따로 복습까지 했으니.... 체육을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2학년이 되어 야외로 나가 피구를 할 때도 있었지만 날아오는 공이 무서워 그냥 1등으로 맞고 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성인이 되어 책에서 여성 대부분이 중고등학교 때 좁은 공간에서 피구를 했고, 피구는 꽤나 폭력적인 운동 종목이라 자연스레 체육과 멀어질 수밖에 없는 교육 현장을 체험한다는 글을 읽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학 시절에는 맛있는 건 많이 먹고 싶고, 그렇다고 지금보다 더 살이 찌고 싶지는 않은 마음에 핫요가를 등록했다. 핫요가는 뜨거운 공간에서 하는 요가인데 진짜 '요가'라기보다는 어떤 날엔 에어로빅을 하고 나온 것 같이 흥분되는 느낌이었다. 뜨거운 공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움직이니 당연했다. 단기간에 살은 많이 빠졌지만 길게 가져갈 수는 없는 운동이었다. 그러다 요가원에 갔다. 요가원에는 모두 길쭉하고 마른 몸매에 다리를 일자로 쭉 뻗고 몸을 반으로 접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몸을 그들의 반도 접지 못하다가 창피한 마음에 일주일 나가고 포기해 버렸다(지금 생각하니 일주일 나간 것도 대단하군).
그렇게 25년을 운동과 담을 쌓고 지내다 직장인이 되어 내돈내산으로 필라테스를 등록했다. 요가는 유연한 사람들만 하는 정적인 운동이라 차분하지 못한 내 성격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조금은 더 동적인 리듬이 느껴졌던 필라테스는 무엇이든 금방 지겨워하는 내가 3년이나 해 낼 정도로 나와 잘 맞는 운동이었다. 그렇지만 3년도 나의 한계. 똑같은 기구를 자주 쓰다 보니까 그 기구를 보는 것만으로도 지겨운 마음이 들었다.
필라테스를 배웠으니 조금은 유연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올여름에는 요가원을 등록했다. 등록한 날 1분 지각을 했는데 입장할 수가 없었다. 규칙 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정말 수련에 진심인 사람들만 모인 곳이구나. 발걸음을 다시 집으로 옮기는 내내 요가는 역시 나와 맞지 않는다며 화를 냈다(내가 지각해놓고..). 다음날 수업이 별로면 환불해야겠다는 생각에 시간을 맞추어 갔는데 1시간 내내 왠지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라테스로 적당히 길러진 근력이 몸을 움직이는데 도움을 줬기 때문일까. 그렇지만 여전히 뻣뻣하긴 매한가지였다.
나도 모르게 옆 사람을 자꾸 쳐다보게 됐다. 저 사람은 어디까지 몸이 내려가네, 움직이네. 신기해하고 부러워하면서. 그리고 운동이 끝난 후 사바사나 자세에서 선생님께서 몸에 모든 기운을 풀고, 미간에도 힘을 빼라고 하셨다. 의식적으로 미간에 힘을 뺐다. 왠지 미간이 조금 저렸다. 나, 하루 종일 이렇게 찌푸리고 있었구나. 내 미간에 이렇게 나쁜 마음들이 가득했구나. 어쩐지 내 스스로가 미웠지만 의식적으로 눈썹에 힘을 빼면 아직은 눈이 편하게 떠진다는 사실에 조금은 기뻤다. 모든 수련이 끝난 후 선생님은 나를 포함한 학생들에게 소중한 저녁 시간을 내어 주어서 고맙다고,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모든 의식을 내 몸에 맡길 때 더 좋은 시간이 될 거라는 말을 해 주셨다. 평소였으면 '나한테 하는 말인가? 내가 너무 옆 사람을 쳐다봤나?' 싶은 마음에 부끄럽고 또 미간에 힘이 들어갔을 텐데. 어쩐지 괜찮았다. 그냥 선생님의 말씀대로 따라가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