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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16. 2023

다윗에게 깨진 세 가정

성경에 나오는 인물을 해석하는 원칙이 있습니다. 그건 로마서 3장 10절 말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입니다. 동시에 주께서 하신 말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성경의 인물, 소위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을 의인시 하거나 영웅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요셉, 다윗, 다니엘 등을 비판하면 바로 반발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죄 많은 인간이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면에서 오늘은 다윗의 이중성과 관련된 논문 한편을 소개하겠습니다. 토론토 틴델 신학교 구약학 교수인 John Kessler가 “성과 정치 : 사무엘서에 나오는 쫓겨난 남편의 모티프 (Sexuality and Politics: The Motif of the Displaced Husband in the Books of Samuel)입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해외 성서학계의 최신 논문들을 하나씩 소개하겠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직접 선택한 사람(삼상13:14),  여호와의 종(삼하3:18, 7:5, 8,26),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삼하12:7,22:51, 23:1)와 같은 존칭이 부여되었습니다. 신약성경도 다윗에 대해 똑같은 찬사를 보냅니다(눅20:41, 행13:22-36).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서술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서는 다윗에 대해 매우 다른 모습을 그립니다. 그의 정치적 야망과 무능한 가족 관계를 사정없이 비판합니다. 또한, 다윗이 경력을 쌓는 과정에서 세 명의 남성(나발, 발디엘, 우리아)과 그들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삼는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세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는 과정을 통해 다윗이 점차 타락하는데, 이는 다윗의 이중성(선과 악)을 보여줍니다. 사무엘서는 왜 이렇게 다윗의 잘못을 적나라하게 기록하였을까요? Kessler 교수는 이 점을 고민하면서 논문을 썼습니다. 

1. 나발, 아비가일, 다윗

나발은 악행을 저지르는 거친 사람으로 어리석은 사람의 전형입니다. 반면에 아비가일은 지혜롭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등장합니다. 나발의 양떼를 돌봐주었던 다윗이 나발에게 먹을 것을 요청하였는데 거절당합니다. 그때 다윗은 분노하여 칼을 빼들고 피의 보복을 감행하려고 합니다. 그런 다윗 앞에 아비가일이 나타나 다윗을 지혜롭게 설득합니다. 성경은 가볍게 분노한 다윗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나발은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파멸했는데, 이 모든 과정에 하나님이 개입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여호와의 축복과 왕위 계승자로 선언하고(삼상25:28), 다윗의 정적(나발)을 저주합니다(삼상25:26). 나발이 죽은 후 다윗은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다윗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다윗과 연관된 나발의 가정은 결과적으로 깨어졌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다윗은 불명예스러운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2. 발디엘, 미갈, 다윗

다윗에 의해 직접적으로 깨어진 가정은 발디와 미갈입니다. 다윗은 아히노암과 아비가일 외에 네 명의 아내를 더 얻었습니다(삼하3:2-5). 사울이 죽은 후 다윗은 통일 왕국을 이루는 과정에서 아브넬과 동맹을 맺습니다. 다윗은 동맹을 맺는 조건으로 미갈을 돌려달라고 요청합니다(삼하3:12-13). 이는 분명 정치적 차원의 요구입니다. 


미갈과 발디엘의 결혼이 합법적인지는 불분명합니다. 성경 저자는 사울이 미갈을 발디엘에게 줄 권리도 없고, 다윗이 미갈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권리도 없음을 명시적으로 밝힙니다. 성경 저자는 미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다윗을 은연중에 비판합니다. 삼하 3:2-5까지  다윗은 이미 네 아내와 결혼했음을 언급합니다. 따라서 성경을 읽는 독자는 삼하 3:12-13에서 네 명의 아내를 가진 다윗이 소중한 한 명의 아내, 미갈을 발디엘에게 빼앗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다윗이 아브넬에게 말합니다. 

“내가 네게 한 가지 일을 요구하노니 나를 보러올 때에 우선 사울의 딸 미갈을 데리고 오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삼하3:13)

그는 미갈을 ‘사울의 딸’이라 부르므로 미갈의 정치적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는 미갈이라는 한 인격체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는 북이스라엘에 기반을 두었던 사울왕의 딸을 가지고 싶었을 뿐입니다. 미갈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하나로 묶어주는 고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미갈은 그저 정치판의 졸이었습니다. 


다윗은 미갈을 내 아내(삼하3:14)라고 부르지만, 성경 저자는 미갈의 남편은 발디엘이라고 밝힙니다(삼하3:15,16)

“이스보셋이 사람을 보내 그의 남편 라이스의 아들 발디엘에게서 그를 빼앗아 오매’(삼하3:15)

성경 저자는 미갈의 신분을 의도적으로 대조하므로 다윗의 무자비함을 드러냅니다. 


발디엘은 하나뿐인 아내를 빼앗기고 울면서 미갈의 뒤를 따릅니다. 고대 시대 남성이 공공장소(길)에서 운다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일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고, 동시에 성경 독자들에게도 호소합니다. 히브리 원문에 보면 아브넬이 이중명령어 즉 “저리 가! 돌아가라!”고 합니다. 이는 암논이 다말을 강간하고 했던 이중 명령(일어나 나가라)와 같습니다. 발디엘은 다말처럼 굴욕과 수치심을 느끼며 조용히 명령에 복종합니다. 


다윗은 아비가일과 결혼할 때처럼 더 이상 수동적이지 않습니다. 그는 적극적으로 행동합니다. 자신의 요구가 가져올 사회적 영향의 부정적 측면(가정을 깨트렸다는 비난)보다 긍정적 측면(북이스라엘과의 통합)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미갈을 요구하는 다윗의 행동이 완전히 불법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비판받을 요소는 분명 있습니다. 


3. 우리아, 밧세바, 다윗

밧세바를 강간하고 우리아를 죽인 일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비방당한 나발이나 희생당한 발디엘과 달리 우리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선하고 신실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다윗이 그를 불러 밧세바와 잠자리를 가지도록 유도할 때 우리아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아가 다윗에게 아뢰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삼하11:11)

전통적으로 언약궤(법궤)에 대한 연대감은 경건의 상징입니다. 그는 경건하고, 충성스럽고, 자제력이 있고, 공동체와 연대를 존중합니다. 반대로 다윗은 속임수와 이기심의 화신으로 자제력도 없고, 냉담하며, 불충실하고, 배신과 살인을 일삼고 공동체를 심각하게 깨뜨리는 인물입니다. 다윗은 아주 악한 마음으로 우리아의 가정을 깨트렸습니다. 


사무엘서는 여러차례 군주제의 폐해를 경고하였습니다. 신명기는 왕이 여러 명의 아내를 두어서는 안된다(신17:17)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할 때 사무엘은 왕이 이스라엘의 딸들을 갖가지 명목으로 취할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삼상8:13). 신명기 학파(신명기에서 열왕기서에 이르는 저자들)는 일부다처제 및 정략 결혼과 관련된 군주제를 위험하고 의심스러운 제도로 간주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허락하지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경계선을 무너뜨렸고, 후대 이스라엘의 모든 왕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군주제를 악용했습니다. 


나발과 발디엘과 우리아는 모두 일부일처제를 따랐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기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때로는 자존심 때문에 남의 가정을 파괴하면서까지 여러 명의 아내를 두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무엘서는 왜 이런 일들을 여과없이 기록했을까요? 타락은 어느 순간 갑자기 일어나지 않고 점진적으로 일어납니다. 다윗의 타락이 바로 그 예입니다. 아비가일과 미갈과 밧세바를 아내로 맞이하는 과정에서 그는 점점 타락합니다. 그는 가장 이상적인 장군 우리아를 살해하고 그의 가정을 깨트렸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용서하고, 죽음을 유예하며, 그를 지지하고 그에게 가능성을 부여했습니다. 

그건 그의 잘못과 죄악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편 저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 

다윗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왕입니다. 이스라엘도 다윗처럼 참담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는 계속해서 그들과 관계를 맺습니다. 마침내 이스라엘은 그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멸망하고 바벨론의 포로가 됩니다. 그때 포로로 끌려간 유배자들은 이 사무엘서를 읽으면서 다윗의 패러다임을 보았 습니다. 허물과 죄가 많지만, 벌을 받고 망한 것 같고, 죽은 것 같지만, 눈을 들어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한다면 기회와 희망은 있다는 패러다임입니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현대 독자들에게도 유효합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7)



Kessler, John. Sexuality and Politics: The Motif of the Displaced Husband in the Books of Samuel, CBQ. Jul2000, Vol. 62 Issue 3, p409-423


https://youtu.be/k2OkCVDOWR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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