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by Logos Brunch

3층 창문 너머를 보았다.

교정은 깨끗한 정장에 두 손 가득 꽃다발을 든 사람들로 가득하였다.

드디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이었다.

즐거울 것도, 괴로울 것도 별로 없는 학창시절이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때나, 숲 속 교실을 산책할 때도, 심지어 도서관 앞 수영장에서 수영할 때도 늘 혼자였다.


교실 안은 흥분과 기쁨이 뒤엉켜 있었다.

그럴 수록 나는 더욱 차분해졌다.

어머니는 일 년 째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계셨고, 아버지는 부흥회 가셔서 찾아올 사람이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안하다. 졸업식에 가지 못해서…”

아버지의 말에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괜찮아요.”

진심을 담지 않은 말을 서로 나누었다.

M-5.jpg

창문 밖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엔 ‘혹시’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머리를 흔들었다.

그럴 리 없다.

드디어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나가도 좋아!”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교실 문을 나섰다.

학교 정문까지 환영객으로 가득했지만, 내 앞을 막는 사람은 없었다.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졸업식은 그렇게 끝났다.

정문 앞은 한산하였다.

늦었는지 꽃을 들고 뛰는 사람이 언뜻 보였다.

외로움은 그렇게 내 인생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외로움은 인간의 고질병이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 속에서도 외로움은 찾아올 수 있다.

친구와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중에도 불쑥 찾아오는 게 외로움이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사연으로 눈물 흘리게 되는 건 외로움 때문이다.

외로움이 깊어지면 우울증이란 몹쓸 병에 걸린다.

목회에 실패하고 미국으로 오면서 외로움은 나의 가장 친한 벗이 되었다.

사실 목회할 때도 늘 외로움에 시달렸지만, 애써 감추고 살았을 뿐이다.

이제는 그 아픔을 숨길 필요가 없어졌다.

외로움을 깊이 들여다 보며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외로움 속엔 사명이 있다.

외로워 아파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외로움끼리 만날 때 가시가 될 수도 있지만, 치유를 경험할 수도 있다.

외로운 사람끼리 아픔을 살피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회복을 경험한다면 그건 축복이다.

외로움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소명이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요16;7)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방인의 순종과 유대인의 질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