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nerstone University 에서 신약을 가르치는 Timothy Gombis 교수는 ‘약한 자의 능력 : 바울의 변화된 목회 비전’을 썼습니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목회하는 목회자들에게 매우 유용한 책입니다. 그는 교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는 십자가가 자신들의 정체성 표시라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으로 구성된 집단이고, 따라서 경계선이 있는 집단이다. 목회자들은 모든 사람을 이 공동체의 역동성에 초청하고, 그들이 어떻게 그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라고 요청하는 사람들이다”(Gombis, p.228).
‘목회자는 목회를 수동적인 것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십자가로 인해 형성된 교회의 정체성을 교회가 기억하게 하고, 공동체의 상상력이 십자가를 지향하게 할 사명이 있다’고 말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십자가를 본받는 정체성을 깨트리고 거역할 때 목회자는 바른 권징으로 그들을 인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권징을 어떻게 시행했을까요? 바울은 고린도 교회 문제로 크게 고민하였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네 파로 나뉘어 공동체성을 깨트리고 있을 때 바울은 아버지의 심정으로 말합니다.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고전4:21).
권징의 의미가 약화된 지금 많은 주석가는 본문을 모호하게 해석하거나 아무런 논의 없이 그냥 지나갑니다. 호주의 Alphacrucis College 에서 신약을 가르치는 Adam G. White 교수는 이 문제를 고민하며 “파문으로서의 매 : 고전 4:21의 모호한 은유에 대한 가능한 의미’(The Rod as Excommunication: A Possible Meaning for an Ambiguous Metaphor in 1 Corinthians 4.21)라는 논문을 썼습니다.
White 교수는 고대 로마법과 가정과 학교, 그리고 유대와 기독교 공동체에서 처벌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살피고 이 본문을 해석합니다. 고대 로마법은 사적인 문제를 다루는 법원(iudicia privata)과 공동체 전체를 위협하는 문제를 다루는 공적 법원(iudicia publica)으로 나눕니다. 로마 법원은 개인보다는 공동체 전체에 대한 범죄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가벼운 잘못은 벌금형이나 채찍질로 끝나지만, 공동체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는 추방이나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가정은 여러 면에서 미니 공동체였습니다. 지위가 낮은 가정은 경제적인 면에 집중하였지만, 부유한 가정은 가족의 지위나 명예에 집중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절대적인 주권(patria potestas)을 가졌습니다. 지금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아버지는 가족 공동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녀를 노예로 팔 수도 있고, 불순종하는 자녀를 채찍질하는 것은 물론이고 살해하거나 유기할 수 있습니다.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버지는 자녀에게 결혼과 이혼을 강요하고, 명예 살인도 하였습니다. 교사는 아버지의 권한을 위임받아 가르쳤기에 학생들을 심하게 매질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유대 공동체는 모세 율법을 위반할 때 채찍질하였습니다. 바울도 여러차례 매질을 당하였습니다.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채찍질과 같은 처벌은 없었지만, 종종 경고와 파문을 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공동체 내에서 범죄를 처리하는 절차를 마태복음 18장 15-19절에서 설명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5장 1-5절에서 근친상간한 형제를 공동체에서 파문하였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린도전서 4장을 읽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4장 14-21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자신의 자녀로 표현합니다. 바울은 아버지로서 고린도 교회를 훈계하고(고전4:14), 행동 변화를 촉구하고(고전 4:16-17), 그들이 따르지 아니하고 계속 거역하면 처벌할 것을 경고하였습니다(고전4:21). 바울은 고린도 교회 공동체에 대한 아버지의 권위를 강하게 주장하면서 징계를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먼저 영적인 아들 디모데를 보내 고린도 교회를 권징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바울이 직접 고린도를 방문할 것을 말합니다. 그때 매를 가지고 나가야 하겠느냐?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가야 하겠느냐 질문합니다. 그들이 분파를 나누어 파벌적 행동을 계속한다면, 바울은 단호하게 매를 들 생각이었습니다. 파당을 만들고 분쟁하는 것은 세상의 정치판에서나 하는 일이지, 십자가 공동체에선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매질(파문을 포함한 징계)은 최후의 수단이지 바울이 진정 원하는 것은 고린도 공동체가 십자가의 정신으로 화해하고 회복하는 것입니다. 매(지팡이)는 이를 위한 수단으로 공동체의 안녕을 위협하는 행동을 바로잡는 역할을 합니다. 초대교회에도 갈등과 분열과 당 짓는 것과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십자가로 이루어진 공동체란 정체성을 인식하고, 화해하였기에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매를 들어야 하겠다고 결심한 문제는 고린도 교회의 파당 문제였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교회 내의 지도자들을(그리스도, 바울, 베드로, 아볼로) 중심으로 갈라져 다투었습니다. 현재 한국 교회는 고린도 교회보다 상황이 더욱 안 좋습니다. 이제는 교회 내 지도자뿐만 아니라 세상의 정치 지도자를 중심으로 갈라져 싸우고 있습니다. 세상의 정치 지도자는 윤리적으로나, 영적으로 우리의 지도자가 결코 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을 마치 교주처럼 떠받들며 목숨걸고 싸우는 그리스도인을 보고 바울은 무어라 말할까요? 정치 지도자는 신앙도 아니요, 명분이나 도덕 때문이 아니라 오직 정치적 야망에 사로잡혀 싸울뿐입니다. 세속에 속하여 세상을 우선시하는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싸우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가 정치권의 시녀가 되어 세속 사회보다 더 극단적으로 싸우는 모습은 바르지 않습니다. 한국 교회가 쇠퇴하고 망하는 근본적인 요인은 십자가 공동체라는 정체성을 상실하고 화해와 평화 대신 세상의 분쟁과 갈등에 휘말려 그 싸움의 선봉에 서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매질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매질이 한국 교회에 있는 것 같아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Adam G. White, “The Rod as Excommunication: A Possible Meaning for an Ambiguous Metaphor in 1 Corinthians 4.21”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Volume 39, Issue 4, June 2017, Pages 388-411
Timothy G. Gombis, Power in Weakness: Paul’s Transformed Vision for Ministry (약한 자의 능력 : 바울의 변화된 목회 비전), 이성하 옮김, 감은사, 2023.
https://youtu.be/oilMdUMT9hQ?si=9XkyU69iJKvrCjg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