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해석하는 원칙 중에 ‘숲을 보고 나무를 보라’가 있습니다. 특히 인물이나 사건을 볼 때 지켜야 할 원칙입니다. 우리는 인물의 역동적인 모습이나, 사건의 흥미진진함 때문에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여사사요 예언자였던 드보라를 생각하겠습니다. 한글 개역 성경은 드보라를 소개할 때 시간을 나타내는 부사구 “그때에”로 시작하지만, 히브리 원문을 보면 드보라라는 이름이 제일 먼저 나옵니다. “드보라는 여자요, 여선지자요, 랍비돗의 아내였으며, 그때에 이스라엘을 사사로 다스렸다”(삿4:4)(김지찬, p.176).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드보라를 강조하며 소개합니다. 무엇보다도 드보라는 여자라고 강조합니다. 동시에 그녀는 선지자요 사사라고 선언합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통틀어 선지자이면서 동시에 백성을 다스리는(사사) 역할을 한 사람은 모세, 드보라, 사무엘 세 사람뿐입니다(박유미, p.90). 드보라는 단순히 11명의 사사 중의 한 명이 아닙니다. 그녀는 모세나 사무엘과 버금가는 인물이고, 출애굽 후 광야 시대와 다윗 왕정 시대를 연결하는 중요한 연결고리입니다. 그런데도, 그녀가 여성이기에 의도적으로 무시당하고 축소 해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성경해석자들은 남자가 없어서 여자 사사가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대 유대 역사가 중 필로는 드보라가 사사로 임명된 것은 남자 중에 자격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채은하, p.88). 전성민 교수 역시 비슷한 관점으로 해석했습니다. “물론 남성 중심 사회였던 이스라엘에서 드보라가 지도력을 발휘한 것은 당시 사회가 매우 무너져 있음을 방증한다” (전성민, p.65). 그러나 팀 켈러는 남성이 제 역할을 하지 않아서 여자가 등장했다는 전통적 관점은 추론이며, 모호한 추론에서 확고한 교리를 도출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고 하였습니다(Keller).
반대로 페미니스트들은 드보라가 여성임을 강조하면서, 여성의 리더십을 지나치게 강조합니다. 사사기는 유독 여성이 많이 등장합니다. 악사(삿1:11-15), 드보라(삿4-5장), 야엘(삿4:17-23,5:4-27), 시스라의 어머니(삿5:28), 지혜로운 시녀들(삿5:29-30), 기드온의 첩이자 아비멜렉의 어머니(삿8:31,9:1-3), 아비멜렉을 죽였던 여인(삿9:53), 입다의 어머니(삿11:1), 길르앗의 아내(삿11:2-3), 입다의 딸(삿11:34-40), 입다의 딸 친구들(삿11:37-38), 삼손의 첫 번째 아내와 어머니와 들릴라 등 삼손이 만났던 여인들 이야기(삿13-16장), 미가의 어머니(삿17:1-6), 레위인의 첩(삿19장), 길르앗의 젊은 처녀 400명(삿21:12), 실로의 젊은 여자들(삿21:21)입니다. 사사기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여러 가지 역할을 합니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고, 성폭행당한 후 살해되기도 합니다. 페미니스트들에게 사사기는 보물과 같은 성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클린턴 맥캔은 드보라의 노래를 ‘해방 신학’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McCann, p.107).
물론 전통적인 해석이나 여성중심의 해석 방법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다른 각도로 드보라를 볼 수 있습니다. 사사기는 가나안을 정복하는 여호수아서와 다윗 왕정을 연결하는 중간 고리입니다. 사사기는 줄기차게 왕정제도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냅니다. 기드온은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삿8:23)는 신학에 근거하여 왕정 제도를 거부합니다(McCann, p.128). 이 신학은 왕정을 반대하는 사사기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고대 오리엔트 문명권은 3천 년 간 메소포타미아와 애굽이라고 하는 발달한 관료체제를 기초로 한 대제국에 의해 규정되었습니다. 이들은 강력한 왕정국가로서 억압과 폭력과 차별을 일삼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천신만고 끝에 탈출한 이집트는 왕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형의 강력한 계급 사회,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착취 구조였습니다(김윤옥, p.357-358). 하나님이 대제국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유랑하는 이주민으로 부르신 것은 고대 제국의 폭압 정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이루라는 뜻입니다. 강력한 왕정국가인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은 노예들, 천민들, 이주민들, 약한 자들, 난민들이 모여서 함께 평화와 평등의 협력하는 공동체를 만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이상은 세상의 왕정국가가 아닙니다. 그건 세상과 다른 대안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왕정 제도를 강력하게 배척하면서 왕을 두지 않고 200년 이상 버텼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계급제도와 억압정치로 대표되는 왕정 정치를 거부하고 대안적 정체성과 대안적 공동체, 곧 하나님 나라 세우기를 힘썼습니다. 그들의 핵심 사상은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신학적 선언입니다. 그들의 왕은 세상의 어떤 영웅이나 위대한 인물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여호와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 즉 하나님이 부여하신 재능을 소유한 사사들이 이끌어가는 사회입니다. 그들은 잠시 있다가 사라졌으며, 아들 손자로 이어가며 권력을 행사하며 지배하기를 거부했습니다. 비록 사사 시대는 실패했지만,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를 향한 비전을 가지고 몸부림쳤던 가장 이상적인 시기였습니다.
사사시대의 꽃은 드보라가 사사로, 선지자로 활동하던 시대입니다. 세상의 통제기구나, 정치제도나, 권력을 가지지 않으면서도 여호와 하나님 신앙으로 공동체를 이끌어가던 아름다운 시대입니다. 에른스트 트뢸치는 종교의 제도화 과정을 통해서 처음 이상이 점점 세속의 정치 계급 구조로 바뀜을 그의 책 ‘기독교 교회의 사회적 교훈들’에서 역설했습니다. 처음 공동체는 규율이나 제도의 억압이 적었지만,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는 지도자의 이상과 비전이 권위의 근거가 됩니다(백소영, p.155).
출애굽은 노예로서의 육체적 노동과 학대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 영역의 문제 즉 자유와 자결권의 획득이기도 합니다. 이제 히브리인들은 세상과는 전혀 다른 대안 사회를 지향합니다. 거기에는 차별이나 구별이나 계급이나 억압이 없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이 종이었음을 기억하며, 약한 자들을 품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함께 나온 타민족 노예들을 전혀 차별하지 않고 히브리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기생 라합이 유다 지파 족장의 아들 살몬과 결혼한 것도 바로 그런 시대 상황 때문입니다. 여성이 리더십을 발휘하고 활동하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미리암이 여선지자로 인정받고 활동하였던 것이나 드보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보라는 궁정에서 일하지 않고 종려나무 아래에서 백성을 돌보았습니다. 드보라와 바락의 모습을 보면, 남녀 갈등이나 위아래 개념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었습니다. 명예를 탐하지도 않았고, 부귀와 영화를 꿈꾸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만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초기 이상과 비전은 퇴색하고, 종교는 제도화되고, 사회는 계급화하면서 이스라엘도 세속의 왕정국가가 되기를 강력히 희망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안 사회를 포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어두웠던 시기는 이상과 비전을 가지고 몸부림치던 사사시대가 아니라 왕정을 요구하여 마침내 사울 왕정을 세운 시기입니다. 종교가 제도화되면서 여성은 차별하고 억압하는 것이 당연한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무엘의 고별사에서 드보라의 이름은 생략됐지만, 바락으로 짐작되는 이름은 언급됩니다.
“여호와께서 여룹바알과 베단(70인역 , 바락)과 입다와 나 사무엘을 보내사 너희를 너희 사방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사 너희에게 안전하게 살게 하셨거늘”(삼상12:11)
70인 역은 베단을 바락으로 번역했습니다. 70인역을 그대로 받아들인 히브리서 저자 역시 드보라의 이름을 뺍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히11:32)
바락의 이름은 있으나 드보라의 이름은 없습니다. 여성의 지도력에 대한 사무엘서 저자와 히브리서 저자의 불편함을 표시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김순영 교수는 “그럴 리 없다고 믿고 싶지만, 여성 지도력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아니었을까” 짐작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공적으로 가부장제, 성차별, 학별, 계급주의를 찬동하지 않지만, 이것들이 암암리에 실질적인 사회 작동 원리로서 사회구조를 떠받치고 있습니다(김순영, p.46).
기독교가 세상을 따라가는 모습을 보인다면 희망이 없습니다. 교회 공동체, 하나님 백성 공동체는 분명 세상과 다른 하나님의 비전을 실현하는 대안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Goheen, p.141). 사사 드보라는 험악한 시기에 살았지만, 하나님의 비전을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이 땅에서 이루려고 애를 썼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드보라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Goheen W. Michael, A Light to the Nations(열방에 빛을), 박성업 옮김, 복있는 사람, 2018.
Keller Timothy, Judges for you(당신을 위한 사사기), 김주성 옮김, 두란노, 2015, E-book.
McCann J.Clinton, Judges Interpretation(현대성서주석 사사기), 한국장로교출판사, 2012.
김순영, ‘어찌하여 그 여자와 이야기하십니까’, 서울 : 꽃자리, 2017년
김지찬, 요단강에서 바벨론 물가까지, 생명의 말씀사, 2011
박유미, 내러티브로 읽는 사사기, 새물결플러스, 2018.
백소영 외, 페미니즘 시대의 그리스도인,한국교회탐구센터 편집, IVP, 2018
전성민, 사사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성서유니온, 2015
김윤옥, 이스라엘 민족과 드보라의 노래, 한국기독교신학논총 14(1), 1997.10, 353-361(9), 한국기독교학회
채은하, ‘주후 1세기 요세푸스와 무명의 필로가 전해주는 성경의 여성들 - 드보라, 한나와 입다의 딸’, 한국여성신학 (86) 2017.12,86-107, 한국여신학자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