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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Nov 11. 2024

다윗의 유언이 특별한 이유

다윗의 유언이 이스라엘의 운명과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열왕기서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기록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은 바벨론에게 이스라엘이 멸망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은 선민의식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사랑하셔서 특별히 선택하였다고 그들은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예루살렘 성전을 세워주셨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다윗과 맺은 약속을 따라 다윗의 왕가를 영원히 지켜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쿠데타로 정권이 전복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남유다는 다윗의 정통성을 굳건히 지켰습니다. 

그건 하나님께서 다윗 집안을 보호하여 줄 거란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중동의 화약고와 같습니다. 

그건 예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북쪽의 메소포타미아와 남쪽의 이집트를 연결하는 통로였습니다.

교통의 요충지인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였습니다. 

따라서 강대국들은 언제나 이스라엘을 집어삼키려고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늘 불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기대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신성시하였고, 다윗 집안을 흔들지 않았습니다. 

그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상징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 

그냥 망한 것이 아니라 다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히 망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졌습니다. 

다시는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왕가는 끊어지고, 귀족층은 모두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바벨론은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하지 못하도록 남은 백성을 강제로 추방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 디아스포라가 형성되었습니다. 

바벨론은 물론이고, 이집트, 그리스, 아프리카 전역에 유대인들이 흩어져 살았습니다. 

가나안 땅은 텅빈 곳이 되어 에돔 사람들이 들어와 살았습니다. 

에돔의 후예 중 유명한 사람이 바로 헤롯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의 리더들이 받았던 정신적 충격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송두리째 흔들렸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살아계시는가?”

“하나님의 약속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예루살렘 성전은 무엇이고, 하나님께 택함받은 선민은 또 무엇인가?”

“다윗과 맺은 언약은 어떻게 되는가?”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고자 해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왜 망했는지, 왜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종생활하는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누차 경고하였던 선지자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여러차례 이스라엘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고, 오히려 참된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반대로 자기들이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좋아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민족은 영원히 안전하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예루살렘 성전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샬롬(평화)은 영원하다”

그들은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샬롬이라고 인사합니다. 

샬롬은 그들의 믿음이고 희망입니다. 

그러나 샬롬은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거짓 선지자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로만 보았고, 그 문자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문자주의의 오류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어떤 배경에서 말씀하셨는지, 어떤 전제 조건이 있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보는 잘못이 문자주의입니다. 

현재 그리스도인 중에도 문자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만 말하라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번역을 허용합니다. 

히브리어 헬라어로 된 원어 성경만 성경이 아니라 한글과 영어와 중국어와 세계 각국어로 번역된 성경도 모두 성경으로 인정합니다. 

번역은 곧 해석입니다.

번역하는 사람은 성경의 행간을 읽고 자기의 문화와 언어 습관에 맞게 해석합니다. 

그건 마치 베뢰아 사람들이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성경은 해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해석은 각자의 관점이 있기에 다양성이 존재합니다. 

신학은 다양성 속에서 일관성을 찾기 위하여 역사와 문화와 언어를 배워 가능한대로 바른 해석을 추구하는 학문입니다. 

거짓 선지자의 특징은 문자만 보았지, 그 문자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야, 나라가 망하고 나서야, 거짓 선지자가 누구였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역사를 다시 써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자기들에게 평화를 외치던 자들이 거짓 선지자였다는 사실을 안 이상,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써야했습니다. 

열왕기서는 바로 그런 과정에서 쓴 역사서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낱낱이 기록하였습니다. 

설령 다윗이나 솔로몬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잘못을 숨김없이 기록하였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그 점을 불편해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용사들이 저지른 잘못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들의 장점을 이야기하고 미화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열왕기서 저자는 그들이 비록 위대한 신앙인이지만, 그들의 잘못을 돌아보면서 회개해야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설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믿음의 영웅도 우리와 똑같은 죄인입니다. 

그들이 위대하다고 평가받은 것은 그들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위대해서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충분히 받았기에 죄인 괴수가 믿음의 용사가 된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잘못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려고 노력한 점도 있습니다. 

열왕기서 저자는 그 점도 빠트리지 않고 기록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다윗의 유언입니다. 

다윗은 나라를 어떻게 경영해야 복되고 형통한지 솔로몬에게 유언했습니다. 

“나는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간다. 

너는 굳세고 장부다워야 한다. 

그리고 너는 주 너의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주님께서 지시하시는 길을 걷고, 주님의 법률과 계명, 주님의 율례와 증거의 말씀을 지켜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모든 일이 형통할 것이다. 

또한 주님께서 전에 나에게 '네 자손이 내 앞에서 마음과 정성을 다 기울여서, 제 길을 성실하게 걸으면, 이스라엘의 임금 자리에 오를 사람이 너에게서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고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실 것이다.”(왕상2:2-4, 새번역)

다윗의 유언은 모세가 신명기 6장에서 이미 선포한 말씀과 같습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셨던 말씀과도 같습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1:8)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육신적 할례와 전통만 자랑하고,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다는 사실만 가지고 평화를 외치지만, 말로만 그럴 뿐이지, 사실은 제 멋대로 살았습니다. 

입으로는 여호와를 외치고, 예루살렘 성전을 깨끗이 유지하였지만, 중요한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고 삶입니다. 

겉으로 하나님을 믿는 척하지만, 실상은 자기의 욕심과 아집에 사로잡혀 있으면 하나님이 보실 때 가증한 것입니다. 

그건 하나님을 속이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이 한이 없으셔서 언제라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서면 복을 주십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역사를 새롭게 고쳐쓰며, 철저하게 자기를 반성하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자 하나님은 그들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면서,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말씀은 다윗의 유언입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그건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나라가 안정을 찾지 못하고 혼란스러울 때, 위기의 순간에 대장부같이 담대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따르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대장부는 괜한 고집을 부리며,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꿇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삶을 고쳐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샬롬의 길이고, 형통의 길입니다. 

이제 솔로몬이 걸어야 할 길입니다. 

나라가 망하고 포로가 된 상황에서 회복을 꿈꾼다면 바로 이 길을 걸어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과 조국의 기독교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모두 자기 주장만 하면 소망이 없습니다. 

상대편을 향해 손가락질 하며 당신이 잘못이라고 말한다면 소망이 없습니다. 

이제라도 기독교가 무릎꿇고 진실한 회개를 하고, 변화된 삶을 추구한다면, 소망이 있습니다. 

회복은 먼데 있지 않습니다. 

무릎꿇는 기독교인이 있을 때 부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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